빛의 시대, 중세 - 폭력과 아름다움, 문명과 종교가 교차하던 중세 이야기
매슈 게이브리얼.데이비드 M. 페리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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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세요?

저는 ‘마녀사냥, 기사도, 십자군 원정, 화형, 이단 색출, 종교 재판, 학살, 흑사병, 잔혹사’ 같은 단어가 우선 생각납니다. 붉게 물든 세상을 덮는 거대한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지고요.

5세기에서 15세기 사이의 유럽을 고대와 구분하여 묶은 시기인 ‘중세’는,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 건국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시대를 가리킨다고 해요~ ‘고려’ 하니까 왠지, 유럽의 중세가 그동안 ‘암흑시대’로 통했던 이유와 이제는 ‘빛의 시대’인 제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벌써부터 이해되는 분도 계실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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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발표된 <빛의 시대, 중세>는 암흑에 가려져 있던 중세 역사의 이면을 밝히는 역사서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은 소설이 열일곱 권은 나올 만한 이야깃 거리가 총 17장 구성의 흐름 안에 담겨 있어요~ 챕터별로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의 비하인드 스토리에 허구로 축조한 생명력을 불어 넣으면 <왕좌의 게임> 시리즈도 거뜬할 것 같습니다!

다만…

제목 ‘빛의 시대’의 의미를 저처럼 오해하지만 않으시면 될 것 같아요~ ‘빛’이라고 해서, 그동안 어둠으로만 점철되었던 중세 역사의 밝은 면만을 집중 소개하는 책인가 싶었거든요;

저자가 표현한 ‘빛의 시대’는 [공존과 폭력 모두를 향한 욕구가 담긴, 여러 문화들 사이에서 이루어진 복잡한 상호작용의 상징]을 이해하고자 하는 [복잡하고 인간적인 개념]이며, [광범위한 국제적, 교차문화적, 다세대적, 다언어적, 다종교적 관계망]으로 형성된 중세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온 표현이었어요~ *인용 순으로 198/21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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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이 뚜렷한 독서와 중세사에 호기심이 많은 독자라면 유용한 서적인데요. 단테의 <신곡> 만큼은 모든 독자가 영업 대상인 것 같습니다.

중세사의 첫 장면을 황후 갈라 플라키디아의 영묘에서 시작한 저자는, 별빛이 쏟아지는 천정의 모자이크 아래 단테를 세워놓는데요. 눈부신 천 년이 신비에 압도된 단테의 모습이 절로 그려질 정도예요! 중세사의 출구에 단테의 <신곡>이 있다면, 입구에 플라키디아의 영묘가 있다는 식이죠~

쇠락한 로마의 암흑으로 중세를 시작하던 기존 역사관을 벗어나 달리 보자는 취지입니다. 로마는 멸망하지 않고 [새로운 종교와 민족들이 기존의 관념, 풍습과 통합될 시대의 무대]로 남아 꾸준히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왔다는 거예요. *38쪽

이러한 역사적 연결성은 단테의 <신곡>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나아가는 서사와 합치됩니다. 중세의 천 년은 ‘암흑시대’가 주장한 멈춰버린 시대가 아니라, 빛을 찾아 나아가는 수백 년간의 움직임이라는 주장이죠. 독자에게는 두 명의 저자(매슈 게이브리얼, 데이비드 M. 페리)가 중세의 지옥-연옥-천국을 보여주는 ‘베르길리우스’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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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 중세인들의 내면을 살피고 그들이 본 것처럼 우주를 보고 “어떻게”와 “왜”를 묻도록 애써야 한다. 193쪽] → 공존과 불화, 협력과 갈등이 상존하는 것은 중세를 넘어 모든 시대의 공통점일 것입니다.

‘암흑시대’가 종교적ᆞ정치적 목적하에 각색된 서사를 들이밀 때, ‘빛의 시대’를 읽는 눈으로 세계관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면, 역사의 단면만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던 태도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예요. 책 속의 한 줄로 추천의 글을 마무리해 봅니다.

[우리의 빛의 시대는 단순하거나 명확하지 않고, 뒤죽박죽이고 인간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이 진실에 가장 가까운 모습일 거라고 생각한다.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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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저는 중세 배경 고전문학 <신곡>, <돈 키호테>, 이탈로 칼비노 3부작 다시 읽기 하려고 이 책 선택했어요!

#도서제공 #빛의시대중세 #까치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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