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내게 행복하라고 말했다
에두아르도 하우레기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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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들었을 땐,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힐링에세이류겠거니 하고 가볍게 읽을 생각이었는데 책을 받아들고 보니 두께가 꽤 되는 소설집이라 요즘 책에 쉽게 집중을 하지 못해서 완독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알바가는 지하철역에서 책을 폈는데, 생각보다 쉽게 몰입이 되는 도입부에 점점 궁금해지는 뒷 이야기에 생각보다 빨리, 깊게 집중해서 읽어 내려갔던 것 같다.

우선 나는 고양이를 꽤 오래 길렀고, 혼자 살게 되어서도 임시보호를 하며 고양이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창문에 고양이가 나타나 사라를 입양하겠다고 뜬금없이 선포해도(심지어 사람말을 하면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사실 조금 부럽기도 했다. 말하는 아비시니안에게 간택을 당하다니!

털뭉치들의 존재감은 사실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것 보다도 더 큰 위안이 될 때가 많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내 고양이를 쓰다듬는데, 고양이도 온 힘을 다해 화답해주는 그 기분. 아무것도 아닌 그 쓰다듬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온기를 전달해주는 지 키워보기 전까진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사라에겐 그런 쓰다듬이 너무나 필요했고, 마침 시빌이 그 빈자리를 채워주게 되었다.

 

비록 고양이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지만,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존재가 바로 시빌이다. 우리는 사라의 입장에서 작가가 주장하는 바를 최대한 받아 들이고 좋은 방향으로 변하려고 노력해야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게 아닐까. 냄새를 맡아 보라는 것도, 음식물 하나를 씹는 데 온 우주를 동원하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정신과 의사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고양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사라의 마음이 동한게 아닐까 싶었다. 고양이들은 수천년 동안이나 인간들을 인도해왔으니까, 고양이의 말을 듣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닐테고. 작가가 강아지가 아닌 고양이를 화자로 설정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 같다. 고양이는 늘 '집사'에게 명령을 내리는 존재이니까. 시빌의 조언을 듣고 실천하며 변해가는 사라의 삶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시빌을 깨워서, 하루하루 조언을 내리고 그 조언에 따라 사는 삶을 계획해 봐야겠다. 힐링소설은 처음인데, 종종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속에서 우주는 다시 태어나고 소멸된다. 우리는 무한한 하루의 속에서 다양한 색채들을 발견하고, 음식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 자신으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간단하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이 진리를 말해주기 위해 나타난 시빌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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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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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전쟁. 나 또한 교과서에서, 영화에서 책에서 수 없이 보고 들어온 전쟁이지만 한번도 그 전쟁의 이면을 깊숙하게 내다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전술, 관련한 유명한 전투들, 인물들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한국전쟁 내면으로 그시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변화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해 한 단계 더 깊이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서론, 1-5장, 결론으로 논문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참조문헌도 많이 나오고 꽤나 딱딱한 어투라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또한 가볍게 읽을 만한 책도 결코 아니라서, 문단 문단 이해 안가는 부분을 다시 곱씹고 하면서 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널리 알려진 이론과 개념으로만 조명했던 한국전쟁을 조금 더 사적인 영역을 이용해 재조명하고, 사적인 영역이 어떻게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즘에와서 생각해보면, 사상이 다른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살해되는 일은 전세계적으로 뉴스를 타고 질타를 받을 일이다. 그렇게 어이없을 만큼 말도 안되는 일이 수없이 자행되었던 시기가 바로 한국전쟁시기이다. 내 가족의 죽음을 대놓고 슬퍼하지 못하고, 심지어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도 유골도 수습할 수 없었던 경험은 가족공동체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도 책임을 묻는 행위들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일개는 가족을 버리지못해 같은 수모를 겪기도 하고, 일개는 가족을 등지고 목숨을 구걸하기도 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누가 더 고고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인지를 판단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친족공동체가 요동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던, 깊은 상처를 입은 존재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요즘들어서 더욱 더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사회는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아프다고 쉽게 소리칠 수 없는 구조로 개인이 개인을 탓하며 사라져 갈 뿐,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고쳐나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인 것 같다. 우 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전쟁으로 인한 친족의 고통을 깊게 묻는 것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발전을 위해 제대로 된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앞의 돌다리만 두드려 볼 것이 아니라 뒤에 남기고 온 돌다리도 다시 한번 두드리는 시도가 꼭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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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버린 - 김유담 소설집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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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인 '핀 캐리'는 신춘문예 당선작이라는 기대에 비해서는 좀 평이한 느낌이었다. 보통은 오빠의 학비를 대기 위해 집안의 여자형제가 희생하기 마련인데, 그 성별이 뒤바뀌어 있었을 뿐 신선한 느낌은 없었다. 오빠의 인생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 도박꾼이지 않았나 라는 생각도 들고.

여유라는 건 무리를 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것을 당연히 가지고 있었던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넉넉함이 여유였다.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 / 100p

이 책을 읽으면서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3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저 문장이었다. 나는 늘 저런 치사함에 공감을 한다. 부러운 걸 부럽다고 말하지 못하는 치사함에 대해 말하는 문장같은 것. '우리가 이웃하던 시간이 지나고'의 화자는 나랑 참 많이 겹쳐 보였다. 괜히 심술부리고 사람을 밀어내면서도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놓지 못하는.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의 특징일까. 영주와 성희가 아직도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었다면 둘의 관계는 달라져 있었을텐데. 하지만 어느 관계가 더 좋은 것이라고 확실히 말하진 못하겠다.

나 역시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했다. 그럼에도 버텨낼 자리 하나도 허락되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나조차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탬버린 / 152p

단편을 실은 소설집의 표제작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보통은 그 단편들의 주제를 정통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탬버린'도 그랬다. 한 때 해방의 의미로 흔들었던 탬버린을, 대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흔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이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이 단편집들은 고향을 떠나 타지로 온 화자들이 피할 수 없는 일들을 겪는 개인화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표제작인 '탬버린'이 가지는 의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송은 문자메세지에 답을 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 답답한 현실 속에서 둘이 꼭 다시 만나서 해방의 의미인 탬버린을 신나게 흔들었으면 좋겠다.

'멀고도 가벼운'을 읽으면서는 매일 연락하며 시덥잖은 카톡을 남발하는 사이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에 몰래 좋아요 하나를 눌러가며 그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이가 어쩌면 더 건강한 관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길고 유구한 역사가 이어져 온 것은 아니지만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에서 좋은 장면을 많이 차지하고 있는 사람. 비행기표를 끊어가며 찾아가게 되는 사이는 아니지만 솜 이불 한 채 정도는 택배로 보내줄 수 있는 사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가장 큰 위로가 되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두고두고 후회'도 읽으면서 참 내 삶이 많이 겹쳤다. 삼남매에 장녀라는 그녀는, 우리 가족에게 대표 같은 것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면서도 대표역을 자처할 수 밖에 없다. K-장녀들은 너무 착하고, 책임감이 강하다.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나는 그녀를 친구들과 함께 눈 썰매장에 놀러가도록 놔둘 것이지만 장어값을 계산하게 놔두진 않을 것이다. 너무 그리워지거나, 후회되는 순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냥 저정도는 해주고 싶기 때문에.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함부로 선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를 지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 / 290P

'영국산 찻잔이 있는 집'은 왜 화자를 '한'으로 설정한 것인지 모르겠다가도 '한'의 시점으로도 소냐와 피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은 것을 느끼며 알 것 같기도 했다. '넌'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피티의 삶 속에서 자신이 꼭 필요한 존재라고 믿었던 한. 그러나 결국 피티가 챙겨서 떠난 것은 찻잔이었지 한이 아니었다. 피티가 사라지고 나서야 자신의 위치를 깨닫는 한을 보면서 '누군가를 지키겠다고 함부로 선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를 지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 대한 반박의 말이 생각났다. 자신의 현재를 지키려는 것이 곧 그 누군가의 현재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아주 최소한으로 그사람에게 바라는 것일 수 있다고. 피티의 일탈을 응원한다. 피티는 소냐의 현재를 간절히 바라다 자신의 현재가 없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작고 예쁜 찻잔에 티가 마르지 않는 한 피티는 살아갈 존재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끊임 없이 자신의 잔에 차를 따르며, 혹은 따라주는 사람을 만나며 그렇게 자신의 현재를 바라고 또 타인의 현재를 바라는 사람으로 그냥 그렇게 살아가기를.

모든 단편들은 드라마틱한 해피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 그렇다고 드라마틱한 새드엔딩도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모든 결말에 작가의 응원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든 단편 끝에 이 문장이 달라붙어있는 것 같았다 "다들 그렇게 다음 순간을 살아 갑니다." 소설은 더 이어지진 않지만 우리는 그들이 저 단편 속에서 살아갈 것임을 알고, 그렇다면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알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절로 드는 느낌.

꼭 내 얘기 같은 소설은 왜 이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언젠가 미친듯이 행복한 기분으로 다 읽고 덮은 책이 꼭 내 얘기 같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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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여성 디아스포라 3부작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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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승만 아내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녀는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프란체스카 도너 리. 1934년 10월에 이승만과 결혼하여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이승만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생활했다고 한다. 나조차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승만에 대해 주구장창 듣고 공부해왔지만 한번도 그의 아내에 관해서는 궁금해 해 본 적이 없다. 김구, 윤봉길, 안중근등 수많은 남성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들어오면서 그 속에서 빛났던 유관순 열사의 이름을 가슴에 깊이 새겼을지언정 다른 여성들의 이름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우리에게 가장 크게 주는 울림은 그녀들의 이름 그 자체라고 느꼈다. 버들, 송화, 홍주. 우리에겐 아직도 더 많은 이름들이 필요하기에.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1917년, 열 일곱살이던 어진말 출신 애기씨들이 마흔 한 살이 될 때까지 겪은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독립운동이 주가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독립운동을 하러 나간 남편대신 아이 셋을 홀로 키우는 버들의 삶을 보면서 나는 그 삶 자체가 처절한 독립운동이었다고 느꼈다. 또한 그 처절한 삶 속에는 늘 손잡아 주는 같은 여성들이 숨쉬고 있었다는 것도, 그늘에 가려 공은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 여성들은 늘 연대하며 함께 삶의 파도를 넘어 왔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은 어진말의 버들, 홍주, 송화가 사진신부로서 하와이에 시집가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진신부란, 초기 하와이 이민자들이 그 곳에서 신부를 구하지 못해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을 보내거나 받아 조선의 여자들과 혼인을 하기 시작했을 때 사진 교환을 통해 하와이로 이주한 조선 여자들을 일컫는다. 시집 가자마자 남편이 죽어 소박맞은 홍주는 제 2의 인생을 살아보기 위해 아버지 몰래 사진신부가 된다. 송화는 무당인 할머니가 자신과 같은 취급을 받게 하지 않기 위해 사진 신부로 보내고, 버들은 하와이에 가면 돈 많은 신랑을 만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사진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각자 사연은 다르지만 그 시절 조선에서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처지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신부가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할 수 있는 선택의 전부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몇날 몇일을 고생해 도착한 하와이에서 버들과 홍주, 그리고 송화는 쓰디 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하와이에서 돈을 쓸어 담는다던 젊은 신랑들은 가난한 늙은 남자였고, 결혼을 위해 보낸 사진들은 대부분 그들 젊었을 때의 사진이거나 심지어는 다른 남자의 사진을 이용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하와이에 도착해서야 알게 된 조선의 여자들은 늙은 남자 옆에서 엉엉 울기만 했을 뿐 돌아갈 차비가 있는 것도, 다른 선택이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이 결혼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결혼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이 스스로 선택한 결혼이라는 명목으로 아주 많은 부분을 여성에게 감내하라고 등떠미는 이 세태가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역사인 것 같아서 씁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한 여성들은 삶을 살아낸다. 운이 좋게 사진과 같은 남편을 만났지만 초반에는 곁을 내어 주지 않아 속 앓이를 한 버들도, 웃돈을 보내며 구애할 땐 언제고 자린고비로 돌변한 늙은 남편을 만난 홍주도, 매맞는 아내가 된 송화도, 식당일과 세탁소일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남편의 밥상까지 차리며, 그렇게 삶에 닥쳐온 파도들을 넘어낸다.

그녀들이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의 존재였다. 멀리 있을 땐 편지로, 가까이 있을 땐 기꺼이 손 내밀어 주면서 삶에 시련이 찾아 올 때에나 기쁜일이 있을 때에나 그녀들은 함께 있었다. 아이 잃은 홍주의 입에 밥을 넣어주며, 갈 곳 없어진 송화를 집으로 들이며, 배척당하는 버들을 품어주며 그렇게 그녀들은 언제나 함께 있었다

n번방이 수면 위로 떠오른 요즘, 나는 더더욱 여성연대의 필요성을 느낀다. 여성의 고통에 가장 잘 공감해 줄 사람, 분노해 줄 사람은 결국 여성들이기에, 더 많은 여성들이 높은 곳에 올라있어야 하고 그 여성들이 다른 여성을 끌어주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함께 파도를 넘어온 우리 여성들은 결국 싸워 이겨서 무지개가 서는 그 곳에서 웃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처음부터 줄곧 버들의 시점에서 전개되던 소설은 마지막에 이르러 버들의 딸 '펄'의 시점으로 바뀐다. 사실 나는 이 부분에서 조금 몰입감이 깨지는 느낌을 받았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표지에 써 있는 것처럼 처음부터 아주 놀라운 몰입도를 보여 주었다. 잘 쓰여진 소설은 한 편의 영화가 머리에서 상영이 되듯이 아주 매끄럽게 장면 장면들이 상상되는데 이 소설이 꼭 그랬기 때문이다. 하지만 펄로 중심이 옮겨지고 조금은 철이 없고 어린 캐릭터인 펄이 담기에는 심도깊은 내용들이 나오면서 캐릭터와 서술에 괴리감이 조금 느껴졌다. 펄의 입장에서 쓰여야 했던 이야기임은 알겠지만 캐릭터 설정에 조금은 미스가 있었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생각. 하지만 몰입도가 와장창 깨질만큼 큰 괴리감은 아니었고, 버들이 딸의 삶을 지지해주는 결말도 마음에 들어 가슴 벅차게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처음으로 서평이라는 것을 위해 책을 읽어 보았다. 아직 출간되지 않은 가제본의 책을 읽어본 것도 처음이었다. 내가 책을 받아서 읽을 때엔 작가가 누군지 밝혀지지 않아서 더 흥미로웠던 것 같다. 마음속에 떠오를 듯 말듯 한 작가가 있었는데, 이금이작가님이셨나 보다. 유진과 유진도 아주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 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써주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 시절 모든 버들과 송화와 홍주들에게 정말 고생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그 때 잡았던 서로의 손이 놓지 않고 이어져 지금까지 왔다고, 나도 지금 그 손을 꼭 잡고 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꼭 사서 읽어 보기를 권한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가 1917년을 살았던 그녀들의 모습에서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것을 보고 또 한번 우리에게 여성 연대가 얼마나 필요한 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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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아씨들 (영화 원작 소설) - 완역, 1·2권 통합 걸 클래식 컬렉션 1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공보경 옮김 / 윌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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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역이 매우 잘 되어있는 느낌이고 끝에 작가소개 영화이야기도 나와서 좋아요. 나와있는 작은아씨들 책들중에 가장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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