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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한국전쟁. 나 또한 교과서에서, 영화에서 책에서 수 없이 보고 들어온 전쟁이지만 한번도 그 전쟁의 이면을 깊숙하게 내다보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한국전쟁에서 사용된 전술, 관련한 유명한 전투들, 인물들에 대해선 알고 있었지만, 한국전쟁 내면으로 그시대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변화들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한국전쟁에 관해 한 단계 더 깊이 지평을 넓혀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서론, 1-5장, 결론으로 논문과 같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참조문헌도 많이 나오고 꽤나 딱딱한 어투라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책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또한 가볍게 읽을 만한 책도 결코 아니라서, 문단 문단 이해 안가는 부분을 다시 곱씹고 하면서 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널리 알려진 이론과 개념으로만 조명했던 한국전쟁을 조금 더 사적인 영역을 이용해 재조명하고, 사적인 영역이 어떻게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요즘에와서 생각해보면, 사상이 다른다는 이유로 처참하게 살해되는 일은 전세계적으로 뉴스를 타고 질타를 받을 일이다. 그렇게 어이없을 만큼 말도 안되는 일이 수없이 자행되었던 시기가 바로 한국전쟁시기이다. 내 가족의 죽음을 대놓고 슬퍼하지 못하고, 심지어 전쟁이 끝나고 난 후에도 유골도 수습할 수 없었던 경험은 가족공동체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남기는 일일 것이다.
유골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도 책임을 묻는 행위들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일개는 가족을 버리지못해 같은 수모를 겪기도 하고, 일개는 가족을 등지고 목숨을 구걸하기도 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누가 더 고고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인지를 판단 하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친족공동체가 요동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던, 깊은 상처를 입은 존재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요즘들어서 더욱 더 절절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사회는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아프다고 쉽게 소리칠 수 없는 구조로 개인이 개인을 탓하며 사라져 갈 뿐,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고쳐나가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인 것 같다. 우 리 대한민국이 이렇게 전쟁으로 인한 친족의 고통을 깊게 묻는 것으로 시작하였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발전을 위해 제대로 된 한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앞의 돌다리만 두드려 볼 것이 아니라 뒤에 남기고 온 돌다리도 다시 한번 두드리는 시도가 꼭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