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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독서 - 완벽히 홀로 서는 시간
김진애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7월
평점 :
여학생회, 여사우회, 여성간부모임 등등 여자, 여성으로 한정짓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지금까지도 반감부터 들곤 한다. 그렇기에 '여자의 독서'라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은 정말 내 계획과는 무관하게 이 책의 저자인 김진애님의 북콘서트에 참여하게 되는 아주 인위적인 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김진애...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내가 알고 있던 사항은 그녀가 건축을 전공했다는 것과 국회의원이었다는 사실 정도였고, 국회의원으로서 그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는 전혀 모르지만, 그저 국회의원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나로하여금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들자마자 책 날개에 있는 저자에 대한 소개글에 일년에 한 권 꼴로 책을 써서 현재 약 30여권의 책을 냈다는 글귀를 읽자마자, 내가 무슨 팔랑귀도 아니구만 그녀에 대한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일년에 한권 꼴로 책을 낼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신의 삶에 아주 충실할 뿐 아니라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확장된 지적 영역을 갖고 있을 것이며,게다가 그것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을 사람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훌륭한 사람일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아주 폭넓은 독서를 해 왔지만, 이 책에서는 저자를 흔들고 일깨우고 바로잡아 주었던 여성 작가들의 책들을 자존감, 삶과꿈, 섹스와 로맨스, 연대감, 긍지, 용기, 여신, 양성성의 8가지 코드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뭔가를 자기만의 기준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만약 그렇게 한 분류가 다른 이로 하여금 그 창의성과 논리성 면에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게 할 정도이면 그 사람은 그 분야에 있어서 손에 꼽을 통찰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저자의 분류는 매우 훌륭하다. 다만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여신과 양성성 부분이 내용이 상대적으로 적어 균형감이 살짝 어그러지는 느낌이라는 정도? 게다가 그것이 뒷부분이라, 후반부로 갈수록 약빨이 떨어지는 듯한 일반적인 경향을 강화시킨다는 정도?
자신의 얘기를 대놓고 쓰는 에세이는 아니지만, 책에 대한 저자의 생각들을 써놓은 글이라 글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저자의 삶에 대해서도 슬쩍슬쩍 엿볼 수 있다.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그녀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넓혀왔는지, 그녀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던 것이 그녀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자연스러운 행보였는지...
그녀의 노력과 능력, 투지와 용기, 담대함과 포용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주를 이룸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이 그 시절 해외 유학을 가서 석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괜한 심통같은 마음이 책을 읽는 내내 살짝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은 책의 마지막 장에서 두번째 장인 에필로그의 "아마도 나는 의식이 강했고, 호기심이 컸고, 의지를 키웠고, 용기를 낼 수 있었고, 기회를 더 많이 받는 혜택을 누렸을 것이다. 그래서 딜레마를 더 많이 느꼈고, 생각을 더 많이 했고, 행동을 더 많이 하기도 했다. 더 괴로워하기도 했고, 더 발언을 많이 하기도 했다"라는 부분에서 스르르 없어져 버리면서 책을 덮기 직전에라도 이런 마음이 들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은 무슨 다행인가 싶기도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내가 "바라볼 만한" 제대로 된 "여자 선배"를 한 명 더 마음에 품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녀가 책에서 언급했던 책들 중 몇몇권은 아주 신중하게 골라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 장바구니가 묵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