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통계 작업을 위한 엑셀 까대기(?)를 한창 해야 하던 지지난주에, 중간중간 머리아플때 읽으려고 집어 든 책은 바로 지독한 하루라는 책이었다. 저자가 응급실 의사이고 제목이 지독한 하루이니 대략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어렵거나 끔찍하거나 힘든 일들에 대한 얘기가 있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긴 했지만....젠장, 이런 정도까지일줄이야. 한창 컴퓨터 앞에서 손목이 나갈 지경으로 엑셀 작업을 하다가 잠깐 머리좀 쉬어줘야지 하며 책을 집어들고 첫번째 이야기를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바로 알아차렸다. 이건 이런 용도로 읽을 책이 아니라는 것을.
그 짧은 글을 하나 읽는 동안에도 목젖에 뭐가 걸린 듯 침을 꿀꺽 삼키질 못하겠고, 그냥 소심하게 삼키는 그것은 이것이 덩어리 진 울음의 맛인가 싶은 맛이 느껴지곤 했다. 그렇다고 턱~하니 편하게 숨을 내 쉴수도 없이 그냥 가느다란 떨림을 가진 여린 숨을 조심히 길게 내쉬게 되곤 했다. 어딘가에 미안해서 신음소리도 크게 낼 수 없이 소리라기엔 작은, 파르르 떨리는 숨을 내쉬곤 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여전히 어색한 내 몸은 이런 방식으로 슬픔을 삼키는구나 라는 것을 그날 나는 아주 선명하게 알아차렸다.
불과 몇달전에 아빠와 응급실에 머물렀던 하루가 생각났다. 베드마다 커튼이 있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들려오는 환자의 신음소리, 누군가의 엄마나 할머니의 목이 갈라질 듯한 울음소리, 그리고 환자를 둘러싸고 서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소리, 가해자인지 의사인지 아니면 어떤 신일지 누군가를 향해 해 대는 쌍욕소리까지...그런 소리들을 듣고 있자니 멀쩡한 사람들이라도 이 곳에 와서 잠깐 누워 있으면 정신이 어떻게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날 단 한번도 의사의 입장을 생각하질 못했었다. 나 역시 의사들이 왜 이리 굼뜬지, 일을 하긴 하는건지, 어떻게 하는지 물어서 차라리 내가 이리저리 뛰어 다니며 일을 하는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었으니 의사들에게는 원망만 한가득이었던 것 같다.
이 책에 나온,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들의 경악을 금치 못할,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과 뒷 얘기들, 그리고 묘사된 그들의 고통들을 글자로 읽어 나가는 것 자체가 힘겨웠는데, 그 힘겨움 만큼이나 안쓰럽고 미안한 맘이 들었던 것은 바로 본능적으로도 눈이 질끈 감길만한 그런 상황속에서도 두 눈 부릅뜨고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자기의 선택 하에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게 되지 않는가. 그러나 의사들은,특히나 응급실 의사들은 환자가 갓난쟁이나 백세 노인들일수도 있고,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할 때까지만 해도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고 마주칠 일도 없었을법한 흉악한 살인범이나 조폭들을 만나게 될 수도 있고,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술에 취한 사람들일수도 있으며, 남들은 평생 한번 있을까말까한, 볼까말까한, 벌어질까 말까한 그런 크고 끔찍한 사고를 당한 사람들과 그 상처들을 매일 접할테니 정작 그들 마음은 어떨까 싶다.
게다가 이 책은 응급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119 소방대원 분들의 열악한 환경, 그럼에도 보여주는 눈물겨운 희생정신에 대해서도 얕게나마 알게 해준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들과 그 보호자들 이야기에 목이 이미 잠기고, 그 응급 환자를 돌보는 응급실 의사들의 상황에 '아이고야' 하는 한숨이 내 쉬어지다가 소방대원 이야기엔 그저 마음이 먹먹해질 뿐이다.
책에서 나오는 그 지독한 인생들의 이야기들은 지독해도 지독해도 너무 지독해서 그리 쉽게 읽히질 않았다. 매우 가독성이 높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독한 내용 때문에 자꾸 멈춰 약하게라도 숨을 내쉬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야 했기에 그렇기도 했지만, 다른이의 아픈 내용을 그냥 그렇게 휙 읽어버리면 안될 것 같은 저 깊은 가슴속의 마음이 자꾸 읽는 속도를 늦추게 만들거나 허공을 바라보게 만들곤 했다.
스트레스 아웃용으로는 아주 철저하게 실패한, 지독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