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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이준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만남 - 우리가 몰랐던 두 사회 진화론자들의 만남과 회심
김정기 지음 / 세움북스 / 2023년 8월
평점 :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신학대학교에서 총장 조지 하링크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아브라함 카이퍼의 기독시민 사회참여 사상과 그 실제 모습"이라는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하고 있는 저자의 첫 책인 <<티네커 메이어의 개혁파 인생교실, 세움북스>>을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 책에 대한 기대가 컸다.
우선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헤이그 특사 이준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만남>>이라니,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제목을 보면서 궁금증이 생겼다. 나는 이준에 대해서, 카이퍼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한 권의 책에서 두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있었다.
역사학자인 저자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가 저자 서문에 언급되어 있다. 서문을 기억하고 책을 읽으니, 저자의 주장이나 역사 해석이 더 잘 이해되었던 것 같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두 역사가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한 명은 '주체적 수용사관'을 주창하신 故 박정신 교수다. (...) 서구 중심주의와 학벌 계급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르쳐 주셨다. (...) 다른 한 명은 네덜란드의 조지 하링크 교수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사관에 사로잡히지 않는 역사 서술이다. 하링크 교수는 특정 역사관에 사로잡히는 것에 대해 경계하며 역사적인 사료들을 편견 없이 접하되, 보다 논리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지금도 필자를 연단시켜 주고 있다.' (저자 서문 중, 12쪽)
'하링크 교수는 "역사가란, 역사학이라는 분야에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소명자"이기에, 역사의 신이 된 것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태도로 접근하기보다는 겸손하게 그 분야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러 주셨다.' (13쪽)]
1부에서는 이준 열사의 인생을 다양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소개한다. 어린 시절과 아내 이일정에 대해서, 그 당시 나라의 상황과 이준과 관계한 사람들에 대해서, 특별히 배재학당, 독립협회, 감옥생활, 전덕기 전도사와의 만남, 헤이그로 가기까지의 이준을 만나는 시간이다.
2부에서는 아브라함 카이퍼와 그의 정당인 '반혁명당'에 대해서 언급하며 한국과 네덜란드의 연결 고리를 찾는다. 이준이 헤이그에 파견될 당시의 네덜란드 상황과 카이퍼의 대한제국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3부에서는 더 스탄다르트지에 보도된 이준과 한국에 대해 소개한다. 헤이그 특사에 대한 '더 스탄다르트지'의 보도를 인용하여 이준의 사망에서부터 반혁명당의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다양한 문헌들을 참고하고 비교하며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저자의 글을 읽으며 역사학자로서의 '노력'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첫째 아들이 역사학자가 되고 싶어 해서 그런지, 내용을 읽는 재미보다도 사료를 해석하고 주장을 전개하는 저자의 모습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시대에 따라 개인이 받아들이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더 크게 공감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의 특수한 상황에서 이준의 사상이 변화하고 그에 따라 다른 선택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회와 개인의 긴밀한 연결성을 생각하게 된다. 제국적 선교가 아브라함 카이퍼 역시 정치 지도자로 약자들을 위한 정책을 펼쳤지만, 아시아 식민지 사람들의 아픔에는 무감각했던 모습을 보였다. 후에 인식의 변화가 있었지만, 처음부터 그런 인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회 진화론'이란, 사회마다 진화의 속도가 다르며 우열이 존재한다고 믿는 학설이다. 예컨대 오늘날 소위 한류 문화와 타 아시아의 문화를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그런 것들도, 대한민국 사회의 우월성을 확인하는 사회 진화론적인 생각이다. (36쪽)
경계하고 기억하고 싶은 부분이다. 이스라엘의 선민의식처럼, 기독교인에게도 그런 우월감이 있지 싶다. 선교나 전도에 있어서도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영환의 유서를 읽으면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열강들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 일본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정부의 모습이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추억이 아닌 현실로 느끼게 한다. (속상한 나날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 헤이그 특사 이준과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해 궁금한 사람, 기존에 알고 있던 두 사람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