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프로젝트 - 팬데믹 시대를 건너는 29개의 이야기
빅터 라발 외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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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의 팬이기에, 그녀가 이 초현실주의적인 시대에 대한 단편을 썼다는 이야기만으로도 이 책을 집어들 여지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은 그녀 외에도 28명의 작가들이 팬데믹의 시대를 지나는 우리의 자화상을 창의적으로 풀어내는 책이었다. 그러니 읽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위로가 필요하니까.

코로나 팬데믹은 단순히 우리집 동거인들이 한꺼번에 집안에 감금되는 익숙치 않은 상황에 놓인 것 뿐만 아니라, 생활의 모든 면들을 휘저어놓았다. 보카치오가 쓴 흑사병의 시대에 모인 <데카메론>속 이야기 발화자들이 자신들이 도망쳐온 바로 그 곳과 그 비극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규칙을 정했지만 결국은 종래에 그 곳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우리는 그 현실에서 크게 벗어날 방법이 없다. 애트우드가 쓴 글에 나오듯, 두개골도 없는 외계인이 우리의 격리를 도와 다른 세계로의 진출 가능성을 따져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처음에는 마스크와 전쟁을 하다가 이제는 마스크와 한 몸이 된 우리이든,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었고 여전히 마스크를 가지고 싸우고 있는 미국이든, 저주가 휩쓸고 간 것 같은 인도든... 세계 어느 나라가 되었건 이제 인류는 비슷한 경험을 한 셈이 됐다. 팬데믹으로 분열하고, 화해하고, 저주하고, 또 싸우고, 또 이해하려는 모든 움직임들을.

내가 기대했던 애트우드 이상으로 나는 이 소설집에서 너무도 좋은 글들을 많이 만났다. 집에 갇혀 삼식이들과 전쟁을 치루는 일에 익숙해져버린 사이에, 내가 미처 닿지 못한 다른 경험을 하는 이들이나 이 모든 경험들을 먼발치에서 조금은 더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들까지... 그리고 적잖은 위로를 받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 또 시작되었다. 이 책의 리뷰를 미루는 내내 아이들이 자꾸 학교에서 쫓겨나 집에 오더니, 리뷰를 쓰는 지금은 이제 우리 가족 모두가 다시 집에 갇혔다. 아무도 출근하지 않고, 아무도 등교하지 않는다. 또다시 배달 쓰레기가 쌓인다. 나는 냉장고와 싸우고, 시간과 싸운다. 이 시간을 살아내고 나면, 우리 모두는 적어도 유전자속에 하나 정도의 공통된 각인은 갖게 될 것같다. 그래서 우리에겐 이런 위로가 절실하다. 진심으로.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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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도 달걀도 필요 없는 건강빵 - 3분 손반죽으로 완성하는 비밀 레시피
유키에 지음, 김유미 옮김 / 테이스트북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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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을 오랫동안 해오면서 이런저런 비건 레시피의 책들을 사보았는데 그때마다 상상한 식감이 아니거나 과정이 번거로운 경우가 꽤있었다. 동물성 지방이나 단백질을 다 식물성으로 대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흔히 디저트나 빵에 기대하는 어떤 맛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책은 제과쪽 디저트는 다루지 않고 실생활에서 직접 만들어 이런저런 식사에 활용할수 있는 아주 소박하고 기본적인 빵 레시피들을 담고있다.

이스트를 줄이고 발효시간을 길게잡고 반죽기가 없어도 손반죽으로 할수있는 활용가능한 레시피들로 채워져있다. 빵의 형태에 따라 반죽하고 형태잡는법을 먼저 제시하고 파래가루나 차조기, 참기름, 깨등을 활용해 만드는 구체적인 레시피들을 나열한다. 이런빵들은 우리가 꼭 비싼 건강빵 맛집을 찾지 않더라도 정말 주식처럼 만들수 있는 것들이라 더 애정이간다.

베이컨이나 햄, 치즈등을 넣은 빵들도 만들기 때문에 엄격한 비건 베이킹 레시피북이라고 할수는 없을것같다. 그러나 빵이 주식은 아니었던 문화권에서 소화에 부담이 되지 않으면서 슬로쿠킹의 즐거움을 맛볼수 있는 빵들을 만들어볼수 있는 계기가될것같다.

가볍고 실용적이고 군더더기없는 내추럴한 디자인이 너무 좋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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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
진 필립스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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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동물원>이라는, 살아있는 것도 죽어있는 것도 아닌 듯한 공간을 상상하게 하는 제목을

접했을 때만해도 나는 이 소설이 그저 스릴러일 것이라는 가정을 했다. 그리고 비가 억수로

세차게 쏟아붓던 날 밤, 딱 그 이틀 동안 소설을 맨 끝부터 거꾸로 보고 싶은 숱한 욕망을

뿌리치며 읽어야 했다. 마침 그 때는 텍사스의 어느 고교에서 총기난사가 '또' 일어난 날이다.

 

공포라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인류 모두에게 공통분모를 가지는 것들이 있지만,

이 소설이 제시하는 공포는 장르 그 자체에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장르를 떠받치는 구조와 인물들에서 오는 것들이 꽤 크다.

 

이 소설 속에서는 폐장이 되는 시간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총기 난사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총기 난사라는 것이 흔하디 흔한 그것이 된 이후에는 이런 사건이

배경이 되는 콘텐츠들이 비일비재하겠지만, 이 소설은 그 안에서 '엄마'의 시선을 택한다.

 

주인공 조앤은 엄마이고, 나는 둘을 키워봤기 때문에 어두워지는 동물원이 아니라

어두컴컴한 극장에서조차 4살짜리 링컨과 같은 아이들이 얼마나 시끄러울 수 있는지

얼마나 쉬지않고 조잘대는지 잘 알고 있다. 일단 등장 인물의 설정부터가

나같은 엄마에게는 대략 거대한 공포가 된다.

 

그러나 이 책이 그러한 단순한 스릴러로 나를 붙잡아두지 않는 것은

이 공포스럽거나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상황 속에서 조앤이 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 어떤 명확한 목표 이상의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이다.

 

-

 

 

으레껏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지면, 그 뒤에는 희생자들의 면면을 이야기하는

형식적인 기사들이 뒤를 따르고, 총기를 휘두른 아이가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라났는지

또 SNS에는 어떤 암시글들을 올렸고, 어떤 락밴드의 음악을 좋아했는지,

학교 생활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글들이 나온다. 하지만 일단 아직 10대일 뿐인 아이가

불특정다수에게 그런짓을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희생된 이들과 저지른 이들 개개인의 면면이 구체화되어 하나의 현실로서

구조를 갖추는데까지도 우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자리에 있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사건이 벌어지기까지 있었던 수많은 연쇄의 고리들이 형체를 갖추도록 하는

이해력이나 상상력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능력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분명히 말한다. 이러한 폭력과 분노의 한가운데에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느끼는 아주 투명하고도 차가운 공포같은걸 말이다.

 

 

 

내 아이를 문밖에 내놓을 때에 당장 그 아이가 어떻게 될까봐 부들부들 떠는 류의

부모가 아니라도 우리는 그 현실을 잘 안다. 엄마에게는 두가지 양극단의 공포가

있다. 내 아이는 총을 맞는 아이가 될수도 있고, 혹은 닥치는대로 쏴죽일 수 있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 어느 쪽도 되지 않도록 키우는 일이 이 세상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안다. 또 그 어느쪽이 되든 뿌리를 엄마에게서 가장 먼저

찾으려고 하는 것이 사회의 심리라는 것도 잘 안다.

 

이 소설은 그래서 그 몇시간 되지 않는 시간적 배경 속에서, 아주 짧고 간결한

문장들로 공포를 키우면서 동시에 부드럽게 감정 및 심리 묘사로 독자들을 이끈다.

단순한 스릴러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심리 묘사는 주인공인

엄마 조앤 뿐만 아니라 사건을 저지르고 있는 녀석들과 한때는 이 아이를 가르쳤던

은퇴한 여교사, 또 함께 살아남고자 애쓰는 10대 소녀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사람들을

둘러싼 가족과 관계, 과거의 이야기들을 타고 넘는다.

 

이 섬세함과 탁월한 묘사가 이 소설이 가지는 가장 큰 강점이자,

이 죽지도 살지도 않은 공간에서 공포를 극대화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 공포는 심리묘사를 타고 넘으면서 커졌다가 이완되었다가 다시 극대화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우리가 늘상 짤막한 신문기사로 지나쳤던 수많은

'사건'들의 단면들을 엮어 이야기로 만들어내고 있다.

 

 

 

-

 

나는 누군가가 이런 공포와 분노를 엄마의 입을 통해 이야기해주어 고맙다고 느낀다.

비록 우리는 아들래미가 총기 난사를 할만큼 위험한 나라에서 살고 있진 않지만

대신 동급생에게 성매매를 알선하든 왕따를 시키든 집단 구타를 하든,

상상하기 힘들었던 것들을 행동으로 옮기는 세대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그 탁월한 표현 가운데 하나를 일기에 적었다.

내 아이가 양쪽 중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문득문득 떠오를때,

또 그렇게 되든 되지 않든, 책임은 결국 엄마라는 존재에게 대다수 지워질거라는걸

잘 알고 있는 이 불균형한 세상에서... (그렇다, 우리는 이미 아기가 통제할 수 없이

울어대는 갓난아기였던 시절부터 맘충이네 어쩌네 소리를 들어온 세대다)

이런 위안을 주는 스릴러라니 아이러니가 아닌지.

 

 

"그녀는 제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결코 그녀는 아이들에게 익히지 않은

쿠키반죽을 먹지 못하게 하거나, 보호자가 없으면 한 블록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공포를 다루지 못하면 결코 아이가

현관을 걸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다. ...(중략) 그런 생각을 할 경우

자신이 어떤 짐승을 풀어놓게 될지, 얼마나 거대한 틈새가 쩍 벌어지게 될지

막연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면 그렇게 된다. 그렇지 않은가?

부모는 스스로를 상상 불가능한 고통에 드러내놓은 다음 그럴 가능성이 없는 척 한다."

 

- <밤의 동물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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