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체험
안토니 블룸 지음, 김승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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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기도는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에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캐스리더스 64월 도서 중 하나인 안토니 블룸 대주교님이 쓰신 <기도의 체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안토니 블룸 대주교님은 1914619일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전공하고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후 1948년 사제품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1950년에 런던의 러시아 정교회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58년에 주교로, 1962년에 대주교로 서품되어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교회를 맡게 되었으며 1966년 총대주교로 서임되었습니다. 그리스도 교파 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에도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1961년 뉴델리와 1966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 러시아 정교회 대표로 참석하였습니다. 2003년에 사임하였으며 그해 84일에 영국에서 선종하였습니다.

생전에 기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하였으며 그중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살아있는 기도>, <기도의 체험>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이 책이 단지 기도의 방법론을 제시할 뿐 아니라, 깊고 생활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내적으로 만나는 길을 안토니 블룸 자신의 기도의 체험으로 밝혀주고 있다고 하십니다. 또한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어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참으로 기도의 필요성과 그 가치를 인식하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 교회가 하느님의 생명이 충만해지기를 기원하셨습니다. (19745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사 다음으로는 안토니 블룸 대주교와 한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본문을 보기 전에 꼭 읽으셨으면 합니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 인터뷰에서 안토니 블룸 대주교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자께서는 기도를 시작해 보려는 분들과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도를 이론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피하고 자신의 경험과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을 기도하기를 원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 그리고 기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자께서는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해 쓴 것이지만, 깊이가 있어 상당히 오랫동안 기도를 해 온 사람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기도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무엇을 깨달아야 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경험을 통해 전달할 뿐입니다. 신비적 기도나 높은 단계의 완덕에 이르는 기도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장 하느님의 부재

 

이 책의 제1장에서는 하느님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기도하고 싶은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 듯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재란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안 계시는 듯 느낄 때 그 부재의 느낌을 말합니다. 기도란 만남이며 관계라는 것, 즉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우리에게나 하느님에게나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재를 불평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안 계실 때보다도 우리가 외면할 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 때가 있는데 저 또한 그렇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겨우 일부를 하느님을 위해 쓰면서, 그 시간에 그뿐께서 현존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그분과 무언가 같은 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분을 볼 수 있는 눈과 그분을 알아챌 수 있는 예민함이 필요합니다.

 

2장 문을 두드림

 

우리가 먼저 손과 마음을 온전히 열 수 있도록 모든 소유욕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로 갈 수 없고,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절제해야 하고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사물에 눈을 돌려서도 안 됩니다. 상상의 신에게로 눈을 돌리는 순간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우상을 만들어 놓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모든 지식을 다 종합해서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느낄 수 없다면, 비록 그분을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문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서 친분을 나눌 때 적절한 말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듯이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택하든지 그 기도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어야 하고 불안하게 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문은 정말 마음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먼저 자신에게 맞고 하느님께도 맞는 기도문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는 마음을 전부 쏟아야 하며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이며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3장 내면으로 들어가기

 

기도를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자면 바로 자신 안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마음과 정신과 뜻을 다해 드릴 기도를 한 가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는 전례적으로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없고, 자신과 잘 맞고,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면 됩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지니는 모든 의미와 풍요로움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면 됩니다.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닌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기도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생활에 적용해야만 의미를 갖습니다. 기도와 생활이 서로 엮이지 않으면 기도는 마치 우리가 필요할 때만 하느님께 바치는 일종의 서정시와 같아집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 알아야 합니다.


 

4장 시간 활용하기

 

바쁜 세상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긴장하면서 분주하게 보내는 하루하루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 데 보내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멈추어 하느님께로 향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현재에 자신을 놓는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으며, 미래는 아직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뛸 시간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모든 힘을 다해서 '지금'이라는 현재에 우리의 온 존재를 집약시켜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지금'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침묵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우선 입을 침묵시키는 데서 시작해서 감정의 침묵, 마음의 침묵, 몸의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침묵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내적으로 조용해졌을 때 요한 묵시록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묵시 3,20)


 

5장 하느님께 말씀드리기

 

5장에서는 기도가 우리에게 자연스러워져 쉽게 기도하게 되고 기도 안에서 생활하게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그분'이라든가 '전능하신 분' 등 나와 거리가 먼 3인칭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신이라고 가깝게 생각할 때에 비로소 시작된다고 합니다. "내 기쁨이여!"와 같은 말로 그분을 칭할 때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 됩니다. 하느님을 부를 나만의 호칭을 만들어 그 이름을 자신의 온 마음과 사랑을 담아 부를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가 하느님과 멀리 있음을 깨닫고, 그분께로 향하는 문을 두드리려고 자신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문 앞까지 온 것입니다. 곧 그 문이 열릴텐데 그때는 하느님을 부를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지 않으니까 하느님의 응답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6장 두 가지 묵상

 

6장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어느 신부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입니다. 하느님을 이 지상에 불러오신 분이지요. 이런 뜻에서 우리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 라고 부릅니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인간이 되어 하느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셨고,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여 그분의 뜻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겸손했기에 하느님이 그분에게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1983년 아토스산에서 실로우안이라는 신부가 죽었습니다. 그는 20대에 아토스산으로 들어가 50년 동안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토스산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집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제 편이 되어 주신다면 가야겠습니다. 그분이 책임지고 저를 구원해 주실 테니까요." 그는 일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함께 기도했고 수도원에 돌아와서 공동 기도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관상 기도와 탄원 기도가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를 볼 수 있는데 "그를 기억해 주십시오." 라고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몇 시간 동안 계속하는 기도 속에서 남을 위한 연민으로 하는 탄원 기도와 사랑 가득한 관상 기도가 서로 합해지면서 계속되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책은 오늘의 교회는 과연 기도하는 교회인지,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기도하지 않는 교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내적 생명력을 잃은 거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 필요성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교회는 하느님을 전할 수 없고 형식적 종교 단체에 불과합니다. 우리 모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릇된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올바른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면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예비신자, 영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심자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신 분들이나 냉담 중이신 분들도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가톨릭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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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시
노리치의 율리아나 지음, 강대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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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리더스 6기 3월 도서로 선정된 <사랑의 계시>는 중세의 위대한 신비가 노리치의 율리아나가 전하는 하느님의 계시에 담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이 책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의 섭리로 보호를 받는다는 확신을 토대로 한 낙관주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신 노리치의 율리아나는 중세 잉글랜드의 뛰어난 신비가이자 은수자로서 1342년 즈음에 태어났습니다율리아나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런던 다음가는 상업 중심지인 노리치에 있는 성 율리아노 성당 오른쪽에 있는 작은 은수처에서 살았습니다그녀가 노리치 성당의 은수자였다는 사실 말고는 그의 생애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1373율리아나는 심한 고통 중에 하느님께 16차례나 되는 환시를 경험하였는데 이때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삼위일체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그 후 20년 넘게 자신이 체험한 신비를 묵상하였습니다중병에서 회복된 뒤 자신이 체험한 계시에 관하여 기록한 두 가지 본문을 남겼는데 이 본문이 바로 <사랑의 계시>입니다두 본문 중 하나는 환시를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쓴 짧은 본문이고다른 하나는 20년 정도 지난 뒤 그 계시에 대한 묵상을 거듭하며 쓴 본문입니다이 책은 잉글랜드에서 여성이 영어로 남긴 최초의 작품으로서영문학에서도 매우 중요시하는 귀중한 저서입니다율리아나는 잉글랜드의 중요한 신비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쳤고, 1416년 즈음에 선종하였습니다.

 

율리아나는 육신의 질병을 앓게 되자 주님와 함께 고통을 받고자 하였습니다하느님에 대한 열망과 연민으로그분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그러나 결코 하느님의 계시나 육체적인 환시를 보고자 한 것이 아니였습니다그저 한 다정한 영혼이우리를 사랑하시어 죽을 인간이 되신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하려는 연민에서 나온 열망이었습니다그러기에 그는 그분과 함께 고통받기를 갈망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하느님의 선하심이 가장 드높은 기도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의 본성적인 의지는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며하느님의 선한 의지 또한 우리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그리고 우리는 충만한 기쁨 속에서 그분을 모실 때까지 결코 그러한 원의와 열망을 그칠 수 없습니다우리에게 그보다 더한 열망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를 통하여 보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니고 바로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또한 계시는 그 계시가 끝날 때까지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드러날 것입니다율리아나는 계시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주님을 바라보기 위하여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삶도천사도권세도,

현재의 것도미래의 것도권능도,

저 높은 곳도저 깊은 곳도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로마 8,38~39)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율리아나의 환시에서 자주 되풀이 됩니다율리아나는 확신에 찬 대담함으로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겨 이야기합니다이것이 그의 신비 신학이 지닌 특징적인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하신 절대 진리이고지혜이며사랑이십니다진리와 지혜가 있는 곳에 참으로 사랑이 있고 그 둘에게서그리고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모든 것에서 사랑이 나옵니다곧 하느님께서는 무한하신 절대 진리이며지혜이고사랑이며창조되지 않으신 분입니다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똑같은 본성을 지니신 하느님 안에서 '창조된피조물입니다그 영혼은 언제나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수행합니다하느님을 바라보며 사랑합니다이에 하느님께서는 그 피조물 안에서 기뻐하시며그 피조물은 하느님 안에서 끝없이 놀랍니다.

 

율리아나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라고 하며 하느님의 영원하고 자비하신 사랑 안에서 희망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율리아나의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메아리칠 것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사순 제5주일인 오늘이제 사순 시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며 은총의 사순 시기를 보내는 우리에게 이 책은 희망을 줍니다.

 

저는 이 책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분들특히 쉬고 있는 교우들(냉담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그분들께서 이 책을 읽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길 바랍니다우리는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통하여 신앙 안에서 우리를 지켜야 합니다무한하신 사랑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지켜 주실 것입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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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손희송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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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도에 나온 책의 개정판입니다. 이 책으로 손희송 주교님의 사제 수품 25주년을 기념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은 교회 내의 월간지와 신문에 게재했던 글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던 글을 모아서 엮은 것입니다. 손희송 주교님께서 생각이 여물 때마다 가끔씩 올리셨던 글에 대해 공감과 격려로 응답해주신 분들을 통해서 또 하나의 '따뜻한 동행'을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손희송 주교님께서는 독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확신을 굳건히 하는 데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는 책이 좋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인생길,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에서 동행해 주신다는 믿음은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어 주는 등불이 되고, 힘들 때 우리를 지탱해 주는 지팡이가 될 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때론 혼자라는 생각에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성경은 '하느님은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따뜻한 분'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와 좀 더 가까이 계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은 인간들과 함께 사시면서 그들이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동행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예수님은 지상에서 당신 사명을 마치고 성부께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동행을 약속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호해 줄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저는 이 책의 1부에서 '나의 천사들'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특히 눈에 띄였습니다. 20047월 생활성서에 실린 글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천사를 보내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천사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가톨릭 교회는 천사들을 전례력 안에서 기억합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명시된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929)과 수호천사 기념일(102)에 천사들을 공경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실현에 봉사하기 위한 존재인 천사들은 결국 인간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돕고 인도하는 존재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사람은 일생 동안,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의 보호와 전구로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336)

천사가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누군가가 내 곁에 머물면서 필요한 보호와 도움을 준다면 그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이며 수호천사인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수호천사의 역할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작은 사연이 있습니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신부 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어느 본당에 주임 신부로 발령을 받았는데 본당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임이 되니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가 사제관에 계시면서 살림을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주일 오전에 본당 수녀님께서 우연히 사제관을 지나가다가 사제관 집무실의 창문이 열려 있어서 자연히 방 안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는데 주교님(당시에는 신부님)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이 교중 미사 시간이어서 주임 신부는 미사 집전 중인데, 왠 낯선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바로 필자의 어머니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왜 그 시간에 아들 집무실에 들어가 계셨느냐고 물었더니, 아들 신부가 주일이라 바빠서 묵주 기도를 못 할 것 같아 아들 의자에 앉아서 대신 묵주 기도를 하신 거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필자는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어머니께서 수호천사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사제가 되었고 지금까지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어머니를 수호천사처럼 느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수호천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저의 어머니도 그런 분이시구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데, 때로는 부모나 가족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주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는 누구라도 다른 이에게 천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천사가 될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바로 천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보려는 눈만 있다면 작은 천사들이 우리 주위에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들을 귀가 있다면, 우리 각자가 지금, 여기에서 옆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천사가 되라는 하느님의 나지막한 부르심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며 글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반대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부에서 '성가정을 이루는 법'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눈에 띄였습니다. 가정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을 얻는 보금자리요, 사람을 키워 내는 못자리며 건전한 사회의 초석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가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전례적으로는 성가정 축일을 정해서 가정의 성화를 추구합니다. 성가정이란 예수, 마리아, 요셉이 이룬 가정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도 그 가정을 본받아서 성가정을 이루고자 다짐하는 데에 이 축일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리아, 요셉의 가정이 성가정인 이유는 그들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신앙인이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선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귀를 기울였고 그 뜻을 기꺼이 따랐습니다. 성모님은 인내와 겸손의 태도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시고, 그런 태도로 아들을 기르신 분이고 요셉 역시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온갖 어려움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요셉 성인은 자비와 헌신의 태도로 가족을 돌보면서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실천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충실, 부모에 대한 효도로써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예수, 마리아와 요셉, 그분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어려움과 고민이 있었고 속이 상하는 일도 있었고, 또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이분들이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우선으로 하고, 그 뜻을 인내와 겸손, 자비와 헌신, 충실의 태도로 실천하면서 서로를 감싸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가정을 이루려면 예수, 마리아, 요셉의 모범을 따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가족끼리 인내로 참아 주고 관대하게 대한다면, 또한 자신을 쪼개 주고 가족 간의 도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가정도 서서히 거룩한 가정이 될 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족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먼저 살펴보게 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본분을 다했는지, 나를 앞세우기 전에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는지를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게 반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반성하는 기도 시간을 갖는다면 그 가정은 서서히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바쁘다고 핑계 대지 말고 어려워도 함께 모여 자주 기도를 바치면서 거룩하게 변화되는 가정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하시며 글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데 저는 두 가지만 언급을 했습니다.

맺음말에서 어떤 사제로 살아가고 싶은지 언급을 하셨는데 사제는 한결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단순하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제들, 혼란과 변덕스러움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확신 있고 꿋꿋하게 가는 사제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도 그런 사제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신다고 하시며 마무리 하십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린다고 해도 하느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 분입니다. 손희송 주교님께서는 이 책을 통해 신앙인들이 주님의 '따뜻한 동행'을 체험하고, 늘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아울러 우리도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주님 곁에 머물면서 그분께 힘을 얻어 다른 이들과 동행해 주는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나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손 잡아 주고 기도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제게 바라시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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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함께하는 10일의 밤 - 그리스도와 일치하기 위한 영적 안내서
일리아 델리오 지음, 이형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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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3년 동안 캐스리더스(가톨릭출판사 서평단)를 했는데 올해에도 하게 되었습니다. 캐스리더스 6기 1월 도서는 두 가지 책 중에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저는 이 책을 선택했습니다. 일리아 델리오 수녀님께서 쓰신 <주님과 함께하는 10일의 밤>이라는 책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치하기 위한 영적 안내서라고 써 있습니다.

이 책을 쓰신 일리아 델리오 수녀님은 프란치스코회 수녀이자 과학과 종교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미국의 영성 신학자입니다. 뉴저지 럿거스 대학에서 약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뉴욕 포담 대학교에서 역사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교회사를 비롯해 프란치스코 영성 및 보나벤뚜라 영성을 연구했습니다. 현재 빌라노바 대학교 신학부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화와 인공지능, 의식, 문화와 종교와 같은 여러 주제를 폭넓게 강의합니다. 저서로는 <사랑 가득한 마음 : 아씨시 클라라의 영성>, <프란치스칸 기도>, <울트라 휴머니즘>, <우리의 형제 자매, 피조물>, <하느님의 겸손 : 프란치스칸 관점에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랑 :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에 대한 성 보나벤뚜라의 신비주의>, <간추린 보나벤뚜라 : 그의 삶, 사랑, 저작 개괄> 등이 있습니다.

옮긴이는 부산교구 사제이신 이형규 신부님이신데 신부님께서는 2017년 5월에 미국 성 마인라드 신학대학언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17년 12월에 사제품을 받으셨고, 교구장 비서로 재직 중이시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다루는 책은 많습니다. 영적 식별의 위대한 스승인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의 책도 있고, 거기에 기반한 다른 책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하느님의 뜻을 식별하기보다 우리가 그 뜻을 알게 될 때 자유로워진다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우신 신비는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지만, 이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영적인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에 관해 우리가 완전히 알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을 알 수 있으며, 하느님을 사랑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과 자유 사이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이 책에서는 10일의 밤을 제시합니다. 이 밤들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찰하는 시간입니다.

첫째 밤 - 일깨움과 발견

하느님의 뜻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이며,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접하고, 받아들이고, 사랑으로 응답할 준비를 갖춰야 합니다. 우리 삶의 의미는 오직 하느님 사랑 안에서만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깊은 곳에 우리의 행복, 평화, 희망, 그리고 삶의 충만함이 놓여 있습니다. 이 첫째 밤은 하느님의 심오한 단순함, 곧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점을 숙고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은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매 순간 발견하는 것이며 우리는 하느님 사랑을 찾기 위해 샅샅이 살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밤 - 기도

기도는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방향을 안내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도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제쳐 두고' 내 삶의 중심을 하느님께 두는 일입니다. 곧 내 마음을 하느님께 의탁하고 순수한 사랑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붙잡고 있는 것들을 포기함으로써 영적으로 가난한 이가 되라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기도란 우리 안에 머물고 계시는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열어 보이는 일이며 하느님의 현존에 귀 기울이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로써 인내할 때 삶의 중심에서 하느님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셋째 밤 - 갈망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으며, 하느님의 능력을 지녔기에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하느님은 참으로 상호적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안에서 사는 삶은 자유로이 선택한 사랑의 관계입니다. 식별이란 우리 자신과 우리 내면의 영적 움식임에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인데 하느님의 영에서 비롯된 움직임인지 아닌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를 하느님께 더 가까이 이끄는 게 무엇인지, 하느님 사랑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차려야 합니다.

넷째 밤 - 선택

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하는지 깨닫게 해는 표징들에 대해 살펴봅니다. 여기서는 선한 영혼과 악한 영혼의 차이점을 구별하기 위해 이냐시오 데 로욜라 성인이 사용한 방법을 활용합니다. 이냐시오 성인의 '지성적' 접근 방식은 프란치스코회의 전통적인 관점을 통해 완화됩니다. 프란치스코회의 접근 방식은 마음의 내적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느님을 갈망하며 불안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우리 마음을 찾는 하느님 마음이 식별이라고 알려 줍니다. 마음이 마음을 부릅니다. 그러므로 식별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어짐에 따라 생겨나는 지속적인 움직임입니다.

다섯째 밤 - 하느님의 사랑으로

여정의 중간인 다섯째 밤은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우리 삶의 가라지들 사이에도 여전히 밀이 자라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여섯째 밤 - 사랑의 무게

여섯째 밤에는 우리 삶에서의 선택을 넘어 하느님을 위해 선택하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식별이 성숙하게 되면 하느님께 자기 자신을 내어 맡기거나 자신을 포기하게 됩니다. 이렇게 열어 보임, 존재의 가난함, 받아들임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의 삶이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기도의 열매이며 삶의 중심을 하느님 안에 두는 것입니다. 우리 삶 전체를 선물로 받아들일 때, 감사는 의탁의 언어가 됩니다.

일곱째 밤 - 사랑의 달콤한 의탁

여덟째 밤 - 사랑의 물결

일곱째와 여덟째 밤에는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일이 사랑의 밀물과 썰물 속에서 살아가는 것임을 살피게 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붙잡고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러한 순간들이야말로 하느님께로 부르는 초대며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하느님을 두도록 이끄는 단초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삶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는 단순함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자연이라는 교과서가 보여 주는 자기 내어줌(self-surrender)을 통해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살펴봅니다.

아홉째 밤 - 신앙 속의 자유

의탁에서 자유로 옮겨 가는 과정을 성찰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사로잡힌 존재로 하느님의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삶에서 하는 선택이 우리 자신보다 크지만 우리를 완전하게 하는 사랑, 바로 그 사랑 자체만을 위한 것이 될 정도로 하느님 사랑의 신실하심을 체험하고 그분의 현존을 믿게 됩니다.

하느님께 의탁하고, 자유로이 하느님 안에 사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죽음이야말로 생명의 충만함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여깁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진정한 자유란 타인을 사랑하는 참된 헌신의 길입니다.

열째 밤 - 그리스도 안에 살기

우리는 다른 이를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참으로 사랑하게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이와 일치하는 데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이 되게 하는 자유인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에야 하느님 나라가 우리 삶을 통해 펼쳐집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사랑 속에서 자신을 내어 줄 때만이 살아 계십니다. 사랑 속에 살려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서 우리 삶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의미입니다.

독자들은 각 밤 끝마다 제시된 <잠시 묵상하기>에 제시된 질문을 보면서 이 책의 내용을 다시 되돌아볼 수가 있고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삶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랑 안에서의 자유를 누리면서 성장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분으로 충만해지면 참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갈망하나 이 세상 속에서 여전히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유는 행동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상태입니다. 우리가 한계, 실수, 오류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시는 게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저자는 이 책이 즉각적인 해답을 주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과 영혼에 비옥한 양분을 제공하기 바란다고 하셨고 그리하여 작은 겨자씨와 같은 우리 삶이 커 나가 사랑이라는 수확의 결실을 얻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삶 또한 그렇게 될 수 있길 희망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삶의 충만함에 이르기 위한,

성령 안에 살아가기 위한,

사랑 안에 머물기 위한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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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밤 - 최민순 신부 시집
최민순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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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재작년 1월부터 가톨릭출판사 서평단인 캐스리더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캐스리더스 올해의 마지막 책으로 최민순 신부님의 시집 <· >을 선택했습니다. 재작년과 작년에는 가톨릭출판사에서 그 달의 책을 선정해서 보내주셨는데 올해에는 매달 3권의 책 중에서 1권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주셔서 그 점이 좋았습니다.

이 책의 표지에 있는 띠지에는 <고백록>, <신곡>, <아가>를 최초로 완역한 최민순 신부의 모든 것이 담긴 시집 <>, <> 70여 년의 세월을 넘어 합본으로 새롭게 출간이 되었다고 써 있습니다.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최민순 신부님에 대해 아시지만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작가 소개를 하려고 합니다. 최민순 신부님께서는 1912년 전라북도 진안에서 태어났으며 1935년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천주교회보사와 대구매일신문 사장으로 일했으며,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교에 유학하여 2년 동안 신비 신학과 고전 문학을 연구하였습니다.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 의원,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저서로는 수필집 <생명의 곡>과 시집 <>,<>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단테의 <신곡>,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론> 등이 있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번역은 정확하고 아름다운 번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밖에 가톨릭 공용어 심의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주의 기도', '대영광송' 등의 기도문을 번역하였으며, 성가 여러 편의 노랫말을 짓기도 하였습니다. 1960년 제2회 한국 펜클럽협회 번역문학상을 수상하였고, 1974년 로마 가르멜회 총본부로부터 명예회원 표창장을 받으셨습니다. 1975년 지병인 고혈압으로 선종하셨습니다.

'시인'이자 '사제'이신 최민순 신부님의 진수가 담긴 두 시집, <><>을 합본으로 새롭게 출간했는데 이번 합본 시집 <· >은 시의 표기는 현대 맞춤법을 따르되, 원문의 느낌과 운율을 살리고자 당시 표기를 가능한 그대로 실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에 대한 설명을 각주로 달아, 독자들이 시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구성하셨습니다. 참고로 <>1955년에, <>1963년에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맨 앞부분에는 염수정 추기경님과 정순택 대주교님의 추천의 말씀이 실려있고 그 다음에는 <><>이 실려있습니다. 그리고 번역 시편인 성녀 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 그리고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글이 실려있습니다. 부록으로는 최민순 신부님의 연보와 작품, 그리고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최민순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와 김수환 추기경님이 쓰신 최민순 신부님의 장례 미사 강론으로 마무리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추천의 말씀을 쓰신 염수정 추기경님께서는 최민순 신부님의 시에는 하느님을 향한 깊은 사랑과 열정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신부님의 시를 가만히 읊어 보면 일상과 자연의 소박함 속에서 발견한 하느님에 대한 깊은 사랑이 느껴진다고 하십니다. 저 또한 이 시집에 수록된 주옥같은 시를 읽으면서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느껴졌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시 하나하나에 담으신 신부님의 마음은 지금까지도 작품을 만나는 독자들이 느낄 수가 있습니다.

추천의 말씀을 쓰신 정순택 대주교님께서는 우리말의 연금술사 같은 최민순 신부님의 시에는 세심한 손길과 풍부한 감수성으로 표현한 우리말이 아름답게 펼쳐진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러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구약 성경의 시편과 아가,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저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고백론>, 그리고 단테의 <신곡>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번역하셨습니다. 이 작품들을 보면 단순히 번역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를 쓰셨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운율이 살아 있기에, 신부님께서 번역한 작품들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감동을 주고 있다고 하십니다.

 

이 시집에 실린 많은 시 중에서 눈길을 끈 시를 하나 소개하려고 합니다.

'나는 그대의 것(VUESTRA SOY)'이라는 시입니다.

그대 위해 삼겨난 몸 난 그대의 것

나로 하여금 무얼 하라시나이까

엄위하신 지존

영원하신 슬기시여

내 영혼 어여삐 보옵시는

님이여 지존이여 지선이여

굽어보소서 더럽고 더러운 이 몸

오늘 이렇듯 그대에게 사랑을 노래하노니

"나로 하여금 무얼 하라시나이까"

날 지어 주셨기에 그대의 것

날 속량해 주셨기에 그대의 것

날 참아 주셨기에 그대의 것

날 불러 주셨기에 그대의 것

날 기다려 주셨기에 그대의 것

나 절개를 꺾지 않았기에 그대의 것

나로써 무얼 하라시나이까

(중략)

그대 위해 삼겨난 몸 난 그대의 것

나로 하여금 무얼 하라시나이까

미천한 피조물인 저희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만드셨고 우리를 위해 존재하십니다. 우리 또한 그분을 위해 존재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그분께서 바라시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님의 시를 읽으면서 하느님과 더욱 가까워지고 싶고 일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시에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최민순 신부님께서는 하느님을 떠나서는 삶의 의미나 존재의 가치를 찾지 못했다고 말씀하셨고 그분의 영성의 깊이, 신앙의 깊이는 참으로 우리 모두가 본받고 따라야 할 귀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순택 대주교님께서는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을 읽어 보기를 권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최민순 신부님의 시들은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동시에,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비추며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보여 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책을 통해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이가 ''에 대한 최민순 신부님의 마음을 닮아 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는 염수정 추기경님의 말씀처럼 저를 포함한 많은 독자들이 그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최민순 신부님의 다른 저서들과 번역서 또한 많은 분들이 읽고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그분께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한결같은 경외심과 애정이 간절하지 않고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사랑의 시, 믿음이 깊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신앙의 시로 우리에게 영성의 별이 되신 신부님, 신부님의 작품들은 모두가 다 불후의 명작으로 한국 가톨릭 역사에,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해인 (수녀, 시인)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그동안 좋은 책을 보내주신 가톨릭출판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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