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1 - 깊고 고요한 성찰의 공간, 수도원 이야기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1
이관술 지음 / 생활성서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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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생활의 시작부터

성 베네딕토회 개혁까지

 

하느님께 다가가는 신비한 여정,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1>

깊고 고요한 성찰의 공간, 수도원 이야기

 

저자는 수도원 기행이야말로 이탈리아를 가장 잘 이해하는 방법일 수 있음을 일깨워 줍니다. 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신비의 여정을 통해 하느님의 시간을 인간의 역사 속에서 만나고 , 우리 신앙의 '한 처음'을 되돌아보는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 안에서의 작은 고독과 침묵의 시간은 현대인들에게 내면의 평화와 삶의 의미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합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수도원을 '보는 법'을 알려 줍니다.

수도원은 영성과 지혜가 깃든 장소로, 하느님의 시간을 체험하고 고요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되새길 수 있는 특별한 장소입니다.

이 책은 수도원을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수도원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해 줄 것입니다.

 

<성 베네딕토회 왜관수도원장 박현동 아빠스의 '추천의 글' 중에서>

 

 

책으로 하는 순례여도 독자들은 감동과 교훈을 누릴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초대하는 수도원 순례를 통해 우리 '인생 순례'에 도움이 되는 영성의 길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작은 형제회 오학준 요한 신부님의 '추천의 글' 중에서>

 

하느님께서 제게 보여 주신 당신의 모습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그 마음이 제가 이 길을 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앞으로 보여 드릴 이탈리아 수도원 이야기는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낼 현미경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세속의 시간, 특히 중세 천 년(6~15세기)과 종교 개혁 이전까지의 시간에서 하느님의 때를 적극적으로 기다리며 살았던 수도원의 삶을 통해 우리의 시간에 계신 하느님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 책을 쓰신 이관술 작가님의 들어가는 말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낼 현미경 같은 수도원 이야기' 중에서>


이 책을 쓰신 이관술 작가님은 교황청립 살레시오 대학교 신학부를 졸업하고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교에서 성지순례학 마스터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풍부한 소유가 아니라 풍성한 존재를 위해 30년째 로마에서 신학자로 그리고 순례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솔로몬의 매듭, 2부에서는 신비의 우물이라는 주제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저는 1부의 2장에서 언급된 베네딕토 성인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였습니다. 위대한 성인의 삶에서는 성경 속 예수님의 삶과 유사한 장면을 자주 볼 수가 있는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시기 전,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를 하신 것처럼 베네딕토 성인도 3년 동안 은수자로 단식과 기도 생활을 했고 사탄의 유혹과 싸우고 이겨내셨습니다. 은수자 생활을 하며 '나의 하느님'을 만난 베네딕토는, 공생활로 하늘 나라를 보여 주신 예수님처럼 세상에 나온 수도자들이 공동 생활로 어떻게 '우리의 하느님'께 함께 갈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삶의 길로 제시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로 대표되는 수도원 규칙서까지 만든 그는 547321일 선종했습니다. 현재 그의 유해는 동생 스콜라스티카 성인의 유해와 함께 몬테카시노 대수도원 중앙 제대 아래에 잠들어 있습니다.

 

믿음은 하느님께 내 마음의 공간을 내어 드리는 것이고 우리는 살면서 위험하고 부족한 것을 세상의 것에 맡기고 찾아 채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것보다 편리한 것을 찾고, 주님의 뜻보다 내 계획에 나를 맞추려 합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례를 떠난다면서 쟈신이 세운 계획에 맞춘 여행을 떠나는 느낌입니다, 하느님께 내 마음의 여지를 얼마나 두었는지에 따라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유명한 말을 비틀어 "보는 만큼 앎이 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 방향에서 보는 것은 편협함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인데 겸손이 앎의 시작입니다. 겸손은 나 자신을 비우는 것이고, 비워진 자리에 앎이 들어설 공간이 생깁니다. 알기 위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깨달음을 위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이성의 앎은 삶의 지혜가 되고 신앙의 믿음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의 2부에서 특히 제 눈길을 끌었던 것은 '다른 전례, 같은 믿음' 이라는 제목의 내용이였는데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계 어디를 가든 하나의 전례를 사용하기에 언어는 다르더라도 같은 형식의 미사를 드릴 수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것이 편협하고 잘못된 지식이였다는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처럼 로마 가톨릭 전례를 따르는 외국의 성당에서만 언어가 달라도 같은 형식의 미사에 참례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신데 그분은 우리에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여러 갈래의 길로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습니다. 높은 산을 올라가는 방법은 다르지만 결국 모두 정상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신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서로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전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전례는 다른 방법으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다양한 찬미의 노래입니다.

 

1023년 성 로무알도가 세운 카말돌리회에서는 은수 수도자를 돕는 평신도를 '콘베르시(노동 수도자)'라고 불렀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카르투시오회나 시토회에서도 같은 역할을 하던 평신도나 평수도자를 콘베르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콘베르시들 덕분에 자급자족에 더 적합한 삶을 살 수 있었고, 콘베르시 제도 도입은 9세기 이후 수도원이 외부인을 고용해 이익을 얻는 폐단을 없앨 좋은 방법이였습니다.

 

시토회의 모든 건물은 사랑이신 하느님을 만나는 도구였는데 성 베르나르도는 '하느님 사랑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4단계를 설명합니다.

첫째는 인간의 본성적인 자기 사랑인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는 단계이고, 둘째는 하느님께 은총이나 축복을 청하는 나를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셋째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깨달은 피조물의 겸손한 사랑인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넷째 단계는 하느님을 위해서만 나를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이는 영성의 최고 단계인 지복직관으로서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둘러싸인 자신을 보는 것으로, 관상을 넘어 탈혼의 상태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신비적 사랑입니다. 이런 완전한 사랑에 휩싸이기 위해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도자들의 가난은 자기 선택적 가난인데 주어진 모든 것에 만족하는 수도자의 마음에서 충분함이라는 공동체의 가난의 마음에 여유로움을 주면서 하느님께 향할 수 있는 기도가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 가난한 수도자의 마음과 결합되어 나오는 것이 노동인데 노동은 하느님께 향하는 흐트러진 마음을 잡아 주기도 하지만 바오로 사도의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2테살 3,10)는 말처럼 공동체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한 것입니다. 병든 수도자나 아픈 수도자가 있으면 그들의 노동을 대신하는 것이 공동체 안에서 애덕을 실천하는 덕목이 되기도 합니다.

 

이 책에는 이탈리아 수도원과 성당, 책의 내용과 연관이 있는 사진이 곳곳에 수록이 되어 있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이 책에 언급된 여러 수도원의 평면도도 수록이 되어 있고 성인들의 삶과 저자의 생각이 담긴 글도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독자들은 수도원의 신비와 함께 하느님께 다가가는 여정에 동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영성과 지혜가 깃든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을 통해 하느님의 시간을 체험하고 고요 속에서 제 자신의 신앙을 되새길 수 있길 바랍니다. 아직 이탈리아는 가 본 적이 없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가고 싶습니다. 여행도 좋겠지만 성지순례를 한다면 더 뜻깊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소개된 이탈리아에 있는 여러 수도원을 꼭 가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수도원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고 수도원의 모든 것을 새롭게 보고 싶은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을 떠나기 전에 이 책을 미리 읽는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은 1권과 2, 총 두권인데 저는 첫번째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이탈리아 수도원 기행 2도 같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특별 서평단에 선정해주시고 좋은 책을 보내주신 생활성서사에 감사드립니다.

 

* 생활성서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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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
로널드 롤하이저 지음, 이선정 옮김, 허찬욱 감수 / 생활성서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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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롤하이저 신부님의 <나를 구하시지 않는 하느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번에도 생활성서사 특별 서평단에 선정이 되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The Passoin And The Cross>입니다. 고통 중에서 뱉는 우리의 수많은 물음에 같이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는 책이고 따라서 '희망의 순례자'로 살아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묵상해 보면 제목의 깊은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신앙은 고통과 불행을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고 신앙인도 남들이 겪는 고통을 다 겪습니다. 오히려 신앙인은 신앙인이 아니였다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까지도 더 겪게 됩니다. 고통 속에서 하느님을 원망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쓰신 조환길 타대오 주교님께서는 이 책이 고통을 겪는 교우들에게 부디 큰 위로와 희망을 주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에 더 많은 분께 가닿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이 책이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사목자의 예리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문장들이 있고 저자의 깊은 영성이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복음의 진리, 우리를 변화시키는 엄청난 복음의 진리를 보게 됩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하느님이 현존하신다는 놀라운 현실을 이해하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부활의 힘에 대한 강력한 증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예수님이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신 그 모든 활동보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고통이 더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받으시는 예수님처럼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삶에서 심오한 방식으로 우리의 사랑과 우리 자신을 내어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진짜 고통은 사랑으로 가득 찬 사람이 치명적이고 굴욕스러운 방식으로 오해받고 거부당할 때 느끼는 고통입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은 무엇보다도 인간 존재의 가장 어두운 심연, 즉 오해, 외로움, 고독함, 굴욕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의 심연으로 홀로 들어가는 고통입니다. 


우리도 살면서 오해와 외로움이 휩싸이게 되는데 이때 심연에 빠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보다 먼저 그곳에 계셨고 우리와 똑같은 외로움을 견뎌 내셨다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육체적인 관계를 갈망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간절히 정신적인 친밀함을 갈망하는데 우리의 가장 심오한 갈망은 정신적으로 나와 동류인 영혼, 말하자면 소울메이트(soulmate)를 향한 갈망입니다. 훌륭한 우정과 결혼 생활은 언제나 강한 정신적 친밀함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러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진실한 의미의 연인입니다. 어떤 사랑이건 간에,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이 나와 똑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동류의 영혼이라는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그런 사랑을 쉽게 찾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사랑을 찾지 못해 불안해하고 만족하지 못하면서 정신적인 외로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외로움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과 용서 속에서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저 또한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각자의 영혼을 바쳐야만 하는데 그날이 오면 우리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요?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지키고 하느님께 순명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비밀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우리가 이해해야 할 심오한 지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이해하게 되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나머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가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하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나머지 모든 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비밀은 바로 모욕과 망가짐, 죽음을 감수하는 완전한 자기희생으로 사랑을 베풀 때만 우리 삶이 최고로 충만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구원받습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길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구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굴욕과 고통, 죽음에서 우리를 구해 주시려 개입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일이 벌어진 후에 굴욕, 고통,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의롭게 하시며 고통을 감내할 힘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은 우리 삶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여정에서 다른 모든 이가 겪는 굴욕과 고통, 그리고 죽음을 똑같이 겪을 것입니다.


미움을 가져가시고 사랑을 돌려주신 예수님은 분노를 가져가시고 자비를 돌려주십니다. 그리고 시기를 가져가시고 축복을 돌려주심으로써, 신랄함을 가져가시고 온화함을 돌려주심으로써 세상의 죄를 없애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으로 죄의 정화 장치가 우리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찬양하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이 되어  미움, 분노, 시기, 옹졸함, 신랄함을 흡수한 후 그것들을 변화시켜 사랑, 자애, 축복, 온화함, 용서로 되돌려줘야 합니다. 내가 받은 대로 똑같이 돌려준다면 공동체 안의 죄는 그대로 남게 되고, 희생양은 상황을 바꾸는 데 아무런 역할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당한 것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으셨던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죄를 흡수하고 지니고 있다가 고통스러운 자기희생으로 죄를 다른 것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가 세상 모든 종교와 철학 중 유일하게 희생양을 찬미하게 된 이유입니다.


남들이 잘 걷지 않은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은 그 길에서 하느님의 진정한 사랑을 보여 주셨고 믿음과 사랑을 마지막까지 지켜 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졌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신앙의 승리일 뿐 아니라 사랑과 진실, 그리고 하느님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다 이루어졌다."라는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세상에는 고통과 죄악이 존재하지만 결국에는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깨달음입니다. 이는 노리치의 줄리안의 말처럼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결국 모든 존재의 모든 방식이 잘 돌아가게" 된다는 깨달음의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셨고, 자신의 믿음이 가져올 고통을 아시면서도 끝가지 믿음을 지켜내셨고, 후회없이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침묵하시는 순간에도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고 믿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죄와 죽음은 결국 저에게 힘을 쓰지 못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 16,24)


십자가를 지는 것은 고통이 우리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를 거부하고 삶의 고통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비통함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끊임없이 죽음과 탄생, 그리고 상실을 겪으면서도 죽음을 떨치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매일 죽음을 겪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놀라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가능성, 즉 부활을 믿을 때 , 비로소 우리는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믿음 속에서 살게 되며 고통 속의 괴로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 이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더는 겁먹지 않을 만큼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하느님은 부활로써 우리를 위로하시고, 하느님의 음성은 겁에 질린 우리에게 모든 게 다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부활은 하느님이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켜 세우셨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느님의 힘이 우리를 매 순간 떠받친다는 것을 의미하는 부활의 힘을 이해하고 싶다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묵상해 보십시오. 죽은 아들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은 성모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다 괜찮다. 모든 것이 잘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멘.


이 책을 읽는 모든 분들께 하느님의 은총이 풍성히 내리길 바라고 신앙생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이 고통 중에 있는 분들께 위로와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좋은 책을 보내주시고 서평을 쓸 기회를 주 생활성서사에 감사드립니다. 저의 서평을 읽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고 영적으로 더 성장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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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복음밥 3 맛있는 복음밥 3
이용현 지음 / 인디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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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복음밥 1,2를 먼저 구입해서 읽었는데 이해하기 쉽게 쓰셔서 좋았어요.

그래서 이번에 맛있는 복음밥3도 구입했는데 지인들께 선물해도 좋을 것 같아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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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 - 죄가 뭐예요? 뭐예요 시리즈
바르바라 바페티 지음, 알레산드라 만토바니 그림, 김희중 옮김 / 생활성서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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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바라 바페티의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라는 신간도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생활성서사 특별 서평단에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서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이신 바르바라 바페티는 네 자녀를 둔 엄마이고 이탈리아 페루자의 '테네레짜의 집' 이라는 가정 공동체 일원입니다. 교육학을 전공했고, 철학 학위가 있다고 합니다. 삽화를 그린 알레산드라 만토바니는 어린이 책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작가이고 많은 가톨릭 시리즈의 삽화를 그렸습니다.

어린이 신앙 교육에 관심이 많고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교회사 박사 학위를 받았고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광주대교구장을 지내신 김희중 대주교님께서 이 책을 추천하셨다고 해서 내용이 더 궁금했습니다.

"하느님께 반항했던 천사가 있다고요?"

"실수로 한 일도 죄가 되나요?"

"이미 잘못을 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가 죄에 맞설 아이템을 하느님께 받았다고요?"

"자꾸 잘못하면 하느님도 화내시지 않을까요?"

<반항 천사와 충실 천사>에는 죄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의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36쪽으로 구성되어 다른 책들에 비해 분량이 많지 않고 곳곳에 삽화가 있어서 책의 내용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특히 첫영성체를 앞둔 초등부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가 있습니다. 아직 글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조부모나 부모, 또는 교사가 삽화를 보여주면서 책을 읽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기적인 마음은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다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니까요. 그분께서는 우리가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도 모두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나 우리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가 있고 하느님의 자비심과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죄를 지었다면,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는 이들을 위해 오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 모든 사람은 자신 안에 원죄가 있지만 하느님 아버지는 우리를 끝없이 사랑하시기에 악에서 온 인류를 구하기 위해 외아들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원죄의 그림자를 지울 수 있는 세례성사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세례성사 덕분에 우리는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 안에서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213항>


좋은 천사였던 루치펠이 하느님보다 더 높아지고 싶어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천사들에게서 벗어나 그 후로 루치펠은 '악마'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그리스어로 악마는 '가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주실 만큼 자비로우신데 루치펠은 죄를 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교만하고 하느님께 반항하는 반항 천사 루치펠이 있다면 주님께 한결같이 충실한 천사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미카엘 대천사입니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겠는가?' 라는 뜻입니다.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필요합니다. 충실 천사인 미카엘 대천사는 하늘 군대의 최고 사령관이고 우리를 하느님과 갈라놓으려는 악마와 맞서 싸우고 악을 물리치는 모든 천사를 진두지휘하는 전투 천사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자녀들,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일을 지키는 천사들의 군대가 있기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천사들 가운데 하나는 우리 곁에 수호천사로 두셔서, 우리를 돕고 보호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깨달았을 때,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로 도움을 청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저를 지켜 주시는 수호천사님,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르시소서. 아멘.

(수호천사께 드리는 기도)

 

성인들은 우리의 모범이 되고, 우리가 죄를 짓지않고 주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알려 주십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며,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온유하고 깨끗하게, 정의롭고 자비롭게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사랑하는 것을 겁내지 마세요. 그러면 우리는 죄에서 더 멀어지고 하느님의 마음에는 더욱 가까워질 것입니다.

 

이 책에는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죄와 실수의 예시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줄 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행동을 했다면 죄가 됩니다.

죄와 실수의 예시를 통해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실수일지 생각해 볼 수가 있고 우리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아니면 이미 지은 죄를 반성할 때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죄책감과 죄의식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는데 죄책감은 죄를 짓고 나서 마음이 불편한 감정이고 정말 중요한 것은 '죄의식'을 갖는 것입니다. 죄책감과 달리 죄의식은 낙담하지 않고 주님의 자비를 찾아 다시 행복해질 수 있게 도와줍니다.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들인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죄 때문에 생긴 슬픔과 어두움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반대로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했고,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죄책감은 우리를 슬프게 하고, 희망을 잃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더욱 멀어지게 합니다. 반면에 죄의식은 우리에게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죄의식을 느끼면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고, 하느님 안에서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용서는 큰 선물입니다. 그러니 죄를 지어도 슬픔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뉘우치고 주님께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안아 주시고, 마음의 모든 상처도 낫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느님과 마음을 나눌 기회, 행복한 기회, 하느님의 선물을 사용할 기회를 잃게 되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면 죄에서 벗어날 수가 있고 올바른 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80년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전 세계의 신자들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하느님은 자비와 용서를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라는 내용입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불행한 이들과 죄인들에 대한 특별한 힘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자비가 풍부한'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온전하게 드러내 주십니다. (3항 참조)

  

이어서 2000년에는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선포하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한없이 다정하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 자주 말씀하십니다.

용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로 우리가 받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여러분은 우리를 감싸 주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느낄 수가 있나요?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계명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계명은 첫째는 마음과, 목숨, 정신과 힘을 다해서 한 분이신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습니다.

고해성사를 보기 전에 어떻게 양심 성찰을 해야 할까요? 바로 예수님께서 주신 두 가지 계명에 따라서 할 수가 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태 22,37)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를 드리면서 하느님을 기억하고 있나요?

어려운 순간마다 하느님께 도움을 청하나요?

기쁜 일이 생기면 하느님을 기억하고 감사드리나요?

주일 미사에 참례하나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나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과 모든 선물을 존중하고 있나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마태22,39)

 

자신을 소중히 대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좋은 일에 쓰고 있나요?

부모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나요? 부모님 말씀을 잘 듣나요?

친구들을 존중하나요? 친구를 괴롭히거나 따돌린 적은 없나요?

가진 것을 이웃이나 친구와 나누지 않으려 욕심을 부리지는 않나요?

숙제나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나요?

남의 물건을 탐내거나 친구를 질투하진 않았나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사랑과 용서를 주셨듯 우리도 다른 사람을 그렇게 대해야 합니다. 용서는 모든 사람을 향해 점점 더 커져 가는 아름다운 무지개와 같습니다.

자신이 지은 죄의 용서를 청하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하느님께 선물해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잘못을 반복하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용기를 잃지 마세요. 예수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시니까요. 실수를 하거나 죄를 짓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것들이 죄가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있었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조건없이 용서해주시는 것처럼 저 또한 다른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좀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고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지적하기 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대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기도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죄를 짓더라도 바로 뉘우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것이 중요하니 지나치게 자책을 하거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도 이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특별 서평단에 선정해주시고 좋은 책을 보내주신 생활성서사에 감사드립니다.

* 생활성서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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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당신 품 안에서 - 영적 치유와 성장을 바라는 이들에게 드리는 선물
박재찬 지음 / 생활성서사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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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찬 신부님의 영성 에세이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고 싶어서 생활성서사 특별 서평단에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서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써서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당신 품 안에서>라는 제목의 이 책은 저자께서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마산 교구 주보'에 나누었던 글과 2022년 한 해 동안 월간 <생활성서>에 기고한 글들, 그리고 틈틈이 쓴 다른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합니다. 표지 그림과 책에 실린 그림들은 심순화 가타리나 화백께서 그리신 건데 따스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표지 그림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해 주시고 위로해 주신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박재찬 신부님은 현재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본원장과 성 베네딕도 문화 영성 센터 책임자로 일하면서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과 강의를 통해 토마스 머튼 영성을 나누고 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수도 생활 중에 많은 소임을 하시다가 일 중독에 빠지게 되었는데 번아웃이 되서 기도도, 일도, 수도 생활도 모두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에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을 가시게 되었는데 하느님의 섭리로 그곳에서 토마스 머튼 신부님의 영성을 공부하게 되셨고 하느님의 빛을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머튼 신부님 덕분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여정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고 하느님의 부재를 느꼈던 어둠의 시기에도 하느님은 함께하고 계셨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신부님께서 토론토 유학생활 중에 다닌 대학 도서관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자 서류를 제출하고 면접을 봤는데 신청자가 많아서 떨어지셨다고 합니다. 1년 후 다시 응시를 했는데 결과는 또 낙방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이 조금 원망스러웠지만 주님께서는 신부님께서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을 하도록 계획을 세우셨던 것입니다. 사제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도서관에서 책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미사 집전과 고해성사를 주는 것이고,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임을 새롭게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두 번의 낙방 체험은 오히려 신부님의 소명이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 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의 영적 여정에서 실패의 체험, 어둠의 체험, 고통의 체험은 주님의 더 큰 사랑에 도달하기 위한 선물이 되기도 하는데 누구나 하느님을 찾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십자가가 있는 듯하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지난 시절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지냈던 사랑의 순간들이고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앞에 부유한 사람이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비워 내고 가벼워지기 위해 나누고, 내어 주려고 애쓰는 우리의 부족한 사랑을 하느님은 더 큰 사랑으로 채워 주십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리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따뜻이 어루만져 주시며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약함을 통해서도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신부님께서 번아웃이 되서 유학을 가게 되셨고 시작했던 공부가 영성 심리학을 거쳐 토마스 머튼과 그의 종교 간 대화로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로마서 8장 28절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라는 말씀처럼 신부님께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든 사람과 대면하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처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나 사람과 마주할 때, 모든 것을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기다리는 자세를 지녀야 합니다. 우리가 계획한 것보다 더 큰일을 하시는 하느님의 계획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묵묵히 살아간다면, 어느 날 지나온 많은 시련과 고통이 하느님의 더 큰 행복으로 들어가기 위한 도구였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박재찬 신부님께서는 토마스 머튼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독을 만났다고 하시는데 단순한 감정적 외로움을 넘어 그리스도의 고독과 하나 되기 위해 스스로 고독을 향했던 그의 갈망은 신부님의 수도생활 여정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 주었고 그동안 신부님께서 얼마나 '하느님'이 아니라 '나 자신'에 집중하며 살아왔는지 반성하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진정한 고독은 모든 것을 끌어안는데 아무것도,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 사랑의 충만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더 큰 사랑으로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고독의 참된 영적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참된 고독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세상과 사람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한 영적 도구입니다. 이를 위해 텔레비전이나 모니터, 휴대폰 보기를 잠시 멈추고 홀로 고요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시간을 자주 갖으라고 하십니다. 혀의 침묵, 눈의 침묵, 그리고 상상의 침묵 속에서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그분께서 지금도 '우리의 외로움과 함께 하신다.'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닙니다. 고독은 그리스도의 참사랑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박재찬 신부님께서는 이 책이 마음이 아픈 이들,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좋은 영적 선물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하셨고 하느님 품에서 영적 위안을 느끼며 따뜻한 주님의 사랑에 젖어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독서는 저자와의 간접적인 만남이라고 하는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박재찬 신부님께 영적 지도를 받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것처럼 저 또한 다른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는 박재찬 신부님께서 직접 쓰신 기도문이 곳곳에 실려 있어서 책을 읽다가 잠시 멈추고 기도를 할 수가 있어서 좋았고 신부님의 체험이 담긴 진솔한 이야기가 실려 있고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꼬옥 안아 주시며 "많이 힘들었지! 나는 너의 마음을 다 안단다. 괜찮다." 하시며 어깨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심을 느낍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변함없이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힘든 마음, 억울한 마음, 서러운 마음 모두 다 주님께 맡겨 드리고, 더 큰 선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주님의 섭리를 믿으며, 오늘도 묵묵히 말없이 사랑하며 기쁨과 감사로 살아갑시다.

저자 후기 중에서

저자 후기에 실린 박재찬 신부님께서 직접 쓰신 기도문으로 서평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 품 안에서 치유받고

당신 품 안에서 자라나고

당신 품 안에서 더 큰 사랑을 배우게 하소서.

당신과 같은 사랑의 품이 되어

상처받은 너와

갈라진 이웃과

신음하는 피조물을

꼬옥 안아 주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소서.

아멘.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시고 영적 치유와 성장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좋은 책을 집필해주신 박재찬 신부님과 책을 출판해주신 생활성서사에 감사를 드립니다.

*생활성서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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