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명상의 씨 - 개정2판
토마스 머튼 지음, 오지영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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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리더스 6기 5월 도서로 토마스 머튼의 <새 명상의 씨>를 선택했습니다. 도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다른 책은 이미 구입해서 읽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이 그려져 있는 표지가 눈에 띄였습니다. 책을 읽기도 전에 표지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개정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옛 책을 새로 꾸민 것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책입니다. 일부 문장을 약간 수정하고 삭제한 것 외에는 옛 책의 전체 내용을 그대로 살렸고, 많은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초판이 나오고 12년이 흐르고 나서 새롭게 나온 책이라고 합니다. 초판의 그릇된 점 중 하나는 독자들에게 '명상가가 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명상가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토마스 머튼은 미국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영성 작가로 1915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성장했습니다. 1938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39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8년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1940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여 1949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수도회에 들어간 뒤 1968년 감전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사와 기도, 침묵 수련과 노동을 하며 글을 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남긴 책은 70여 편이 있는데, 그중 <칠층산>, <고독 속의 명상>, <명상이란 무엇인가> 등이 유명합니다.

매일 흘러가는 일상에서 공허함을 느끼게 될 때, 우리 몸과 마음은 시들어가고 모든 일이 권태로워지게 됩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명상 체험입니다. 깊이 있는 통찰은 우리가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에 따르면 명상은 지적이며 영적인 삶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명상은 깨어 활동하며 살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생명 자체입니다. 그것은 영적 놀라움입니다. 생명의 신성성, 존재의 신성성에 대해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경외입니다. 명상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없애 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명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명상은 우상의 무서운 파괴요, 불사름이며 지성소의 정화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께서 비워 놓으라고 하신 곳을 어떤 우상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루카복음 8장 11절에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는 이 말을 흔히 주일에 성당에서 읽히는 복음서의 말씀에만 적용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의지의 모든 표현 양식은 어떤 의미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생명의 씨앗입니다. 우리는 항상 변하는 현실에 살면서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진리, 정의, 자비 혹은 사랑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분께 순명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필요로 표현된 그분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며 적어도 다른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도록 요구받는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언제나 '로고스' 또는 해야 할 일, 우리 앞에 주어진 의무의 진리에, 혹은 하느님이 주신 본성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존재 이유와 완성이 숨어 있는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존재, 나의 평화 그리고 나의 행복, 이 모든 것이 달려 있는 문제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즉, 하느님을 찾는 것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찾으면 나는 나를 찾을 것이고, 내가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으면 나는 그분을 찾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 안에 사시게 해야 합니다. 위대하신 분으로서만이 아니라 아주 미소한 분으로서도 우리 안에 사시게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나의 창조주로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 진정한 자아로서 내 안에 사시기 시작하십니다.

진정한 명상은 이기심을 완전히 타파하는 것이고 가장 순수한 청빈과 마음의 결백입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에는 명상에 대한 염원도 부정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할 때에도 나는 그분의 원수인 나의 야망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완전하게 찾기 위해서는 환상과 쾌락에서 물러서고, 현세적 불안과 욕망,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에서 물러서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느님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마치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격리시킨다면, 우리는 절대로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그들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가야 합니다. 대중 속에서 자기를 잃고, 자기가 혼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 처신할 줄 모르는 사람의 은거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일치하여 순수한 대화를 나누며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

명상을 하기 위해 우리는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 외적 침묵 그리고 진정한 반성은 사실상 명상 생활을 하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입니다. 명상 생활은 욕구를 이겨 내는 자기 훈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빠져 있는 습관적 쾌락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극기 없는 기도 생활은 순수한 환상입니다. 영적 은거 생활의 상태, 평화와 평온, 명확함과 부드러움의 경지에 이르게 될 때 사람은 묵상하고 명상의 기도를 바치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하느님께 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바라는 척하는 평화는 전혀 평화가 아닙니다. 당신이 평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랑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평화를 사랑한다면 불의를 미워하고 폭군을 미워하고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 안'에 있는 그것들을 미워해야 합니다.

명상의 시작은 믿음입니다. 만약에 믿음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으면 당신은 절대로 명상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은 무엇보다도 지성적 동의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합니다. 믿음의 행위는 지성이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에 대한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만족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은 내적인 눈, 마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빛이 가득 차도록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는 정상적 방법은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해서 얻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체험하는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해서, 언제나 변함 없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명상에 이른다는 말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이런 마음으로 믿음을 조건 없이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깨끗한 유리창이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칭찬을 받아들입니다. 빛이 순수하고 강할수록 유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겸손은 능력의 가장 확실한 징표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 그들의 약점과 부족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명상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철저한 고독 중에 내적 시련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것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무리한 욕구와 욕망을 공감하면서 겪는 인내와 겸손이 우리 안에 이루어 주는 정화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화와 묵상에 대한 욕망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완벽한 내적 평화와 묵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기쁨에 대해서도 초연하지 않으면 완전한 기도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명상은 모든 만족과 모든 체험을 초월해서 순수하고 꾸밈없는 믿음의 암흑 속에서 쉬는 사랑의 작업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어떠하든 간에 하느님을 뜻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의 기도를 포기할 생각과 싸워 이기고, 또 어려움과 무미건조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매일 정한 시간에 묵상을 계속해야 합니다. 끝에 가서는 우리가 겪는 고통과 하느님의 은총의 은밀한 효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려 줄 것입니다. 묵상할 기회가 주어지면 묵상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흥분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전례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때 무리하게 어떤 좋은 생각이나 어떤 열정을 얻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기도하려는 마음이며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열의입니다. 이러한 원의가 있으면, 이미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분심이 심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느님께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복잡해도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명상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우리 본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고 생생한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명상이 우리가 가진 고유한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명상으로 우리 안에 깊이 자리한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더 성장하고 싶고 내면의 평화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서 시간을 내어 마음을 비우고 조용한 곳에서 내면을 살피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의 내면에 평화와 기쁨, 사랑의 영적인 씨앗이 싹틔울 거라고 확신합니다.



마음에 남는 구절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진 어떤 것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다름 아닌 '그분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가 그것을 거쳐 하느님으로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생생한 관계를 믿음으로 맺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애정과 성품을 가지려면 자기의 상상력에뿐 아니라 믿음에도 의존해야 합니다. 내적 일치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상념을 다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당신의 십자가로써 여러분 안에 당신을 형성하게 하십시오.

성모님께서 숨어 계시는 하느님 안에 우리도 숨어든다면 우리는 성모님을 찾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겸손과 드러나지 않으심, 그리고 청빈과 드러냄 없는 은거를 함께 나누는 것이 성모님을 아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을 안다는 것은 지혜를 찾는 것입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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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 - 심리학자 이나미가 만난 교회의 별들
이나미 지음, 심백섭 감수 / 생활성서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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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성서사 특별 서평단에 지원을 했는데 감사하게도 선정이 되서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게 되었습니다.

 

<행복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 사람들>은 정신 건강 의학과 전문의이자 융 분석 전문가인 이나미 박사가 33명의 가톨릭 성인과 현자들의 이야기를 분석심리학적 관점으로 풀어내어 그들이 삶으로 증명한 메시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는 책입니다. 부제는 <심리학자 이나미가 만난 교회의 별들>입니다.

 

이 책을 쓰신 이나미 박사는 정신 의학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종교 심리학 석사이기도 합니다. 현재 서울대학교 병원 공공 진료 센터와 시스템 의학과에서 진료와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멋진 거짓말>, <그림책의 마음>, <성경으로 배우는 심리학>, <슬픔이 멈추는 시간>, <괜찮아 열일곱 살>, <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 등 이십여 권의 책을 냈습니다. <괜찮아 열일곱 살><당신은 나의 상처이며 자존심>은 중국어, 베트남어, 태국어 등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책의 감수자이신 심백섭 신부님은 종교학 박사이자 예수회 신부입니다. 한양대학교 의과 대학을 중퇴하고, 서울대학교 종교학과를 졸업 후, 예수회에 입회했으며, 미국 웨시턴 예수회 신학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대전 가톨릭대학교 영성 지도 교수 등을 역임 후 , 현재 순천 예수회 영성 센터에서 피정 지도 신부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감수자의 말에 따르면 이 책은 특히 마음의 병이 있거나 모듬살이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회 역사 속 중요한 인물들을 균형 있게 선정하고 명철하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책을 읽는 분들은 부지물식간에 체내 면역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하십니다. 삶에 지치고 힘드신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자인 이나미 박사는 정신 의학과 함께 융의 분석 심리학을 공부하여 심신이 지치고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 일하는 저자는 융의 분석 심리학적 관점에서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빛낸 동서고금 33명의 성현들 이야기를 재해석하는 특별한 시도를 보여 줍니다.

 

감수자의 말에 따르면 저자는 '지금 여기'라는 삶의 자리에서 출발하여 성현들의 이야기를 소개한 다음, 그 안에서 우리 삶의 현실에 대해 심리학적 관점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이슈가 무엇인지를 탁월한 안목으로 발견해 냅니다. 그리고 다양한 성찰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심리학적 재해석을 시도합니다. 성현이 '지금 여기'의 우리를 보고서 무슨 말씀을 하실까, 또는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실까 등의 질문을 던진 다음, 더 나은 삶을 위해 성현께 전구를 청하거나 스스로 반성하고 다짐하는 일로 마무리됩니다. 따라서 이 책의 한 장 한 장을 읽는 것은 성현 한 분 한분에 대해 렉시오 디비나나 영신 수련 묵상을 예습하는 셈도 된다고 하십니다. 또한 성현들의 삶에서 새로운 보석을 알아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좋은 묵상거리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하십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교회사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생과 그 사상을 좀 더 겸손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보아 종교적 심성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완성하는지, 또 그런 체험이 공동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교회사 속 인물들이 삶의 질문을 어떻게 풀어 나갔는지 배우고 생각하며 쓰다 보면, 본인의 무지와 답답한 아집의 감옥으로부터 빠져나와 새로운 마음의 지평으로 향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고 하십니다. 실제로 교회사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에 대한 자료와 정보는 부자이거나 큰 권력을 잡았던 세속적 의미의 중요한 사람들을 직간접으로 만나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내면의 성장으로 저자를 이끌어 주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각자 자신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마음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높은 차원의 세계를 보여 주었던 교회사 속 인물들의 삶을 배우고 묵상하는 것이 그나마 영적인 능력이 부족하고 마음이 병든 우리에게는 최선의 치유책이자 길잡이가 아닐까 싶다고 하십니다.

 

이 책은 제 1부 사랑과 헌신의 삶과 제 2부 지성과 영성의 삶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1부에는 근현대 시대와 고대와 중세 시대에 살았던 성현들의 이야기가 제시되어 있고 제 2부에는 근현대 시대와 중세 후기와 근세 시대, 그리고 중세 중기 이전 시대에 살았던 성현들이 이야기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 나오는 성현들의 삶을 보면서 저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특히 고통이 심할수록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던 소화 데레사의 이야기를 보면서 반성하게 되었고 영성의 힘으로 고통을 의미 있는 행복으로 바꾼 소화 데레사 성녀를 본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상의 소소한 갈등과 좌절을 겪을 때에도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닮을 수 있는 모범을 보여준 소화 데레사의 삶을 보면서 감탄했고 저 또한 그럴 수 있길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고통 속에서 역설적으로 살아갈 의미를 찾는 것이 진정한 자기실현, 즉 개성화 과정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고통 속에서도 인류를 사랑했던 예수님을 사랑하는 축복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행복했기 때문에 소화 데레사 성녀는 개성화 과정을 망설임 없이 실천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고통과 질병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면 사랑의 신이라면서 왜 이런 고난을 주시냐고 원망의 마음이 드는 것도 그 고통을 당하지 않은 사람의 입장으로서 비난할 일이 아니다. 욥의 친구들이 했던 조언이나 설명들이 얼마나 차갑고 쓸데없었던가. 그러나 하느님과 거래하며 내가 이만큼 당신을 섬겼으니 내가 이만큼 행복과 재산을 누리고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는 기복 신앙과 다름없다. 그렇게 평생을 살았다면 고통받는 순간에는 하느님께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몰로카이의 다미안 성인과 마리안느 성인>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잘못된 삶의 태도에 내리는 죽비 같은 존재가 다미안 성인과 마리안느 성인입니다. 이분들은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는 곳은 호화롭고 편안한 저택이 아니라, 고통과 좌절, 외로움과 억울함으로 세상이 모두 캄캄해 보이는 곳이라는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제대로 된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인종과 민족을 떠나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생각으로 예수님처럼 차별 없는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자 이나미 박사의 주보성인이신 리드비나 성인의 삶 또한 인상적이였는데 리드비나 성인은 골절 후유증으로 전신의 염증 상태로 자리보전하게 된 이후, 수십 년을 마비 상태에서 지내신 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고 하느님께 온전히 삶을 맡긴 채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과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합니다. 1890년에 시성되어, 고통받는 이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만약에 제가 그러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면 아픔과 고독으로 힘들어했을 것 같고 하느님을 원망했을 것 같은데 리드비나 성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삶을 좀 더 충실히 살고 하느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죽기 바로 직전까지 마음속에서 놓지 않고 묵상해야 하는 인물이 아닐까 싶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 아프고 무서운 자신을 좀 도와 달라고 전구를 청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 또한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고 생을 마감할 수 있길 희망합니다.

 

고통과 극기를 통해 신앙의 힘, 내적인 체험과 그 가치를 아는 이들에게 성인의 순수하고 고결한 삶은 더욱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더럽고 좁은 공간에서 삶과 죽음 사이를 헤매면서도 '영혼의 정화'를 향한 기도를 멈추기 않았고,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합일이라는 황홀한 신비를 경험했으니 감각적인 쾌락, 본능적인 만족감과는 완전히 반대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대의 물질주의로부터 해방되는 비결을 성인의 어둔 밤에서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십자가의 요한 성인>

 

십가가의 요한 성인의 삶은 고통과 불행으로 가득했으나, 그의 시들은 역설적으로 고통을 넘어서 하느님과 충만하게 합일하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을 노래했습니다. 그의 시는 단순히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상투적인 헌사가 아니라 자신의 모든 감각을 버리고, 죄를 씻고 불완전한 자아를 인식한 수, 자아라는 감옥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하느님과 합일하여 완전해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물질만능주의로 물든 오늘날 우리의 삶에 십자가의 요한 성인의 삶의 태도는 경종을 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 제시된 33명의 성현들의 삶은 각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고자 했던 성현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 또한 주님께서 이끄시는 삶을 충실히 살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각자의 부르심에 따라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고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생활성서사에 감사드립니다.


 

* 생활성서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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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체험
안토니 블룸 지음, 김승혜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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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기도는 마음의 약동이며, 하늘을 바라보는 단순한 눈길이고, 기쁠 때와 마찬가지로 시련을 겪을 때에도 부르짖는 감사와 사랑의 외침입니다.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

 

캐스리더스 64월 도서 중 하나인 안토니 블룸 대주교님이 쓰신 <기도의 체험>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안토니 블룸 대주교님은 1914619일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전공하고 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무신론자였던 그는 하느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후 1948년 사제품을 받고 영국으로 건너가 1950년에 런던의 러시아 정교회 감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1958년에 주교로, 1962년에 대주교로 서품되어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교회를 맡게 되었으며 1966년 총대주교로 서임되었습니다. 그리스도 교파 간의 에큐메니컬 운동에도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며 1961년 뉴델리와 1966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 교회 협의회WCC에 러시아 정교회 대표로 참석하였습니다. 2003년에 사임하였으며 그해 84일에 영국에서 선종하였습니다.

생전에 기도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출간하였으며 그중 국내에 소개된 책으로는 <살아있는 기도>, <기도의 체험> 등이 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는 이 책이 단지 기도의 방법론을 제시할 뿐 아니라, 깊고 생활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내적으로 만나는 길을 안토니 블룸 자신의 기도의 체험으로 밝혀주고 있다고 하십니다. 또한 이 책을 많은 이들이 읽어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이 참으로 기도의 필요성과 그 가치를 인식하고 기도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어 교회가 하느님의 생명이 충만해지기를 기원하셨습니다. (19745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김수환 추기경의 추천사 다음으로는 안토니 블룸 대주교와 한 인터뷰가 실려있는데 본문을 보기 전에 꼭 읽으셨으면 합니다. 역자의 말에 따르면 이 인터뷰에서 안토니 블룸 대주교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자께서는 기도를 시작해 보려는 분들과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가기를 원하는 분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기도를 이론적으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을 피하고 자신의 경험과 체험에서 우러나온 것을 기도하기를 원하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듯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에게, 그리고 기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역자께서는 이 책은 초보자를 위해 쓴 것이지만, 깊이가 있어 상당히 오랫동안 기도를 해 온 사람에게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은 기도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 아니라, 기도하고 싶은 사람이 무엇을 깨달아야 하고 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경험을 통해 전달할 뿐입니다. 신비적 기도나 높은 단계의 완덕에 이르는 기도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런 기도는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장 하느님의 부재

 

이 책의 제1장에서는 하느님의 부재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우리는 기도하고 싶은데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 듯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재란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안 계시는 듯 느낄 때 그 부재의 느낌을 말합니다. 기도란 만남이며 관계라는 것, 즉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우리에게나 하느님에게나 강요할 수 없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의 부재를 불평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안 계실 때보다도 우리가 외면할 때가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 때가 있는데 저 또한 그렇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겨우 일부를 하느님을 위해 쓰면서, 그 시간에 그뿐께서 현존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느님을 만나려면 그분과 무언가 같은 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분을 볼 수 있는 눈과 그분을 알아챌 수 있는 예민함이 필요합니다.

 

2장 문을 두드림

 

우리가 먼저 손과 마음을 온전히 열 수 있도록 모든 소유욕에서 자유롭게 되지 않는다면 하느님께로 갈 수 없고,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절제해야 하고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사물에 눈을 돌려서도 안 됩니다. 상상의 신에게로 눈을 돌리는 순간 자신과 하느님 사이에 우상을 만들어 놓을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서 아는 모든 지식을 다 종합해서 그분의 현존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하느님을 느낄 수 없다면, 비록 그분을 만난다 해도 알아보지 못할 것입니다.

기도할 때 기도문 선택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과 만나서 친분을 나눌 때 적절한 말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듯이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것을 택하든지 그 기도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이어야 하고 불안하게 하지 않는 것이어야 합니다. 기도문은 정말 마음을 다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하는데 먼저 자신에게 맞고 하느님께도 맞는 기도문을 찾아야 합니다. 기도를 드릴 때는 마음을 전부 쏟아야 하며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우리를 있는 그대로 보이며 사랑을 표현해야 합니다.

 


3장 내면으로 들어가기

 

기도를 어디로 향하게 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자면 바로 자신 안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마음과 정신과 뜻을 다해 드릴 기도를 한 가지 선택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는 전례적으로 아름다워야 할 필요가 없고, 자신과 잘 맞고,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면 됩니다. 그리고 이 기도가 지니는 모든 의미와 풍요로움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으면 됩니다. 자연적으로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닌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기도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생활에 적용해야만 의미를 갖습니다. 기도와 생활이 서로 엮이지 않으면 기도는 마치 우리가 필요할 때만 하느님께 바치는 일종의 서정시와 같아집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어느 정도가 충분한지 알아야 합니다.


 

4장 시간 활용하기

 

바쁜 세상에서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긴장하면서 분주하게 보내는 하루하루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기도하는 데 보내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우리가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멈추어 하느님께로 향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현재에 자신을 놓는 것입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으며, 미래는 아직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뛸 시간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모든 힘을 다해서 '지금'이라는 현재에 우리의 온 존재를 집약시켜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지금'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침묵을 해야 하는 순간들이 있는데 우선 입을 침묵시키는 데서 시작해서 감정의 침묵, 마음의 침묵, 몸의 침묵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침묵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내적으로 조용해졌을 때 요한 묵시록의 말씀이 실현되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묵시 3,20)


 

5장 하느님께 말씀드리기

 

5장에서는 기도가 우리에게 자연스러워져 쉽게 기도하게 되고 기도 안에서 생활하게 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그분'이라든가 '전능하신 분' 등 나와 거리가 먼 3인칭으로 생각하지 않고 당신이라고 가깝게 생각할 때에 비로소 시작된다고 합니다. "내 기쁨이여!"와 같은 말로 그분을 칭할 때 그분과 우리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 됩니다. 하느님을 부를 나만의 호칭을 만들어 그 이름을 자신의 온 마음과 사랑을 담아 부를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가 하느님과 멀리 있음을 깨닫고, 그분께로 향하는 문을 두드리려고 자신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서 진정으로 의미 있는 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문 앞까지 온 것입니다. 곧 그 문이 열릴텐데 그때는 하느님을 부를 이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지 않으니까 하느님의 응답이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6장 두 가지 묵상

 

6장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어느 신부의 기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성모님은 하느님의 어머니입니다. 하느님을 이 지상에 불러오신 분이지요. 이런 뜻에서 우리는 성모님을 '하느님의 어머니' 라고 부릅니다. 그분을 통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인간이 되어 하느님이 태어나신 것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께 온전히 순종하셨고,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여 그분의 뜻이 무엇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겸손했기에 하느님이 그분에게서 태어나신 것입니다.

1983년 아토스산에서 실로우안이라는 신부가 죽었습니다. 그는 20대에 아토스산으로 들어가 50년 동안 살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토스산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집을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제 편이 되어 주신다면 가야겠습니다. 그분이 책임지고 저를 구원해 주실 테니까요." 그는 일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루를 보냈고 함께 기도했고 수도원에 돌아와서 공동 기도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관상 기도와 탄원 기도가 서로 어떻게 얽히는지를 볼 수 있는데 "그를 기억해 주십시오." 라고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몇 시간 동안 계속하는 기도 속에서 남을 위한 연민으로 하는 탄원 기도와 사랑 가득한 관상 기도가 서로 합해지면서 계속되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이 책은 오늘의 교회는 과연 기도하는 교회인지, 우리는 기도하는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이 책을 추천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기도하지 않는 교회,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내적 생명력을 잃은 거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그 필요성마저도 느끼지 못하는 교회는 하느님을 전할 수 없고 형식적 종교 단체에 불과합니다. 우리 모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릇된 방법으로 기도하고 있다면 올바른 방법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면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고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예비신자, 영세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심자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신앙생활을 한지 오래되신 분들이나 냉담 중이신 분들도 읽으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가톨릭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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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계시
노리치의 율리아나 지음, 강대인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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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리더스 6기 3월 도서로 선정된 <사랑의 계시>는 중세의 위대한 신비가 노리치의 율리아나가 전하는 하느님의 계시에 담긴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입니다이 책은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그분의 섭리로 보호를 받는다는 확신을 토대로 한 낙관주의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쓰신 노리치의 율리아나는 중세 잉글랜드의 뛰어난 신비가이자 은수자로서 1342년 즈음에 태어났습니다율리아나는 당시 잉글랜드에서 런던 다음가는 상업 중심지인 노리치에 있는 성 율리아노 성당 오른쪽에 있는 작은 은수처에서 살았습니다그녀가 노리치 성당의 은수자였다는 사실 말고는 그의 생애에 대해 정확하게 알려진 것은 거의 없습니다.

 

1373율리아나는 심한 고통 중에 하느님께 16차례나 되는 환시를 경험하였는데 이때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삼위일체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그 후 20년 넘게 자신이 체험한 신비를 묵상하였습니다중병에서 회복된 뒤 자신이 체험한 계시에 관하여 기록한 두 가지 본문을 남겼는데 이 본문이 바로 <사랑의 계시>입니다두 본문 중 하나는 환시를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쓴 짧은 본문이고다른 하나는 20년 정도 지난 뒤 그 계시에 대한 묵상을 거듭하며 쓴 본문입니다이 책은 잉글랜드에서 여성이 영어로 남긴 최초의 작품으로서영문학에서도 매우 중요시하는 귀중한 저서입니다율리아나는 잉글랜드의 중요한 신비가 중 한 명으로 명성을 떨쳤고, 1416년 즈음에 선종하였습니다.

 

율리아나는 육신의 질병을 앓게 되자 주님와 함께 고통을 받고자 하였습니다하느님에 대한 열망과 연민으로그분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그러나 결코 하느님의 계시나 육체적인 환시를 보고자 한 것이 아니였습니다그저 한 다정한 영혼이우리를 사랑하시어 죽을 인간이 되신 우리 주 예수님과 함께하려는 연민에서 나온 열망이었습니다그러기에 그는 그분과 함께 고통받기를 갈망한 것입니다.

 

이 책에서 하느님의 선하심이 가장 드높은 기도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의 본성적인 의지는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며하느님의 선한 의지 또한 우리를 차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그리고 우리는 충만한 기쁨 속에서 그분을 모실 때까지 결코 그러한 원의와 열망을 그칠 수 없습니다우리에게 그보다 더한 열망은 없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계시를 통하여 보는 것은 더도 덜도 아니고 바로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또한 계시는 그 계시가 끝날 때까지 주님의 가르침 안에서 드러날 것입니다율리아나는 계시로 말미암아 하느님을 더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주님을 바라보기 위하여 '우리가 주님을 찾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삶도천사도권세도,

현재의 것도미래의 것도권능도,

저 높은 곳도저 깊은 곳도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

(로마 8,38~39)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주제는 율리아나의 환시에서 자주 되풀이 됩니다율리아나는 확신에 찬 대담함으로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하느님의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에 비겨 이야기합니다이것이 그의 신비 신학이 지닌 특징적인 메시지 중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한하신 절대 진리이고지혜이며사랑이십니다진리와 지혜가 있는 곳에 참으로 사랑이 있고 그 둘에게서그리고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모든 것에서 사랑이 나옵니다곧 하느님께서는 무한하신 절대 진리이며지혜이고사랑이며창조되지 않으신 분입니다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똑같은 본성을 지니신 하느님 안에서 '창조된피조물입니다그 영혼은 언제나 자신이 창조된 목적을 수행합니다하느님을 바라보며 사랑합니다이에 하느님께서는 그 피조물 안에서 기뻐하시며그 피조물은 하느님 안에서 끝없이 놀랍니다.

 

율리아나가 살던 시대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다."라고 하며 하느님의 영원하고 자비하신 사랑 안에서 희망을 갖도록 이끌어 주는 율리아나의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메아리칠 것입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테살 5,16~18)

 

 

사순 제5주일인 오늘이제 사순 시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주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며 은총의 사순 시기를 보내는 우리에게 이 책은 희망을 줍니다.

 

저는 이 책을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고 싶은 분들특히 쉬고 있는 교우들(냉담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그분들께서 이 책을 읽고 다시 하느님께 돌아올 수 있길 바랍니다우리는 그분의 선하심과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통하여 신앙 안에서 우리를 지켜야 합니다무한하신 사랑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영원히 지켜 주실 것입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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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손희송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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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011년도에 나온 책의 개정판입니다. 이 책으로 손희송 주교님의 사제 수품 25주년을 기념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이 책은 교회 내의 월간지와 신문에 게재했던 글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놓았던 글을 모아서 엮은 것입니다. 손희송 주교님께서 생각이 여물 때마다 가끔씩 올리셨던 글에 대해 공감과 격려로 응답해주신 분들을 통해서 또 하나의 '따뜻한 동행'을 체험하셨다고 합니다. 손희송 주교님께서는 독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는 확신을 굳건히 하는 데에 작게나마 보탬이 되는 책이 좋겠다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의 인생길, 하느님 나라를 향한 순례의 여정에서 동행해 주신다는 믿음은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어 주는 등불이 되고, 힘들 때 우리를 지탱해 주는 지팡이가 될 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때론 혼자라는 생각에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성경은 '하느님은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따뜻한 분'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우리와 좀 더 가까이 계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은 인간들과 함께 사시면서 그들이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동행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예수님은 지상에서 당신 사명을 마치고 성부께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동행을 약속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을 보호해 줄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저는 이 책의 1부에서 '나의 천사들'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특히 눈에 띄였습니다. 20047월 생활성서에 실린 글이라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필요할 때마다 천사를 보내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천사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요? 가톨릭 교회는 천사들을 전례력 안에서 기억합니다. 성경에 그 이름이 명시된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929)과 수호천사 기념일(102)에 천사들을 공경합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인간을 구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실현에 봉사하기 위한 존재인 천사들은 결국 인간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돕고 인도하는 존재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따르면, 사람은 일생 동안,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의 보호와 전구로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336)

천사가 보통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누군가가 내 곁에 머물면서 필요한 보호와 도움을 준다면 그가 바로 라파엘 대천사이며 수호천사인 것입니다. 필자의 경우에는 어머니가 수호천사의 역할을 하셨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에는 작은 사연이 있습니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신부 된 지 6년 만에 처음으로 서울 어느 본당에 주임 신부로 발령을 받았는데 본당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주임이 되니 배우고 익혀야 할 것이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가 사제관에 계시면서 살림을 도와주셨다고 합니다.

어느 날 주일 오전에 본당 수녀님께서 우연히 사제관을 지나가다가 사제관 집무실의 창문이 열려 있어서 자연히 방 안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는데 주교님(당시에는 신부님) 의자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시간이 교중 미사 시간이어서 주임 신부는 미사 집전 중인데, 왠 낯선 사람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바로 필자의 어머니셨다고 합니다. 나중에 왜 그 시간에 아들 집무실에 들어가 계셨느냐고 물었더니, 아들 신부가 주일이라 바빠서 묵주 기도를 못 할 것 같아 아들 의자에 앉아서 대신 묵주 기도를 하신 거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들은 필자는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면서 어머니께서 수호천사시라는 생각이 들었고 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사제가 되었고 지금까지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어머니를 수호천사처럼 느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시는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수호천사라고 생각합니다. 제게 있어 저의 어머니도 그런 분이시구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천사를 통해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도움을 베풀어 주시는데, 때로는 부모나 가족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주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는 누구라도 다른 이에게 천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하느님의 천사가 될 수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힘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바로 천사인 것입니다.

우리가 보려는 눈만 있다면 작은 천사들이 우리 주위에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라고 하십니다. 또한 우리가 들을 귀가 있다면, 우리 각자가 지금, 여기에서 옆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천사가 되라는 하느님의 나지막한 부르심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며 글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반대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도우면서 서로에게 천사가 되어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2부에서 '성가정을 이루는 법'이라는 소제목의 글이 눈에 띄였습니다. 가정은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힘을 얻는 보금자리요, 사람을 키워 내는 못자리며 건전한 사회의 초석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전통적으로 가정에 많은 관심을 갖고 그 중요성에 대해서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전례적으로는 성가정 축일을 정해서 가정의 성화를 추구합니다. 성가정이란 예수, 마리아, 요셉이 이룬 가정을 말하는 것이고, 우리도 그 가정을 본받아서 성가정을 이루고자 다짐하는 데에 이 축일의 의미가 있습니다. 마리아, 요셉의 가정이 성가정인 이유는 그들이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신앙인이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든 우선적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귀를 기울였고 그 뜻을 기꺼이 따랐습니다. 성모님은 인내와 겸손의 태도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시고, 그런 태도로 아들을 기르신 분이고 요셉 역시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요셉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여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고, 가족의 안전을 위해 온갖 어려움도 기꺼이 감수했습니다. 요셉 성인은 자비와 헌신의 태도로 가족을 돌보면서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실천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 역시 하느님의 뜻에 충실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충실, 부모에 대한 효도로써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예수, 마리아와 요셉, 그분들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어려움과 고민이 있었고 속이 상하는 일도 있었고, 또한 상대방의 말과 행동을 미처 다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이분들이 성가정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을 우선으로 하고, 그 뜻을 인내와 겸손, 자비와 헌신, 충실의 태도로 실천하면서 서로를 감싸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성가정을 이루려면 예수, 마리아, 요셉의 모범을 따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의 뜻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가족끼리 인내로 참아 주고 관대하게 대한다면, 또한 자신을 쪼개 주고 가족 간의 도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면, 우리 가정도 서서히 거룩한 가정이 될 거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가족이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게 되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먼저 살펴보게 됩니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내가 해야 할 본분을 다했는지, 나를 앞세우기 전에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는지를 하느님 앞에서 솔직하게 반성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을 반성하는 기도 시간을 갖는다면 그 가정은 서서히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바쁘다고 핑계 대지 말고 어려워도 함께 모여 자주 기도를 바치면서 거룩하게 변화되는 가정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하시며 글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이 밖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는데 저는 두 가지만 언급을 했습니다.

맺음말에서 어떤 사제로 살아가고 싶은지 언급을 하셨는데 사제는 한결같이 단순한 마음으로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단순하고 충실하게 주님을 섬기면서 묵묵히 살아가는 사제들, 혼란과 변덕스러움이 넘쳐 나는 세상에서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확신 있고 꿋꿋하게 가는 사제들이 좀 더 많아지기를 기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주교님께서도 그런 사제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신다고 하시며 마무리 하십니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버린다고 해도 하느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 분입니다. 손희송 주교님께서는 이 책을 통해 신앙인들이 주님의 '따뜻한 동행'을 체험하고, 늘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아울러 우리도 우리와 동행해 주시는 주님 곁에 머물면서 그분께 힘을 얻어 다른 이들과 동행해 주는 따뜻한 사람으로 거듭나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함께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혼자라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위해 손 잡아 주고 기도해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제게 바라시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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