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명상의 씨 - 개정2판
토마스 머튼 지음, 오지영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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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리더스 6기 5월 도서로 토마스 머튼의 <새 명상의 씨>를 선택했습니다. 도서 선택권을 주셨는데 다른 책은 이미 구입해서 읽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없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가득한 숲이 그려져 있는 표지가 눈에 띄였습니다. 책을 읽기도 전에 표지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개정판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옛 책을 새로 꾸민 것이 아니라, 여러 면에서 완전히 새로운 책입니다. 일부 문장을 약간 수정하고 삭제한 것 외에는 옛 책의 전체 내용을 그대로 살렸고, 많은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초판이 나오고 12년이 흐르고 나서 새롭게 나온 책이라고 합니다. 초판의 그릇된 점 중 하나는 독자들에게 '명상가가 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작가가 의도한 바가 아니였다고 합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명상가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토마스 머튼은 미국 가톨릭 교회를 대표하는 영성 작가로 1915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영국과 미국에서 성장했습니다. 1938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939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38년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1940년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입회하여 1949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수도회에 들어간 뒤 1968년 감전 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미사와 기도, 침묵 수련과 노동을 하며 글을 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남긴 책은 70여 편이 있는데, 그중 <칠층산>, <고독 속의 명상>, <명상이란 무엇인가> 등이 유명합니다.

매일 흘러가는 일상에서 공허함을 느끼게 될 때, 우리 몸과 마음은 시들어가고 모든 일이 권태로워지게 됩니다. 시끄럽고 복잡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바로 명상 체험입니다. 깊이 있는 통찰은 우리가 잠시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이 책에 따르면 명상은 지적이며 영적인 삶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명상은 깨어 활동하며 살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는 생명 자체입니다. 그것은 영적 놀라움입니다. 생명의 신성성, 존재의 신성성에 대해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경외입니다. 명상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없애 버리는 유일한 방법은 명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명상은 우상의 무서운 파괴요, 불사름이며 지성소의 정화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느님께서 비워 놓으라고 하신 곳을 어떤 우상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루카복음 8장 11절에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우리는 이 말을 흔히 주일에 성당에서 읽히는 복음서의 말씀에만 적용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의지의 모든 표현 양식은 어떤 의미로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생명의 씨앗입니다. 우리는 항상 변하는 현실에 살면서 하느님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진리, 정의, 자비 혹은 사랑이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분께 순명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필요로 표현된 그분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며 적어도 다른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일을 하도록 요구받는 것은 하느님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나를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우리는 언제나 '로고스' 또는 해야 할 일, 우리 앞에 주어진 의무의 진리에, 혹은 하느님이 주신 본성에 충실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나의 존재 이유와 완성이 숨어 있는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존재, 나의 평화 그리고 나의 행복, 이 모든 것이 달려 있는 문제는 오직 하나뿐입니다. 즉, 하느님을 찾는 것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찾으면 나는 나를 찾을 것이고, 내가 나의 진정한 자아를 찾으면 나는 그분을 찾을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새로운 방법으로 우리 안에 사시게 해야 합니다. 위대하신 분으로서만이 아니라 아주 미소한 분으로서도 우리 안에 사시게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시는 하느님께서는 나의 창조주로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 진정한 자아로서 내 안에 사시기 시작하십니다.

진정한 명상은 이기심을 완전히 타파하는 것이고 가장 순수한 청빈과 마음의 결백입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릴 때에는 명상에 대한 염원도 부정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할 때에도 나는 그분의 원수인 나의 야망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을 완전하게 찾기 위해서는 환상과 쾌락에서 물러서고, 현세적 불안과 욕망, 하느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에서 물러서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느님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마치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격리시킨다면, 우리는 절대로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그들을 찾기 위해 사막으로 가야 합니다. 대중 속에서 자기를 잃고, 자기가 혼자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 자기가 속한 사회의 일원으로 처신할 줄 모르는 사람의 은거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 일치하여 순수한 대화를 나누며 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6)

명상을 하기 위해 우리는 혼자 있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 외적 침묵 그리고 진정한 반성은 사실상 명상 생활을 하려는 사람 누구에게나 다 필요한 것입니다. 명상 생활은 욕구를 이겨 내는 자기 훈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빠져 있는 습관적 쾌락 없이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극기 없는 기도 생활은 순수한 환상입니다. 영적 은거 생활의 상태, 평화와 평온, 명확함과 부드러움의 경지에 이르게 될 때 사람은 묵상하고 명상의 기도를 바치고 싶어집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다면 마음으로부터 평화를 하느님께 청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바라는 척하는 평화는 전혀 평화가 아닙니다. 당신이 평화라고 생각하는 것을 사랑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평화를 사랑한다면 불의를 미워하고 폭군을 미워하고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아닌 '당신 안'에 있는 그것들을 미워해야 합니다.

명상의 시작은 믿음입니다. 만약에 믿음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된 개념을 갖고 있으면 당신은 절대로 명상가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믿음은 무엇보다도 지성적 동의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스스로 계시는 분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합니다. 믿음의 행위는 지성이 하느님을 '사랑함'으로써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하느님에 대한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만족하게 하는 행위입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은 내적인 눈, 마음의 눈을 뜨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빛이 가득 차도록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명상을 하는 정상적 방법은 그리스도의 삶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해서 얻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서 체험하는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해서, 언제나 변함 없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 같은 그리스도를 통해서 명상에 이른다는 말은 아닙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가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이런 마음으로 믿음을 조건 없이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깨끗한 유리창이 햇빛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칭찬을 받아들입니다. 빛이 순수하고 강할수록 유리는 보이지 않습니다. 겸손은 능력의 가장 확실한 징표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 그들의 약점과 부족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진정한 명상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철저한 고독 중에 내적 시련을 용감하게 받아들이는 모든 것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무리한 욕구와 욕망을 공감하면서 겪는 인내와 겸손이 우리 안에 이루어 주는 정화에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평화와 묵상에 대한 욕망까지도 버리지 않으면 절대로 완벽한 내적 평화와 묵상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기쁨에 대해서도 초연하지 않으면 완전한 기도는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진정한 명상은 모든 만족과 모든 체험을 초월해서 순수하고 꾸밈없는 믿음의 암흑 속에서 쉬는 사랑의 작업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어떠하든 간에 하느님을 뜻을 온전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마음의 기도를 포기할 생각과 싸워 이기고, 또 어려움과 무미건조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매일 정한 시간에 묵상을 계속해야 합니다. 끝에 가서는 우리가 겪는 고통과 하느님의 은총의 은밀한 효과는 우리에게 무엇을 해야 할 지를 알려 줄 것입니다. 묵상할 기회가 주어지면 묵상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흥분하지 말고 그 생각을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고 전례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때 무리하게 어떤 좋은 생각이나 어떤 열정을 얻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도의 핵심은 기도하려는 마음이며 중요한 것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열의입니다. 이러한 원의가 있으면, 이미 우리는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기도할 때 분심이 심하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편안하게 하느님께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복잡해도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현존은 우리가 하느님을 생각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명상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이유입니다. 명상을 통해서 우리는 '스스로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우리 본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깊고 생생한 체험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명상이 우리가 가진 고유한 요소라고 가르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다른 것이 아닌 바로 명상으로 우리 안에 깊이 자리한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더 성장하고 싶고 내면의 평화를 찾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쁜 일상 중에서 시간을 내어 마음을 비우고 조용한 곳에서 내면을 살피는 시간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의 내면에 평화와 기쁨, 사랑의 영적인 씨앗이 싹틔울 거라고 확신합니다.



마음에 남는 구절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진 어떤 것을 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다름 아닌 '그분이시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를 읽는 것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개념만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우리에게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가 그것을 거쳐 하느님으로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시는 그리스도와 생생한 관계를 믿음으로 맺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애정과 성품을 가지려면 자기의 상상력에뿐 아니라 믿음에도 의존해야 합니다. 내적 일치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 모든 상념을 다 떨쳐 버리고 그리스도로 하여금 당신의 십자가로써 여러분 안에 당신을 형성하게 하십시오.

성모님께서 숨어 계시는 하느님 안에 우리도 숨어든다면 우리는 성모님을 찾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겸손과 드러나지 않으심, 그리고 청빈과 드러냄 없는 은거를 함께 나누는 것이 성모님을 아는 가장 좋은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모님을 안다는 것은 지혜를 찾는 것입니다.

* 가톨릭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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