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 지음 / 생활성서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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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자 허찬욱 신부님이 쓰신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라는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은 생활성서사 특별 서평단으로 선정이 되서 읽게 되었습니다. 22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는데 글의 반 정도는 월간 <생활성서>에 실린 글이고, 나머지 반은 월간 <>에 실린 글이라고 합니다. 생활성서사의 제안으로 허찬욱 신부님께서 그동안 쓰신 글을 엮어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허찬욱 신부님은 가톨릭 사제이십니다. 독일에서 종교 철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대구 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독문 저서로는 <Stufenweg zum Heil>, 번역서로는 <낮은 곳에 계신 주님>, <바로 오늘>이 있습니다.

 

슬픔만큼 보편적인 감정도 없지만, 슬픔만큼 다양한 층위를 가진 감정도 달리 없지요. 사람마다 슬퍼하는 방식이 다르니, 슬픔의 전형, 말하자면 '원래 그런 슬픔'은 없는 것입니다.

슬퍼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니,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은 타인을 마주할 때마다 매번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일입니다. 타인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것, 힘든 것을 넘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 타인을 이해하는 일의 시작점이라 믿습니다.

 

책머리에중에서...

 

 

이 책에 실린 22편의 글 중에서 일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타인도 나처럼 아프겠지만, 나와 같은 방식으로 아프지는 않을 것입니다. 타인도 나름의 방식으로 아픔을 이겨 내겠지만, 그의 방식이 나의 방식과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너의 슬픔을 이해한다.' 는 말이 상대방에게는 정작 공감의 말로 들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려면, 타인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조심스레 물어야 합니다. 타인이 슬픔을 대하는 방식은 어떤 것인지 섬세하게 봐야 합니다. 이해되지 않는 슬픔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 '원래 그런 슬픔' 은 없는 거니까요.

 

=> 슬픔은 사람마다 고유한 것이여서 '원래 그런거'라는 말로 일반화할 수 없다고 롤랑 바르트는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아는 고유한 슬픔이 있는데 타인이 함부로 안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위로하고 공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타인의 슬픔이 어떤 것인지 조심스레 물어야 합니다. 각자 슬픔을 대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고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원래 그런 슬픔'은 없습니다.

 

 

<애도의 순간>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은 말도 잃습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사람들은 위로의 말이라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지요. 정작 그런 말들이 위로가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아픈 사람을 더 아프게 합니다. 슬픔을 설명할 '적합한 말'을 잃은 사람에게 쏟아 놓는 사람들의 손쉬운 위로는 슬픔에 젖은 사람을 더 슬프게 만듭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만 더 선명해집니다.

 

=> 남이 해 주는 위로의 말이 힘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에게 다른 사람들이 그 아이의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거부감을 줄 수가 있습니다. 죽은 아이가 천국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을 거라는 말도 위안이 될 수가 없고 오히려 힘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타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이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어서 빨리 애도를 표시해 내 마음 편하고자 하는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손쉬운 위로는 슬픔에 젖은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더 슬프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보다 아무 말 없이 안아주고 옆에 있어주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모른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손을 잡아 주거나, 기대어 울 수 있는 어깨를 내어 주거나, 가만히 등을 토닥여 줄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울부짖는 소리를 먹먹한 마음으로 들어 줄 뿐입니다. 이외의 다른 애도의 방법을 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외의 애도의 순간을, 저는 모릅니다.

 

=> 인간의 말은 위로가 되지 않고, 하느님은 침묵하는 순간의 슬픔을 겪어 본 이들은 하느님이라도 원망해야 하는데 그런 이들에게 신심 깊은 마음으로 건넨 종교적 위안은 슬퍼하는 사람의 마지막 숨통을 막아 버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종교적 위안의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가 마음껏 울고 소리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하십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거짓말도 금물입니다. 그런 말은 허황된 거짓말이고 슬픔에 잠긴 사람은 그걸 금방 알아채립니다. 상대방을 위로한다고 건넨 말이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걸 항상 인지하고 조심스럽게 대해야 합니다. 그저 조용히 옆에 있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제 자신의 언행을 되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슬픔에 대해 감히 이해한다고 한 적은 없었는지, 위로하려다가 상처를 주진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그 사람이 아닌 이상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책은 종교 철학을 공부하신 가톨릭 사제가 쓴 책이지만 가톨릭 신자가 아닌 분들도 부담없이 읽으실 수가 있습니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잔잔한 울림을 주는 작은 이야기들이 실려 있습니다. 누구나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하신 분, 몸과 마음이 아프신 분들,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쓰신 허찬욱 신부님께서는 공감을 만들어 내는 작은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고 하셨고 앞으로도 계속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앞으로도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면 좋겠습니다.

 

슬픔과 고통에 관한 성찰을 담은 이 책이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려는 이에게 도움이 되고, 그리고 슬퍼하는 이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는 신부님의 말씀처럼 이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 생활성서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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