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형제의 숲
알렉스 슐만 지음, 송섬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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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만을 제공받고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분야: 장편소설, 북유럽 소설

『세 형제의 숲』은 2년 전에 있던 일에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형과 동생과 함께 저녁을 먹을 기회가 있었다. 나는 문득 형이 여자친구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형은 연애를 오래 했고, 나는 형의 여자친구와 인사할 때마다 좋은 인상을 받았었다.

"우리 헤어졌어."

형이 이별을 겪은 줄도 몰랐던 나는 당황했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괜찮냐고, 속상하진 않냐고 다시 물었다.

"괜찮지, 그럼. 헤어진 지 반년 정도 되었거든."

어떻게 이럴 수가. 어렸을 때 나는 우리 세 형제가 한 몸처럼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서로의 근황도 모르는 채로 소원해지다니. 언제 서로에게 낯선 사람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이후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마침내 이 책을 완성하게 되었다. 가까운 사람을 잃고 살아남는 것에 대한 소설이다.

...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출처는 다 나에게 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이며, 모든 것을 서로 나누던 형제 동생 그리고 나를 생각할 때마다 똑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냐고.

작가의 말

『세 형제의 숲』의 이야기는 작가가 경험한 형제로부터 느낀 단절감에서 시작되었다. 단절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이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연결감을 느끼게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남자 세 명이 별장 현관문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에 나란히 앉아 있다. 서로를 안고 울고 있다. 정장에 넥타이까지 갖춘 차림이다. 그 옆, 잔디 위에 유골 단지가 놓여 있다. 경찰관의 눈이 세 남자 중 한 명과 마주치자 그가 일어선다. 나머지 두 남자는 여전히 서로 부둥켜안고 앉아 있다. 피투성이에 심하게 두들겨 맞은 모습이기에 경찰관 역시 앰뷸런스를 부른 이유를 알 수 있다.

 

"베냐민입니다. 신고 전화를 건 사람이 접니다."

 

경찰관은 주머니를 뒤져 수첩을 찾는다. 이 이야기가 종이 한 장에 담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방금 자신이 수십 년간 이어진 이야기의 결말에 발을 들였다는 사실을 경찰관은 모른다. 오래전 이곳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가 어쩔 수 없이 돌아온 세 형제의 이야기라는 것도,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 무엇도 단일한 사건이 아니며 별개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모른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무게는 어마어마하고, 당연하게도 사건의 대부분은 이미 일어났다. 여기 돌계단 위에서 펼쳐지는 세 형제의 눈물과 부어오른 얼굴, 피의 이야기는 그저 수면에 남은 마지막 파문이자 돌이 떨어진 자리에서 가장 먼 곳에 일렁이는 잔주름일 뿐.

 

1장: 오후 11시 59분

『세 형제의 숲』은 총 2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는 방식으로, 하나는 과거('베냐민'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 시간순으로 서술되고 다른 하나는 현재(어머니의 장례식)의 이야기로 역순으로 서술된다. 현재의 이야기가 역순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재미있는데 소설의 첫 장면부터 형제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져서 과연 이런 파국적인 관계가 회복가능할지 의문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챕터가 진행될수록 독자들은 형제들 간의 미묘한 감정선을 알아차리게 되고 완전히 망가져버린 것 같은 관계가 얼마든지 회복될 수도 있다는 것을 또 이런 난장판이 평화로운 일상과 마찬가지로 세 형제에게는 단지 지나가는 한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두 형제의 포옹은 잠깐이었지만, 아무리 짧더라도 포옹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마치 강풍 속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물고기를 잡아 올리느라 엉켜버린 그물을 풀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심하게 엉켜서 절대로 풀 수 없을 테니 처음에는 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치 못한 곳의 매듭 하나를 풀자 그 뒤로는 저절로 그물이 술술 풀려 벽에 붙은 고리 위 제자리를 찾아가게 된 것처럼 말이다.

9장: 오후 4시

역순의 이야기 진행방식 덕분에 읽는 내내 '이 자식들 (이 시간대부터 저 시간대 사이에)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지?'하며 궁금해했는데 작가의 플롯 짜는 솜씨가 뛰어난 것 같다. 


『세 형제의 숲』의 또다른 재미는 매우 현실적인 모습의 인물들이다. 어쩌면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진 일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출처는 다 나에게 있다.'고 했던 <<작가의 말>>, 또 작가 소개의 '알콜 중독자 어머니와의 관계를 다룬 회고록'을 쓴 이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피에르뿐 아니라 실은 가족 중 그 누구도 개와 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몰리는 좋은 놀이 상대가 아니었다. 늘 불안하고 몸도 약한 데다가, 틈만 나면 깜짝깜짝 놀랐다. 몰리를 키우게 된 뒤에 맞이한 첫 여름엔 다들 이런 일은 머지않아 지나가리라고, 시간이 지나면 몰리도 적응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몰리의 성격이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세상이 무서운지, 몰리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생각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듯 누군가의 품에 안겨 다니는 쪽을 선호했다. 아빠가 어색하게 따뜻함을 표현하려고 다가가도 겁을 먹고 물러났다. 닐스와 피에르도 몰리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어쩌면 엄마가 자신들보다 개를 더 아낀다는 생각에 질투를 느낀 것 같기도 했다. 엄마는 몰리를 몹시 사랑하면서도 내킬 때만 사랑을 표현했기에 몰리는 더 불안해했다. 엄마는 몰리를 다른 가족과 공유하지 않고 독점하려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몰리에게 쌀쌀맞을 때도 있었다. 때로 베냐민은 몰리가 외톨이 같다고 생각했다. 이는 피에르와 닐스의 무관심, 아빠의 체념, 엄마가 보이는 돌연한 무심이 낳은 결과였다.

베냐민은 몰리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그해 여름, 엄마와 아빠가 시에스타를 즐기던 기나긴 오후 내내 둘은 유대관계를 만들어 갔다. 베냐민은 속으로 몰리는 자기 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같이 호수에 가서 돌을 던지고 놀았다. 숲속을 산책했다. 함께 쏘다녔다.

8장: 식품 저장고

엄마의 말이 끝나고 침묵이 이어지자 베냐민은 눈을 들어 엄마를 쳐다보았다. 이야기가 끝난 게 분명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 교훈도 없는,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일 뿐이었다.

...

"식품 저장고에 들어가서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져라."

"식품 저장고요?"

처음 받는 벌이었다. 예전에는 늘 불 꺼진 사우나에 들어가 있으라는 벌을 받았다. 사우나 안에 혼자 앉아서 잘못을 반성해야 했다. 엄마의 육아 방법은 엄격하고 규칙 중심이었지만, 일관성은 없었다. 엄마는 결단력 있는 동시에 애매모호했다. 사우나에서의 벌칙이 언제쯤 끝나는 건지, 언제 나와도 되는지 알려준 적이 없어서 베냐민이 알아서 결정해야 했다. 결국 사우나에서 나온 뒤에도 너무 일찍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8장: 식품 저장고

베냐민은 쉬는 시간마다 몰래 피에르를 관찰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멀리서 동생을 지켜보고 나서야 그는 저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컴컴하고 혹독하게 추운 한겨울 오후 2시였다. ... 베냐민은 아주 얇은 재킷을 입고 모자도 쓰지 않은 피에르가 놀이를 하는 아이들 한구석에서 벌겋게 얼어붙은 손을 청바지 주머니에 꽂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베냐민은 문득 화가 치밀었다. 왜 엄마 아빠는 쟤한테 더 따뜻한 외투를 안 사준 거지? 왜 쟤한테는 모자도 장갑도 없는 거야?

다시 교실을 향해 돌아가던 길에야 베냐민은 자기도 몸이 꽁꽁 얼었다는 사실, 자기가 입고 있는 재킷 역시 동생이 입은 것과 마찬가지로 얇아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서서히 모든 단서를 하나로 꿰어 맞췄고, 그렇게 주변을 관찰함으로써 점점 자기 자신을 알아갔다. 불결하기 짝이 없는 집 안. ... 베냐민은 집뿐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더럽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다 보니 차츰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15장: 졸업 파티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이야기에 현실성을 탄탄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상징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의 경험이 어느 정도는 반영되었음이 분명한 알콜중독자 부모님에 대한 묘사,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일관성 없는 가정교육 아래서 자라 어딘가 불안정한 세 형제와 몰리의 모습.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현실적이라 정말 스웨덴의 어느 도시에 인물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엄마의 육아 방법은 엄격하고 규칙 중심이었지만, 일관성은 없었다. 엄마는 결단력 있는 동시에 애매모호했다. 사우나에서의 벌칙이 언제쯤 끝나는 건지, 언제 나와도 되는지 알려준 적이 없어서 베냐민이 알아서 결정해야 했다. 결국 사우나에서 나온 뒤에도 너무 일찍 나온 것은 아닌가 하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와 같은 부분들, 베냐민의 마음 속 이야기에서 상징성은 특히 두드러지는데, 『세 형제의 숲』의 먹구름이 드리워진 것만 같은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핵심인 과거의 특정 사건과 연관지을 때 그렇다.

 

이 이상은 스포 가능성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할 생각이다.

햇빛에 눈을 찌푸린 채 찍힌 사진 속의 어린 시절은 언제나 찬란하다. ... 그러나 기억을 처음부터 찬찬히 되짚어가면 별장에서의 어린 날은 사진 속처럼 다정하고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 별장에서의 여름은 비극적인 사건으로 끝을 맺고, 베냐민은 아주 오랫동안 그 일을 이해할 수 없다.

이런 기억들에 또 하나의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섞여든다. 어른이 된 베냐민이 마침내 형제들과 함께 오래전의 별장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어린 시절은 선형적으로 전개되지만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역순이다. 타임머신을 묻듯이 뚜껑을 덮어 가슴 깊은 곳에 밀어 넣은 기억을 되찾기 위해서는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천천히 더듬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세 형제의 숲』은 어린 시절을 갑작스레 무너뜨린 비극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기억을 다시금 방문하며 그 기억과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이 이야기는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묻혀 있던 기억을 꺼내지 않고서는, 비극적인 사고 이후에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을 찬찬히 풀어헤치지 않고서는 자라날 수 없으니까. 

...

이 책의 스웨덴어 원제인 'Overlevarna'는 '생존자들'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복수형으로 쓰인 이 표현은 베냐민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을 형성한 역기능逆機能 가족 전체에 흐르는 잔잔한 폭력의 흐름을 나름의 방식으로 버텨낸 세 형제 모두를 가리킬 것이다. 어쩌면 생존이란 한 차에 올라 흙길을 달려 어린 시절로 되짚어가는 과정 자체를 가리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름은 끝나고, 불가해한 사건에 관해 끝까지 아무 이야기도 나누지 않은 채 어른들은 사라진다. 늘 함께이던 형제들은 각자의 삶으로 떠나 길에서 마주쳐도 돌아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 누구나 언젠가 유골 단지에 담긴 낯선 빛깔의 재가 된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은 제자리에 멈춰 힘껏 처음으로 되돌아가기도 한다. 그곳에 묻힌 끔찍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는 시작될 것이다. 

옮긴이의 말

『세 형제의 숲』은 어린 시절의 비극을 마음 한 켠에 묻어둔 채 살아온 한 가족의 이야기다.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왜 베냐민의 가족들에게 그 사고가 그토록 큰 상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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