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릴러
김시안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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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르: 추리/미스터리


언제부터인가 코와 입술 사이 인중이 없는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인중 없는 아이들의 사례가 보고되었을 때 의사들은 일종의 선천적 아면 장애로 판단하고 치료 방법을 강구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아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여러 차례의 오해와 외면, 실수와 실패가 반복된 후 어른들은 인중 없는 아이들이 먼 과거에서 온 사람들임을, 즉 전생의 기억을 품은 채 환생한 것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3p

김시안의 [환]은 전생의 기억을 가진채 태어나는 인중 없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생의 기억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설 속 정부는 '환생아보호법'을 재정하고 '환생아기억보존국'을 신설하는 등 여러 가지 장치와 제도를 마련하지만 모든 아이들을 보호하기에는 부족하다. 다행히 환생아들이 전생을 기억하는 시간은 제한적으로 일곱 살 무렵 첫 유치가 빠지고부터 전생의 기억을 점차 잃어간다.

환생아 한 명이 태어날 때마다 거대한 시간의 파도가 일었다. 시간과 공간의 축이 뒤섞인 바다에서 무기력하게 표류하는 인간들은 성나 바다가 포효하지 않기만을 바랐다. 짙은 먹구름이 일고 바람의 방향이 바뀌었다. 잔잔했던 바다가 출렁이며 파도가 일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14p

이야기는 총 3부로 나눠져 있는데, <1부: 가장 행복한 순간, 과거로부터 한 아이가 찾아왔다>는 등장인물 지영과 석훈 부부, 그리고 그들의 아이인 기환의 이야기가, <2부: 코모도도마뱀은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에서는 코모도도마뱀이라는 악명을 가진 여자 고미도의 이야기가, 마지막으로 <3부: 잊고 싶은 기억>에서는 석훈과 석훈의 아버지 원석 그리고 2부의 메인 캐릭터인 고미도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영, 석훈, 기환, 원석, 고미도. 이 다섯 명의 인연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환]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입체적인 인물들의 모습이다. 얼핏 악인으로 보일만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고미도와 세간에 선한 영향력을 주는 인물로 알려진 원석뿐만 아니라 당당한 매력의 셀럽 지영과 믿음직한 어른의 표본 그 자체로 보이는 석훈까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초반과는 매우 다른 모습의 등장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우리 주위에 있는 실제 인물 같은 느낌이 든다.

자동차 시동을 거는 미도의 입가에 삐딱한 웃음이 걸렸다. 울음도 웃음도 아닌 기괴한 소리가 미도의 목구멍에서 비어져 나왔다. 미도는 자신이 흉측한 괴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177p

이것이 히어로의 자기소개(...)


[환]을 읽다보면 환생아가 존재하기 때문에 발생할법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다.

'만약 과거의 기억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미칠만한 내용이라면?'

지영과 석훈 부부의 아들인 기환은 환생아다. 그리고 그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환]은 기환이라는 아이가 과거의 자신이 누구였는지 밝히기까지의 여정을 주위 인물들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내 생각에 이 소설의 가장 큰 주제는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영향'이다. 여기에는 기억뿐만 아니라 과오도 포함된다.

자신이 살기 위한 선택에 그토록 많은 희생이 더해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치도 못했다. 사는 동안 바라는 것은 많지 않았는데, 사는 일 자체가 무해할 수 없었다.

307p

스포 가능성 때문에 더 자세히 말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이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완전히 무고한가? 무지를 방패삼아 우리가 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눈감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


소설을 읽으면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이상기후와 날씨에 대한 묘사다. 초반에는 이런 묘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이야기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상징성을 깨닫고 작가의 놀라운 글솜씨에 박수를 쳤다. 정말 놀라운 짜임새의 글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스티븐 킹의 작품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개인적으로는 절대 악과 선의 대립 구도가 아닌 김시안 작가님의 욕망 추구 구도가 더 현실적이라서 마음에 든다.


[환]은 다루는 주제가 주제니만큼 전체적으로 무거운 분위기를 띠는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끔 등장하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장면이나 블랙코미디 같은 장면이 정말 숨겨진 보석같은 책이었다. 작가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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