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부터의 탈출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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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르: SF, 일본 장편소설

메르헨 죽이기 시리즈로 유명한 고바야시 야스미 작가의 마지막 작품, [미래로부터의 탈출]을 읽어보았다.

고바야시 야스미는 작가 중에는 드물게도 공학대학 출신인데 그런 특징이 [장난감 수리공]이나 [미래로부터의 탈출]에 잘 드러나 독특한 재미가 있다. 약간 무미건조하면서 수학적인 논리를 이용한 장난스러움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미래로부터의 탈출]는 근미래를 다룬 SF로 고바야시 작가의 논리적인 장난스러움과 치밀한 반전 구조를 지닌 개성있는 작품이다. 일단 등장인물의 설정부터가 흥미로운데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100세 노인이 주인공이다. 언뜻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창문 넘어~]의 밝고 위트 있는 분위기와 달리 [미래로부터의 탈출]쪽은 날서있고 우울한 분위기를 띤다.


사부로는 책 몇 권을 뽑았다. 하지만 빌릴지 말지 망설였다. 재미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예전에 읽은 책인지 아닌지 당장 판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은 것 같기도 했고, 읽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같은 책을 두 번이나 읽는 건 시간 낭비다.

잠시 망설인 후, 문득 방금 전 노인의 말이 떠올랐다. "기억도 안 나는 경기를 보고 '옛날 경기를 보여주지 말라'는 건 너무 자기 위주 아닌가?"

왜 이 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잠시 생각하다 이유를 알고 사부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 노인의 말은 이 상황에도 들어맞는다. 엣날에 읽었더라도 기억나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읽었는지 읽지 않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읽으면 그만이다. 가령 두 번째더라도 재미있게 읽는다면 아무 손해도 없다.

텔리비전 방송도 책도 기억나지 않는다면, 몇 번을 봐도 상관없다. 몇 번이든 즐기면 된다. 확실히 그건 하나의 진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기분도 들었다.

만약 몇 번 보고 읽어도 전혀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과연 보고 읽는 의미가 있을까? 보거나 읽는 건 내용을 기억에 남기기 위해서 아닐까? 기억에 남김으로써 인간은 변화한다. 그것이야말로 성장 아닐까? 그런데 뭘 보거나 읽어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면 나는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뜻인가?

사부로는 우울해졌다. 이곳 생활은 평온해 보이지만, 매일 아무 변화도 없이 똑같은 행동과 생각을 되풀이한다면, 그건 일종의 지옥 아닐까.

24p

판타지-미스터리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서 초반의 '지옥'이라는 비유가 단순히 비유가 아닌 실제일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보다 훨씬 큰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스포 가능성이 있으니 줄거리는 여기까지만 적어야겠다.

요약: 주인공인 100세(추정 나이) 노인 사부로가 요양원을 탈출하는데 성공하는지 궁금하다면 [미래로부터의 탈출]을 읽어보시길. 노인들의 느릿느릿한 탈출이 손에 땀을 쥐게하는 소설이다.


마지막 작품이라 그런지 너무 재미있지만 읽어나가는 게 너무 아까운 작품이었다. 이게 마지막이라니... 아직 더 많은 작품으로 만날 줄 알았는데 정말 아쉽다. [미래로부터의 탈출]을 암 투병 생활 중에 썼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작품 내에서도 병원(소설은 요양원이 배경이지만) 특유의 우울함과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신체에 대한 분노가 언뜻 비치기도 한다.

또, 이전 시리즈인 <<메르헨 죽이기>>와 비교하면 책의 분량이 육안으로 봐도 적은편인데 이야기 전개가 빠른편이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작가가 이야기를 (되도록 빨리) 꼭 마무리하고 싶었구나 하는 의지를 강하게 느꼈다. 마지막 장면은 작가에게 여유가 있었다면 좀 더 길게 풀어 쓰시지 않았을까 싶다. 화자의 나레이션 대신 장면을 보여주는 식으로.

아픈 와중에도 독자를 위해 재밌는 작품을 만들어주신 고바야시 야스미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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