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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에 띄운 편지 ㅣ 반올림 61
발레리 제나티 지음, 이선주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4년 7월
평점 :
지구라는 유기체에서 가장 아프고 쓰라린 곳,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소년과 이스라엘 소녀가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소녀의 다소 엉뚱한 모험이 현재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함께 아파해야 할 문제들을 수면위로 꺼내 놓는다. 그 모험은 팔레스타인의 누군가에게 병에 든 편지를 바다의 힘을 빌려 전하는 것이었다. 거짓말처럼 또래의 소년이 그 병을 발견했고 꿈같은 소통이 시작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메일을 보내는 이스라엘 소녀와 달리 팔레스타인 소년은 이유 모를 악에 받쳐 가시 돋친 말로 편지를 채워 보낸다. 그마저도 자주 오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 이유는 물어보지 않아도 우리가 모두 안다. 아마 소녀도 그랬을 것이다.
유서 깊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분쟁. '갈등, 분쟁'이라는 평면적인 단어에 채 담지 못할 복잡한 관계 속에서 지금도 그곳은 화약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다. 두 어린 학생은 용감하게도 마치 양국의 대표가 된 것처럼 메일을 주고 받고 있었다. 둘의 대화를 보니 우리가 그나마 신뢰하는 언론 보도가 그 곳의 상황과 감정을 세세하게 전하긴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는 과정으로 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으니까.
"증오와 복수심은 비싸지도 않을뿐더러 도처에 있다보니 여기선 유일하게 넘쳐나는 품목이다. 절망과 더불어서 말이다." (p.43)
가자지구는 길이 25km, 너비 10km 지역에 철조망이 둘러있고, 7개의 검문소가 설치된 고립된 장소이다. 여기에 팔레스타인 사람 150만 명, 이스라엘 점령자, 군인들이 섞여 있다. 검문소는 이스라엘이 이상 징후가 조금이라도 감지되면 바로 잠가버린다. 가둬만 놓으면 다행이지 각종 폭력과 테러가 공존하며 수시로 사람들의 생명과 자유를 위협한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모두 고통의 역사를 살아온 민족이다. 매번 벌어지는 개별 사건만 본다면 가해, 피해자의 구분이 가능하지만 전체 역사를 볼 때는 두 나라 모두 처절하게 피해자 위치에 있었다고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그래서 피해자끼리 서로 살겠다고 죽어라 싸우는 느낌이라 읽는 내내 암담해졌다.
과연 이 싸움은 어느 쪽이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사과해야 끝나는 문제일까? 가자지구, 서안지구, 이스라엘 등으로 갈가리 찢긴 기묘한 지도에 어떻게 하면 평화가 올까? 갈라진 지도보다도 더 심하게 뭉개진 그것 사람들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팔레스타인 소년 나임의 눈물을 기억해야겠다.
"내 시선은 포도주 안으로 침수해 버렸어. 눈물이 고여 있는 걸 그들이 보지 못하도록. 그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많은 기회를 갖고 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그 모든 자유를, 그 모든 여행을, 그 엄청난 것들을 그렇듯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했어." (p.142)
거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다. 어린 학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곳, 세계 여행을 꿈꾸는 곳,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곳, 가정을 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보고 살아갈 수 있는 곳. 이스라엘 소녀 탈이 가자 바다에 병을 띄우려 했던 위험천만한 도전을 우리는 더 쉽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으니. 기억하고 응원하고, 상식이 회복되는 세상을 꿈꾸는 수 밖에 없다.
기억과 관심은 비싸지 않으니까. 희망과 더불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