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오스의 바위
아민 말루프 지음, 이원희 옮김 / 교양인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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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여러 사람이 타니오스의 보이지 않는 발자취를 따라 마을을 떠났다. 똑같은 이유 떄문이었을까? 똑같은 충동에 이끌려서? 내 고향 산악 지대는 그런 곳이다. 정착하고 싶으면서도 떠나고 싶은 곳. 피난처이자 잠시 머무는 곳. 젖과 꿀과 피의 땅. 내 고향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연옥이다. (p.372)


역사적으로 인류가 거래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바로 땅이다. 상대를 힘으로 찍어 눌렀다는 의미의 징표로 받기도 하고 필요에 의해 금전으로 바꾸기도 하고 화해의 의미로 넘겨주기도 한다. 그 와중에 일어나는 변화로 인한 혼란과 고통은 오롯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되는 현실이 동시에 벌어진다. 역사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떠나온 자기 고향이 그저 천국도 지옥도 아닌 어중간한 연옥이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


레바논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월드컵 지역 예선 때 자주 만나는 나라 정도였고, 최근 본 '영화 <비공식 작전>의 배경이 된 나라였다. 영화를 통해 생각보다 거친 배경이군. 정도로 생각했다. 레바논 출신의 프랑스 작가가 쓰는 고향의 이야기는 어떨까? 한국인이면서 동시에 미국인인 작가가 쓴 <파친코>나 <작은 땅의 야수들> 같은 디아스포라 문학이 자동 연상 되는 배경이었다.


우리가 보통 근동이라고 부르는 지역의 역사는 좀 더 복잡한 소용돌이 속에서 형성되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기독교, 이슬람교로 양분되는 세계 종교의 고향이면서 열강의 이권 다툼의 격전지가 된 곳, 아직도 이런 저런 이유로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타니오스의 바위>는 역사적 배경만으로도 이미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레바논의 한 산악 지역. 따로 연대기가 존재할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다. 그곳을 두고 카톨릭과 기독교, 프랑스와 영국, 이집트와 오스만 제국이 충돌하고 패배하고 응징한다. 마을 영주의 집사의 아들인 주인공 타니오스 또한 한국인이 사랑해 마지않는 출생의 비밀, 성장의 미스테리가 충돌하는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끝까지 타니오스가 영주의 아들인지, 집사의 아들인지 모호하게 표현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그래서 참 재미있게 읽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타니오스의 성장기에 고향의 카톨릭을 등지고 영국 목사의 학교에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영주를 배신했던 전 집사에게 마음을 두고, 그 딸을 흠모했다가 아버지를 떠나기 위한 단식 투쟁을 한다. 가치관이 뚜렷하게 자리 잡히면서 타니오스에겐 시련이 이어진다. 그 시련의 끝은 갑자기 하얗게 새어버린 그의 머리카락이다. 당시 흰머리의 사람은 불길한 존재로 여겨지면서 동시에 영웅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타니오스라는 한 인간 안에서도 복잡한 가치들이 충돌하고 있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는 살인자의 아들이 되어 그 땅을 떠난다. 하지만 거짓말처럼 영웅이 되어 금의환향한다. 그리고 다시 그 땅을 떠난다. 영원히. 그가 고통 가운데 떠났을지, 미소 지으며 떠났을지 알 길은 없다. 어쩌면 떠나는 자의 마음이 뭐가 중요하냐는 생각도 든다. 아마도 애증이 반반씩 섞여 어느 쪽으로도 치우지지 않은 상태는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 땅과 영원한 이별을 고할 수 있었겠지.


땅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 <타니오스의 바위>는 흥미롭고 긴박한 이야기로 땅의 의미를 풀어낸다. 피와 죽음이 득실대도 맘대로 떠날 수 없는 곳이면서 용기를 내 떠났어도 다시 돌아가야만 하는 곳. 현실적으로는 지옥이지만 그 땅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천국이 되는 곳. 영화 <비공식 작전>을 보는 한국인의 뇌리엔 여전히 생지옥이었던 그곳의 자국민들에겐 세상 어느 곳과 바꿀 수 없는 따뜻한 집과 같은 곳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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