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데아
이우 지음 / 몽상가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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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서울이 그리워"


작가는 글을 쓰기 위해 모로코로 떠났다. 왜 모로코였을까? 아마도 가능한 한 멀리,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었던 것 같다. 그곳에 살면서 느낀 이방인으로서의 심정이<서울 이데아>라는 제법 긴 글로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작가는 준서라는 20세 청년을 자기 대신 한국으로 보낸다. 자신이 뿌리내리고 싶은 곳이면서 어딜 봐도 한국인인 자신을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곳. 이게 무슨 소리야? 라고 한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500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이 그 아이러니한 상황을 반복해서 얘기해주고 있다.


이 책이 가장 인상 깊었던 이유는 독자를 준서와 같은 마음과 시선으로 서울을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뼛속까지 서울 사람인 내가 준서의 눈을 통해 본 서울 정경의 묘사를 접하면서 끊임없이 이질감을 느꼈다. 별다른 기교를 부리거나 '서울을 최대한 낯설게 보세요.'라는 주문이 들려서도 아니었다. 이역만리 미지의 땅에서 쓰인 글에 온전히 들어가 있는 작가의 진심 어린 창작혼이 느껴진 걸까? 적확한 표현이 떠오르지 않아 괴롭다. 결론은, 좋았다는 것이다. (초라한 표현….😔)  

최근 한국계 이민자 작가들의 디아스포라 문학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 등을 외우고 자란 세대라 조국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무의식 속에 장착하고 있었던 내가 <파친코>, <작은 땅의 야수들>을 읽으며 과연 조국이란, 고향이란 무엇일까 새롭게 생각해보게 됐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바로 이 책에 고향에 대한 명확한 표현이 나와 있었다. 그 부분에서 알 수 없이 막혀있던 게 시원하게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끌림에 대한 확신이란다. 우리가 정하지 못하는 건 태어나는 곳뿐이야. 어디서 살지, 어디서 젊음을 꽃피울지, 어디서 꿈과 열정을 불태울지는 선택할 수 있어. 이끌림이 있다면 계속 나아가 봐. 너의 대지는 너만이 찾을 수 있어. (p.35)​📚


태어난 곳도 아니고 자라 온 곳도 아니다. 그저 내 몸과 마음이 이끌리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그래서 준서는 그냥 이끌려 서울에 왔다. 대책없이 눈앞에 펼쳐진 낯선 곳과 사람들에게 부딪혔다. 어떤 결과를 낳을지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이끌림이니까.


그 이끌림의 1차 종착지는 첫눈에 반한 주연이었다. 주연이야말로 준서가 찾던 고향이요, 조국이자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 해 지키고 싶은 존재였다. 하지만 그 주연조차 자신의 소망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그럴 줄 알았어.' 식의 마음을 갖고 냉소적으로 보던 내게 불현듯 소름과 함께 돋아난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나의 영원한 고향 서울도 내게 주연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농담처럼 우리가 많이 하는 말, "국가가 우릴 위해 뭘 해줬냐?"처럼. 딱히 뭘 받은 건 없는데 난 이 나라를 믿고, 좋아하고, 때론 실망하고, 끝없이 분노했다가 결국은 사랑한다. 사랑은 다시 돌아와 지금 여기에 머무른다.


이 소설의 끝은 명확한 엔딩을 맺지 않는다. 20살 준서가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경험한 서울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마 작가는 또 어떤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준서가 앞으로 또 사랑하고 실망할 그 무엇, 그 어딘가로. 지금 우리도 그렇게 서울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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