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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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헤세의 '그 책'이 생각난다.
한 청춘이 성장한다.
만남이 있다.
영향력이 있다.
아마도 이 책을 펼쳐 든 사람들이
이 작품을 함께 떠올릴 것 같다.
<데미안>
<경우 없는 세계>는 거칠다.
성장스토리라고 하기엔 부족하게 느껴진다.
인물들은 끝없는 퇴보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히 <데미안>과의 접점을 쥐어짜 내보면,
'가정의 역할'이다.
철학적이고 고급스러운 문학적 표현의 <데미안>이나,
적나라한 참혹함을 보여준 이 책이나, 비슷한 느낌이었다.
주인공의 집안 분위기가 묘사되는 지점에선
어김 없이 숨이 막혀 왔다.
싱클레어와 인수의 집은 모듀 겉바속촉이었다.
허울 좋은 껍데기와 위선에 폭력까지 대환장 콜라보.
<더 글로리>도 그랬지.
'동은 오적'보다 수백 배 나쁜 빌런이 있었으니,
바로 동은의 엄마였다는.
부모는
최초의 어른,
최초의 인간,
최초의 선생이다.
가정은 사람의 삶이 시작되고 완성되는
가장 중요한 교육기관이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교육 시스템.
오히려 가출을 통해 만난 친구들이 더 나아 보인다.
독자인 나조차 가출팸의 집단 주거지인
'우리 집' 장면이 마음 편할 지경이었다.


2. 경우 없다.
인수는 경우를 만난다.
일반적인 가출 청소년과는 다른 모습.
그는 가출은 했지만, 정신까지 가출하지 않았다.
누구보다 사랑받은 듯한 기묘한 행동을 보인다.
인수는 경우를 만나 성장한다.
마음 한구석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며.
이 책은 응당 있어야 할 당연한 것을 불편하게 한다.
부모의 사랑, 안정적 학교생활.
규칙적인 식사와 세면, 그리고 갈아입을 새 옷.
이런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만들고
아이들을 벼랑 끝으로 자연스럽게 내 몬다.
결국 '우리 집'에서 참극이 벌어지는데
혼란 속에서도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래, 일어날 게 일어났어.'
그렇게 인수와 아이들은 경우 없어지게 된다.
그들의 삶을 통해 법이 허락하지 않는 마지노선이 깨졌고
보다 못한 공권력이 개입하기 시작한다.
익숙한 중간 결말.
사랑이 늘 고팠지만
사랑을 떠나 방향 없는 삶을 살다가
다시 사랑을 찾아 기대려는 우리 아이들.
그게 다 내 이야기였다.
불쾌하지만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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