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서툰 오십 그래서 담담하게
허일무 지음 / 파지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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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출신 강사가 실제 50줄에 접어들어 인생의 크고 작은 전환기를 그려낸 책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상당히 담담하게 쓰였다. '여러분 삶의 문제와 상황을 이렇게 해결하세요! 하는 방법론을 설파하는 것이 아닌, '50대의 삶을 살아보니 대략 이렇더라고요. 상당히 혼란스럽습니다' 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만약 작가 본인이 살아온 인생이 옳다 고집하며 자꾸 독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려 노력하는 글이었다면 그저 흔한 꼰대의 잔소리에 그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하고 싶은 일 찾아 진취적이고 멋지게 살아가는 중년이지만 실제 모습은 누구보다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인 한 인간이라는 것을 서서히 인정해나가는 과정을 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가정 안에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여전히 미성숙함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모습이 진솔했다.
수능시험 날 아침, 아들의 손목시계가 망가졌다는 소리를 듣고 극대노하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 피곤한 딸을 차로 데리고 오면서 그러게 진작 운동을 하라고 하지 않았냐고 말하고 '알아서 할게요'라는 답변을 듣는 모습.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내와의 마찰의 모습 등을 보면서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동시에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됐다. 이제라도 처절한 변화의 과정을 갖지 않는다면 이제껏 남을 향했던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은 나를 향할 것이라는 것.

젊은 시절, 경험과 학습에 의해 만들어진 자기만의 진단지를 모두 갖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세상과 사람을 평가해왔고 특별히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진단지를 만든 나의 가정과 전제는 언제든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의 얘기를 받아들이고 검증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P.98)

가장 와닿았던 부분이 바로 여기였다. 내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그동안 감히 사람들을 측정하고 평가하고 단정 지었는지 돌아보니 남는 것은 부끄러움뿐이다. 작가가 계속해서 반성하는 모습이 보여 나중에는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10년 후의 나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닿았던 대목이 아니었나 싶다.

읽다가 갑자기 '죽음'이라는 위화감 가득한 단어가 나와서 그 챕터를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게 됐다.

오십 대에 진짜 필요한 것이 일시적인 죽음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남은 삶에서 진짜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가끔은 삶의 치열한 현장에서 멀어지는 연습이 필요합니다.(P.92)

작가가 말하고 싶던 죽음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성경에 보면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생명의 소멸이 아닌, 자아의 소멸이라고 보면 의미가 좀 가까울 수 있겠다. 내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큰 의미가 없었음을 깨닫고 새로운 자아로 살아가는 인생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죽음이라고 표현할 만큼 원래 달고 살던 자아를 떼내는 과정은 엄청난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작가도 아직 어떻게 잘 죽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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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50대가 10년도 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받아야 하는 세대가 비단 50대 뿐이겠는가? 우리의 삶이 진행되는 동안 관통해야 할 지혜들이 많다. 그 지혜가 아직 미완성이기에 앞으로 더 갈 길이 남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자산으로 삼고, 새로운 자아와 더불어 지금까지 부인하며 놓쳐왔던 더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면서 그 지혜를 완성해 나가는 길, 참으로 의미 있고 멋진 작업이 되지 않을까?

어렵지 않은, 그러면서도 가볍지도 않은 좋은 책을 만난 것에 감사를 표한다.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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