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삶 - 여성 작가 아홉 명의 자유롭고 고유한 삶에 관하여
조애너 빅스 지음, 이미애 옮김 / 사람in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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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영국의 편집자이자 작가인 조애너 빅스가 여덟 명의 여성 작가를 다시 읽으며 자신의 30대를 통과한 기록이다. 저자는 열아홉에 만나 20대를 함께 한 남편과 이혼했고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어머니를 돌보다 결국 떠나보냈다.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깊은 뿌리였던 두 사람을 떠나보내는 상실감은 지독한 자기 연민을 넘어서 자기혐오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나는 왜 남들처럼 적응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사랑받지 못하는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왜 가장 절실할 때 내 곁을 떠나는가. 답이 없는 질문들만 맴돌고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 저자는 고전으로, 그중에서도 여성 작가들의 고전으로 도피한다.


《자기만의 삶》은 인문학으로 분류되지만 거의 에세이에 가까운 책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조지 엘리엇, 조라 닐 허스턴, 버지니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 실비아 플라스, 토니 모리슨, 엘레나 페란테. 저자는 이 여덟 명의 삶과 작품을 자기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엮는다.


시대와 인종, 성차별의 벽을 넘어 고전 문학에 이름을 남긴 위대한 여성들이지만, 저자는 이들의 결핍과 상처, 실수와 용서받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문학으로 드러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어떤 서러운 시간을 겨우 통과할 때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깃든 정답이 아니라, 나보다 먼저 비슷한 자리에 서 있던 사람의 뒷모습일 때가 많다. 여덟 명의 여성들은 선구적이고 지혜롭지만 동시에 안타까울 만큼 인간적이다. 삶이 한 번 무너져본 사람이라면, 그 무너짐이 끝이 아니라 다시 쓰기의 시작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가장 먼저 나오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이야기는 저자가 느끼는 상실감, 삶을 어떻게든 나아가려는 의지, 그러나 거듭 실패하고 무너지는 마음과 닮아있다.


참고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어머니다. 딸 메리는 결혼 전까지 아버지의 성을 따라 메리 고드윈으로 불렸다. 어머니 메리 역시 작가였고, "나는 새로운 인간종의 첫 번째 사람이 되는 거야"라고 말할 만큼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넘어지고 거듭거듭 다시 쌓아가는 여성이었다.


남편과 별거한 직후, 다른 이도 아닌 울스턴크래프트의 묘비를 찾아가는 저자의 모습에서 지상에서는 길을 잃은 그가 산 사람 대신 죽은 사람을 찾아가 위로를 구하고자 하는 위태로움이 느껴진다. 어떤 상실은 너무 커서 동정보다는 사랑으로 포용되고 싶다. 이는 먼저 그 슬픔을 경험해 본 사람,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글로 그 인생을 겪어낸 죽은 이들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위안이다.


새로운 인간종의 첫 번째 사람이 되기 위한 울스턴크래프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사실 책에 나온 그 어떤 여성도 삶이 순조롭지 않았다. 배신, 불륜, 사별 등 그 어느 하나 평범한 삶은 없다. 그러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그 슬픔을 밀어내지 않았다. 슬픔을 회피하면 다른 감정까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강렬하게 느낄 때에야 비로소 깊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감정은 억눌러야 할 소음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알려주는 신호였다.


​"당신은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내가 나를 경멸하도록 만들 수는 없어요." 이 문장에서 그 단단함이 느껴진다. 세상이 나를 절망으로 무너뜨리겠다고 결심해도 나는 새로운 인간종의 첫 번째 사람이 될 것이며, 그는 그 말처럼 여성에 대한 억압 문제에 강렬하게 저항하고 거듭거듭 삶을 개척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에서 따온 책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가장 사적으로 느껴지는 챕터다. 물론 뒤의 실비아 플라스 챕터도 저자의 심정과 맞닿아 있지만, 책의 제목을 차용한 만큼 울프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잃어가는 과정은 《등대로》에 등장하는 램지 부인의 모습과 겹쳐진다. 소설에서 램지 부인은 누군가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그 자체로 받아들여진다. 울프가 저자에게 가르쳐 준 것도 결국 그 받아들임이다. 산다는 것은 사건이 일어나는 대로 계속 반응하는 것, 병든 어머니와의 관계가 그렇듯 두렵더라도 관계가 달라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관계는 변하고 사람은 병들고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니다. 변화를 막으려 애쓰는 대신 매번 다시 반응하는 것, 그것이 산다는 일이다.


​《자기만의 방》은 여성에게 방 하나와 돈이 필요하다는, 이미 부르주아적 배경을 지닌 울프의 배부른 소리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방과 돈은 수 세기 동안 축적된 가부장제에 맞서기 위한 최소한의 평형추이며, 진짜 문제는 방을 가진 여성조차 그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한다.


​여성에게 부여된 삶의 방식 말고도 다른 방식들이 존재한다는 것. 울프는 지금 걷는 길에서 벗어났을 때,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 다른 방식일 뿐이라고 말해준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은, 그들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고 받아들이는 내 모습을 보는 일이다. 그들의 잘못된 선택, 무너짐, 불운, 비난받아 마땅한 일들을 보며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하고 개인의 경험이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된다. 어쩌면 각각의 밀도는 다르지만, 나만 겪는 세상의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덟 명의 작가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저자의 상실과 슬픔에 함께 탑승하여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실패, 실수, 불운에서 어떤 예술이 탄생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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