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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10주년 기념 개정판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평점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혐오사회》 10주년을 기념하여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되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10년 전 공공연한 혐오와 증오범죄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류가 얼마나 혐오라는 집단적 광기에 단단히 잡혀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뿌리 깊게 단단히 자리 잡은 혐오를 조장하는 사회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나'라는 존재는 이것에 공모되지 않을 수 있을까? 집단적 광기와 분위기에서 어떤 자세를 취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현대사회에 퍼져버린 냉소를 어떻게 넘어서야 하는가에 대해 《혐오사회》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혐오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선을 넘어왔다. 인류가 시작된 이후로 지속되고 있는 혐오, 특히 현대사회로 넘어오면서 알고리즘은 더욱 혐오를 조장 및 촉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모두가 이제는 손쉽게 분노하고 혐오할 준비가 되어 있다. '~충'이라는 말도 너무나 손쉽게 쓰이며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주홍 글씨가 선명히 새겨진다.
그렇다면 이러한 혐오의 시스템이 과연 개개인의 편견과 피해에서 비롯된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저자는 명확하게 아니라고 설명한다. 혐오와 증오는 집단적으로 형성된 감정이며 이 범주를 나누는 사회에서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스스로 혐오와 증오에 대한 시선을 알고자 할 때는 개인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증오가 날뛸 수 있게 하는 사회적 구조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혐오가 번성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사전 정당화와 사후 동의의 과정들이 분명히 있었고 자연스럽게 솟아난 감정이 아니라 만들어진 감정이라는 것이다. 왜, 어느 방향으로, 누구를 표적으로 삼는지, 그러기 위해 어떤 장벽과 장해물을 제거하는지에 대한 작동 방식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여기서 혐오사회의 새로운 유형을 저자는 말한다. 비참여자들, 방관자들, 관심 없는 척하지만 혐오로 인해 자제력을 잃고 분노와 증오로 날뛰는 사람들을 마치 포르노처럼 소비하는 자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말리지도 않는 이미 '참여하고 있는 비참여자들', 이들 또한 사회적으로 양산된 관객. 그것이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부정한 일에 내 이름을 보태지 않겠다는 표현조차 하지 않는 그 용기조차 내지 않는 냉소적인 방관자, 적극적으로 분노를 분출하는 사람을 넘어 이를 바라보는 이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꼬집는다.
어떤 존재에게 가능성을 단 하나의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추는 것이 혐오의 시작이 된다. 난민, 무슬림, 성소수자, 장애인에게는 고정된 방식과 시선이 존재한다. 그렇게 틀 안에 가둬버림으로써 개인은 집단과, 집단은 그 속성들과 하나로 결합한다. 축소된 사고는 점점 혐오의 틀 안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저자는 이러한 고정된 이미지들로 낙인찍힌 이들에게 있어 우리가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유사한 존재, 연약하고 존엄성을 지닌 존재,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다른 면모를 지닌 존재임을 상상하지 않는다. 하나의 프레임을 씌어버리면 그 고정된 이미지에서 좀처럼 확장할 수가 없기도 하거니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정된 이미지는 더욱 각인되기만 한다.
무엇보다 이들이 받은 모욕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어렵게 내면 태연하게 굴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다. 퀴어의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왜 굳이 그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원하냐, 조용히 사회의 일부로 남으라는 시선은 또 하나의 폭력이다. 왜 굳이 이런 전시를 하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은 선프라이드재단의 대표가 퀴어 미술의 중요성을 설명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그림자처럼 머물라, 남들 눈에 띄지 말고, 모욕을 당해도 태연하게 다른 사람처럼 굴어라라는 일종의 기대와 시선 또한 혐오의 또 다른 폭력이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지 않는, 조금만 달라도 틀린 것으로 간주되며 배제되는 이들이 자신이 인정받기를 원하는지 이유를 댈 의무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언제나 혐오를 받는 입장에서만 인정을 받기 위한 이유와 근거를 주장하고 너무나 손쉽게 그러한 이유를 묵살한다. 그들이 그러한 이유를 댈 의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즉, 혐오는 상상력의 부족이다. 사회적 약자라는 시선 속에 가둬버리고 고정된 이미지로 남도록 하는 그 이상의 것을 더는 알려고 하지도 않는, 상상력의 부족 그리고 다른 사람은 다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구조적 멸시에 이은 비가시적인 상상력의 부족은 혐오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임을 저자는 말한다.
혐오의 시대에서 필요한 것은 혐오의 구조를 명확하게 바라보는 것, 이미 덮인 혐오의 프레임을 넘어 상상하는 것, 그들이 받은 모욕을 침묵하도록 은근한 압박을 하지 않는 것, 혐오의 시스템에서 나를 용인하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것, 인간 혐오를 혐오로 인식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림으로 새로운 희망의 장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