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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의 역사 -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작가는 오랜동안의 방랑을 끝내고 규칙적인 루틴으로 하루를 여는 자신의 아침일과에 대한 묘사로 책의 서두를 연다. 일찍 일어나 셔츠를 다림질하고 자가용에서 기차로 갈어타며 런던의 직장을 향하는 매일의 반복에 작가는 즐거워한다. 나로서는 세상 어디든 사람사는 건 비슷하다고 느끼면서도 출근시간을 즐기는 작가가 다소 놀랍기도 하다.
집과 직장을 이어주는 길에서의 시간, 통근은 문명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책은 산업혁명이 시작될 때의 영국에서부터 통근의 역사를 되짚어나간다. 지붕이 없는 객차로 런던 인근을 이어주던 원시적인 철도는 시민의 활동범위를 넓혀주었다. 직장과 집의 분리가 가능해지면서 교외의 안락한 주거지구의 출현을 불러왔고, 도시는 확장되어 거대해졌다. 이같은 패턴은 산업혁명이 촉발된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특히 미국은 광대한 영토와 부유함과 특유의 자유로운 사상 덕분에 철도보다 자동차 문화가 발달되어 현재의 미국적인 라이프스타일이 만들어졌다.
꼼꼼한 작가는 출퇴근의 역사 뿐만 아니라 운송수단의 발달로 출퇴근을 '당하는' 인간에게도 주목한다. 앞서 말했듯 먹고사니즘에 지친 많은 이들이 작가처럼 출근을 그리 달가워하진 않는다. 자동차로 막히는 흐름 앞에서, 보기싫은 상사와의 대면을 상상 앞에서, 열차 앞으로 뛰어드는 자살자에 대한 기억 앞에서 분노하고 슬퍼하며 길 위에 서있는 이들의 심리에 대해서도 세계 곳곳의 예시를 들어가며 학구적으로 파고드려 한다.
하지만 본 책은 제목이 주는 이끌림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직장으로 향하고 집으로 향하는 반복적인 행동이 우리 일상에서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답을 너무 철학적으로 기대했던 것일까. 엄밀히 말하면 책의 내용은 운송수단의 발달과 도시의 확장의 연관관계에 가깝다. 오히려 내가 찾는 출퇴근의 본질은 예전에 읽었던 로알드 달의 글에 담겨있었던 것 같다. 통근열차에서 어릴적 자신을 괴롭히던 일진과의 만남으로 평화로운 일상이 깨지며 전전긍긍하던 소시민의 심리를 그렸던 단편소설 말이다.
즉흥적이고 모호한 소재가 키워드가 된 잡학책이 가진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재치있고 풍부한 묘사가 곁들어진 작가의 문장에도 불구하고 통찰과 일관된 주장이 결여된 글의 나열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마치 동일한 주제로 연재되는 칼럼을 퇴고없이 이어붙인 책을 읽는 기분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