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골짜기 김원일 소설전집 4
김원일 지음 / 강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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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골짜기'는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기반으로 한 문학이다. 한국전쟁 당시 거창은 빨치산이 우세한 지역이었다. 주민의 정서가 좌익으로 기울어서였다기보다는 고립된 지형과 남로당의 본거지였던 지리산과 이어진 산세 덕분이었다. 낮에는 경찰이, 밤에는 빨치산이 번갈아가는 기묘한 통치는 전쟁 전부터 이어지다 전쟁이 나면서 극심해졌다.  

결국 전방의 군대가 후방의 빨치산 토벌로 돌려졌고, 적의 활동범위를 초토화하는 청야전술이라는 명목하에 주민을 학살하는 비극이 벌어진게 1951년 2월이었다. 반공이 지상의 최대목표였던 당시에도 논란이 되었던 사건이다. 아무리 적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곤 하지만, 무장한 게릴라가 아닌 같은 국적의 양민을 700명 가까이 살해했으니 말이다.  

소설은 아마도 가공의 인물로 보이는 형제의 눈으로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 나간다. 시대는 시골의 무지렁이 농부였던 한만봉과 한만득을 놔두지 않는다. 한만득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입산해 겨울의 산을 달린다. 한만봉은 밀물과 썰물처럼 좌우가 바뀌는 고향에 남아 살아남기에 분투한다. 형제뿐만이 아니다. 형제의 눈으로 바라보는 소설의 모든 인물들은 무력하다. 가공할 압력에 쫓겨 냉혹해지고 무력해지고 비겁해진다. 심지어 강철같던 빨치산의 송대장도 그렇다.  

빨치산의 행태를 자세히 보여준다. 그러나 같은 소재를 다뤘던 타 소설과는 약간 다르다. 무정부주의자의 이상향처럼 그려졌던 '지리산'이나 동정적이고 심지어 영웅적으로 쓰여졌던 '태백산맥'과는 달리 '겨울 골짜기'의 빨치산에는 이념이 실종되어있다. 이념이라는 강력한 동기로 뭉쳐있지만 마오쩌둥의 게릴라에서 따온 원칙들은 궁지에 몰리면서 하나둘씩 지켜지지 않는다. 또한 조직을 통솔하기 위해 불가능한 승리로 치장된 헛된 희망과 그저 육체적으로 빡시게 굴리는, 군필자에게는 익숙한 방법이 쓰인다. 이를 통해 빨치산이 이상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반대편과 다를 바 없는 무력조직이었음을 암시한다. 

물론 본 소설이 사상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작가는 거대담론에 굉장한 회의를 품은 것이라고 나는 받아들였다. 이념이라는 명목 하에 인간은 인간에게 못할 짓을 너무 많이 했다. 물론 학살이 임박한 가운데 한만봉의 처가 아이를 낳고, 군인들도 자비를 베풀며 기적이 만들어진다. 그들도 개인으로는 가족이 있고 자비와 동정심을 가진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알린다.  

누군가는 여기에서 희망을 얻는 모양이지만 나는 그래서 더욱 참담했다. 가장 고귀한 가치라던 휴머니즘은 상황에 따라 간단히 짓밟힐 수 있다. 참으로 미친 세상이었다. 유달리 추웠던 겨울을 벗어나는 자락에 '겨울 골짜기'를 읽으며 소름끼친 것은 소설의 배경인 계절 뿐만 아니라 그런 광기와 적의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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