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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화자의 할아버지가 일제 징용으로부터 가지고 온 사진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예술적 목적으로 찍은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한 어린 서양 소녀의 알몸 사진은 화자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으로 들어가는 일종의 열쇠로 작용한다. 또한 반정부 운동의 일환으로 파견된 암스테르담에서 발견한 비디오 테잎 속의 남성의 독백 역시 소녀의 사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
물건으로 과거를 짚어나가는 방식은 직전에 읽은 '원더보이'의 사이코메트리를 연상케 한다. 과거를 살았던 사람과의 대화가 아니라 그가 가졌던 물품이나 그에 대한 기록을 토대로 퍼즐을 맞춰나간다. 이러한 태도는 내가 역시나 '원더보이'를 읽어나가며 문득 떠올렸던 인간의 본능,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빈 구석을 허구로 채워나가며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6월 항쟁이 노태우의 집권으로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 좌절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화자의 경험이 거듭될수록 확장된다. 일제 식민지 아래서 살았던 할아버지 대부터 액자 소설의 형식에서 또다른 주인공으로 행세하는 강시우의 파란만장한 삶, 거기에 홀로코스트부터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이어지는 이국의 역사들. 많은 조각들은 정교하거나 두서없게 이어지며 전개된다.
혼란할수록 메시지를 읽어내려 노력하는 독자의 특성상, 김연수의 본 소설은 많은 해석과 감흥을 만들어낼 것이다. 내 경우에는 표지의 소개가 맞다면 작가 또래이며 작가의 사고와 경험이 재배치된 인물들의 이야기는 20세기와의 결별이라 읽었다. 한국사에서 20세기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국가와 이념을 위해서 개인은 없었다. 오히려 대의를 위해 개인이 몸바치는 행동이 좌우 모두에게 영웅시되었던 당시는 돌이켜보면 참 야만적인 시대였다고 느껴진다.
이러저러한 상념을 정리되지 않은 형태로 주절대고 싶지 않다. 작품의 메시지라고 믿는 극 중의 글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무엇보다도 네가 선출한 지도자에게는 맡기지 말라. 자기 자신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