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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탐정 ㅣ 버티고 시리즈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윤철희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12월
평점 :
소설은 소년이 순식간에 실종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여자친구의 어린 아들을 잃어버린 주인공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반드시 자기 손으로 찾아올 것을 맹세한다. 물론 주인공의 이력은 범상치 않다. 특수부대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수차례 훈장을 받은 전쟁영웅이면서 살인기계로 훈련받은 과거를 가지고 있다.
가족애를 토대로 한 정의감에 불타는 건장한 백인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스릴러의 전형적인 설정이다. 뒷표지의 극찬에 반하는 뻔한 도입부에 기대가 급격히 사그라드는 와중에 흥미로운 장면이 있다. 주인공이 같은 동네에 사는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와 아는 척을 하는 부분인데, 그 남자가 해리 보슈 시리즈의 주인공과 판박이다. 물론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묘사되는 외모와 주거환경은 누가봐도 해리 보슈다. 낯선 작품에서 좋아하는 캐릭터의 등장은 흥분감을 안겨준다. 과연 의미심장한 복선일지, 마이클 코넬리에 대한 단순한 오마주일지.
그러나 소설은 그저 그렇다. 냉정히 말하면 읽다가 구석에 처박히지 않을 정도의 재미다. 스토리의 밀도도 그렇고 특별한 반전이 없다는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명확한 캐릭터가 없다. 앞서 많은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본 작품이 시리즈임을 밝히는데, 매력이 전무하니 찾아볼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더구나 원문이 그런건지 아니면 번역의 문제인지 문장이 딱딱하고 연결이 부자연스럽다. 때문에 글을 읽으며 머릿 속에 장면이 즉각 정렬되지 않는다.
작가의 명성에 비해 실망스러운 작품이다. 로버트 크레이스는 독서스케줄에서 잠시 접어둬야겠다. 오히려 잠깐 등장한 해리 보슈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