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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집
기시 유스케 지음 / 창해 / 2004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사실 본 소설을 영상화한 동명의 영화를 예전에 봤기에 대략적인 내용을 알고 책을 펼쳤다. 나는 스포일러를 당하는 데에 별로 신경을 안쓰는 타입이기도 하다. 반전을 알고 있더라도 좋은 스토리라면 클라이막스로 향하는 전개를 또 새롭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처럼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검은 집'은 그렇지 않다. 또한 반전이라고 하기에도 웃긴 범인의 정체도 중간에서 드러난다. 장르소설에 단련된 독자라면 대번에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다. 범인의 정체가 드러남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소설의 방향은 무엇일까. 사이코패스로 주변인물들을 상해입히고 죽이며 보험금을 타먹는 여인은 스토리의 기둥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를 악몽으로 그려내기에는 깊이가 모자라다.
후반이 되면 아예 스플래셔 무비로 둔갑한다. 중년의 여인은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마냥 칼을 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사람들을 살해하고 납치하는 괴력을 뽐낸다. 아예 정체를 까발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주인공과 대치하는 씬에서는 실소가 나오기도 한다. 아무리 미친 아줌마라고 해도 성인남자들을 연달아 해치우는 설정은 무리수 아닌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소설 하나를 읽다가 접었고, 기시 유스케 역시 실망스럽다. 아무래도 일본 스릴러문학은 나와 맞지 않는 듯하다. 끊김없는 가독성 위주로 쓰여진 단선적인 줄거리와 평면적인 인물과 심리묘사는 내가 접했던 일본 스릴러들의 공통점이었다. 감정이 메마른 인간형이 내뿜는 서늘함을 접하고 싶다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들을 한번 더 읽는 것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