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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존 쿳시 지음, 조규형 옮김 / 책세상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수전 바턴은 딸을 찾아 브라질로 왔다가 선상반란으로 이름모를 섬에 표류된다. 구사일생한 수전은 흑인을 만나고 그의 주인인 봉두난발의 백인과 마주친다. 익숙한 '로빈슨 크루소'의 서사에 예정에 없던 여인이 끼어들게 된 전말이다. 이야기는 평행우주의 다른 곳으로 흐른다. 본래 프라이데이와 유럽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냈을 크루소는 구조선에서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다. 크루소의 자리는 수전이 채우게 되었다.
'로빈슨 크루소'를 현대의 시각으로 다시 썼다는 점에서 미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을 떠올렸다. 야성으로 한없이 침잠하던 재해석된 크루소에 집중했던 투르니에와는 달리 쿳시의 소설에는 크루소가 없다. 구조되어 영국으로 온 낯선 조합의 두 남녀가 있을 뿐이다. 백인여성과 흑인남성. 16세기의 영국에서 이들은 대단히 낯선 조합의 커플이었다. 다만 커플이라 함은 둘이 가까이 있는 모양만을 말하는 것이다. 프라이데이는 크루소를 잃었음에도 여전히 노예상태에 놓여있기에 인간보다는 가축에 가깝게 묘사된다.
'로빈슨 크루소'의 작가 대니얼 디포에서 따온 '포'에게 수전이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은 희미하고 무기력하다. 끝내 찾지 못했던 딸이 눈 앞에 나타나는 부분에 이르면 생활고와 주변의 질시 때문에 미쳐버린게 아닐까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러나 읽을수록 소설의 의도는 명확해진다. 혀가 잘리고 거세되고 짐승으로 전락한 프라이데이와 경제적 자립이 불가능한 여성과 프라이데이를 감당못하는 무기력한 지배자의 지위를 동시에 떠맡은 수전의 행적을 보며 '로빈슨 크루소'를 되짚게 된다.
원전의 로빈슨 크루소는 서구의 가치가 응축된 상징이다.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한 사고체계를 가지고 야생의 자연과 맹렬히 싸워나간 투사이며, 한편으론 항상 기도하며 나태함을 경계했던 독실한 기독교도였다. 좁은 구세계를 떠나 신대륙과 아시아로 왕성히 뻗어나가던 서구인의 특질을 고스란히 투영시킨 디포의 소설은 일종의 선동이며 자기확신이었다.
'포'를 근대의 이성주의를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일환이라 보면 될까. 더 나아가 작가의 프로필을 가져와보자. 아파르트헤이트를 고수했던 남아공에서 그가 자라며 목격했을 그림을 상상해보면 글의 시작과 끝을 능히 가늠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