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이야 ㅣ 두고두고 보고 싶은 그림책 59
미로코 마치코 지음, 김소연 옮김 / 길벗어린이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한옥에서 나고 자랐다.

매일 아침이면 엄마는 장독대와 텃밭을 오가며

싱싱한 채소로 만든 반찬을 차려 주셨고,

아빠는 정원의 꽃과 나무에 물을 주셨다.

헝클어진 머리로 부스스 일어난 나는

내복바람에 발을 서로 부비며

​햇살이 비추는 마루에 서있곤 했다.


때로는 엄마와 함께 솔을 뜯기도 했고,

때로는 아빠와 함께 화분에 씨앗을 심기도 했다.

비오는 날이면 화단에서 기어 나온 지렁이들을 따라다녔고,

눈오는 날이면 감나무 밑에 들어가 강아지와 함께 눈을 맞았다.

철마다 피는 꽃들과

계절마다 맺는 열매들을 보며 자란 나는

지금도 가끔 친정에 가서 그 시간을 살고 온다.


미로코 마치코의 '흙이야'는​

태초의 혹은 원시적인 시간을 담은 책이다.

어쩌면 상투적이고

어쩌면 상업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가장 적당한 말일 듯 하다.

강렬한 원색,

거친 붓 터치,  

직관적인 표현.

처음에는 흙의 일생을 다루는가 싶지만

중반 이후로는 오래된 시간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모두 흙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의미심장하기까지 하다.

그 문장으로 우리의 시작을 생각하게 한다.

잊었을 혹은 잊혀진 그 때를 말이다.

내가 책장을 덮고 어린 시절이 떠올랐던 건 우연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

자기 책인 줄 알고 얼른 책을 들고 소파로 달려가

오빠와 함께 책을 훑어본 딸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다섯 살 눈에 분명하고 화려한 색감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했는데

책장을 넘기다 만다.

읽어달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상하다.


- 왜 그래?


- 이 책 싫어


-응?


- 무서워. 싫어.


책상 위에 올려두니, 서성이다 다시 읽는다.


- 엄마, 흙이 울다 자.


공룡들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 있는 흙을 보더니

괴물 때문이라며 심각하다.


- 엄마 바람이 쌩쌩 불겠어. 다 숨어버렸나봐.

​

- 뭐가 뭔지 모르겠어. 근데 나도 그릴 수 있겠다. 이건.


아들도 와서 한 마디 거든다.

아이들에게는 어려웠을까?

단순히 흙의 이야기로 보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직 자신의 생각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생각의 다양성을 열어주고 있음은 분명한 것 같다.

햇빛이 비추면서 시작된 흙과 생명의 시작에 대한

다양한 아이들의 해석과 생각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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