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아직 자고 있는 아들과 딸에게 옷을 입혀 시댁으로 향한다.
아이들 등원시간은 9시 30분이지만
나는 8시 30분까지 출근을 마쳐야 한다.
더욱이 올해는 직장(학교)까지의 거리가 더 멀어져서
7시에는 시댁에 도착해야
8시 30분 이전에 출근할 수 있다.
아들이 곤한 잠을 깬 것이 속상했는지
운다.
딸도 우는 오빠 소리에 눈을 뜨고는
운다.
그냥.
카시트에 두 녀석을 태우고
시댁에 도착했다.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 어머니께 아이 둘을 맡긴다.
현관을 나서는데
아들이 또 운다.
"엄마 미워.."
두 번 돌아볼 새도 없이 학교로 향한다.
가는 내내 아들의 말이 들린다.
'엄마 미워...'
이러다 늦겠다.
학교에서는 집에서의 일을 생각할 겨를 없이 바쁜 하루가 이어진다.
매 교시 수업이 이어지고, 회의에, 업무에
정신 차리고 보면 퇴근 시간이다.
집에 있는 두 녀석만을 위해 엄마로서만 살자니
학교에 있는 스물 한 녀석에게 미안할 것 같고,
학교에 있는 스물 한 녀석을 위해 나로서만 살자니
집에 있는 두 녀석에게 미안할 것 같아
여전히 나는 두 갈래 길에 서 있는 직장맘이다.
그런 내가, 어느 날 아이들을 두고 간다면 어떻게 될까?
떠난 엄마, 혹은 가족 누군가를 그리는 동화는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엄마가 유령이' 된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떠난 자의 걱정에 대한 이야기인 '엄마가 유령이 되었어!'는
예상과 달리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극복이 아닌
- 아들 건이의 입장에서 엄마가 유령이 된것이 아닌 -
떠난 자의 걱정
- 엄마 입장에서의 '건아, 엄마(내)가 유령이 되었어!'-
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