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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ㅣ 창비청소년문학 122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평점 :
혁이 다섯 살 때, 형은 죽었다.
기억에도 없던 형이 다시 떠오른 건,
형이 다니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엄마는 혁이 교복을 입던 날, 울었다.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학교였지만,
혁에게 진의 학교를 다닌다는 건
모든 것의 '열쇠'가 되었다.
혁은 형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는지 알고 싶었다.
형의 친구를 만나고,
엄마가 차곡차곡 모아놓은 형의 흔적들을 되살려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눈다.
그러다
형의 집만들기 메타버스 '가우디'에 접속하게 되고,
그곳에서 '곰솔'을 만나게 된다.
형이 죽고 없는 4000여일 동안
곰솔은 형의 공간을 살뜰히 살피고 있었다.
정원을 가꾸고,
그림을 걸고,
형의 집이,
형의 기억이 온전할 수 있도록 관리해온 곰솔은 대체 누구일까?
혁은 곰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을 기억하고,
곰솔 역시
진을 추억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혁은 곰솔에게
귤을 건넨다.
더 이상은 마음이 시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러고는
진이 되어 말한다.
"몰랐지. 사실 여름 귤도 되게 맛있다."
떠나고 곁에 없지만
한 사람을
아프지 않게 마음에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받아들일 새도 없이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
미룰 수도 없이 계속 나아가야만 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곰솔에게 진은 놓을 수 없는, 놓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을테니까.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립지 않은 것은 아닐테니
혁에게도 형의 부재는 채워지지 않는 조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 다른 시간과 서로 다른 공간에 있었지만
같은 그리움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상상,
잃었지만 잊지 않으리라는 위로와 응원이
귤빛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책
쓸쓸하게 깊어지는 가을 저녁 빛과 함께 읽기에 좋을 것 같다.
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