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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ㅣ 사계절 동시집 19
박혜선 지음, 백두리 그림 / 사계절 / 2021년 2월
평점 :
백일장 대회에 나가면
운문보다는 산문에 올인하던 나로서는
시는 어려운 것이었다.
수학처럼 계산적이어야 했고,
기호학자처럼 치밀해야 했다.
글자수와 운율을 맞추어야 했고,
그 너머에 있는 감성까지도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했다.
때로는 모호해야 했고,
때로는 분명해야 했다.
아롱다롱한 말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
고운 마음이 남아야 할 것만 같았다.
어린이의 마음은 응당 예쁘게 포장되어 있어야만 할 것 같아 답답했다.
시는 아름다웠지만
어려웠다.
아직도 그런 시를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해두고 싶다.
요즘 나오는 동시들은 그렇지 않다.
아롱다롱 하기 보다 오히려 그로테스크 하고, 직설적이다.
어린이의 마음을 포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낸다.
그래서 재미있고, 그래서 유쾌하다.
어떻게 어린이가 이런 발칙한 생각을 했을까?
어쩜 이렇게 솔직하게 적었을까?
나만의 경험 한 줄이 있는 그 한 행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는 무릎을 탁 치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바람까지도(!) 사춘기를 앓고 있는 이 시집에서 화자는
'무슨 걱정 있냐고 묻는 엄마 앞에서 / 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거짓말해서 / 정말 정말 미안'하다고
나에게 사과하기도 하고, (p.16 나에게 사과하기)
'불쑥불쑥 나타나는 너' 때문에 관계자 외 출입금지를 외치기도 하며, (18p.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겨진 마음을 다'리기 위해 세탁소(가 아닌 노래방)에 간다. (30 p. 나는 세탁소에 간다)
'학원 버스 기다리며 /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p. 36 첫눈 내린다)
화면 속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노출된 일상에 재미를 느끼며 (p.39 1교시 수업이 시작된다)
평범한 학생으로 사는 듯도 보이지만
'노란 리본이 달린 그 가방과 함께'하는 누나의 모습과 (p.44 함께)
장수로, 하사키로, 비딸리로 불리다 결국 '사할린 땅에 묻'힌 어떤 무덤, (p.86 어떤 무덤)
'일본에게 미안하다는 한마디 듣고/ 돌아가려고/ 아직도 걷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의 꽃이 피는 시기를 맞이한,
이제 세상을 향해 열기 시작한
나의 눈과 귀와 생각을 펼쳐둔다.
짧지만 생각할 이야기들이 가득한 '바람의 사춘기'
책 읽을 시간 없다는 아이들도
시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잠깐이면 충분히
화자의 세계로
나의 세계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