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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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인류세'라고 부른다. 돌이켜보면 인간이 지구 생태계와 인간 스스로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인간은 화석 연료를 지속적으로 사용하여 대기의 CO2농도에 변화를 일으켰고, 거대한 숲을 벌목하고, 갯벌을 매립지로 바꾸어 왔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하는 것처럼 신항로를 개척하고 무역을 하며, 식민지를 만들고 정복 활동을 하는 동안 다양한 식물을 운반했다. 지금이야 식물을 안전하고 건강한 상태로 운반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술들과 방법들이 존재하겠지만 몇 백 년 전만 하더라도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식물 운반의 역사 속엔 워디언 케이스라는 위대한 발명품이 있었다. 이 책은 워디언 케이스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한 세기 가량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워디언 케이스를 간단히 표현하자면 '밀폐된 유리상자' 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이야 비행기를 타고 이동할 수 있지만 몇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장거리 이동은 바다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바다 위에서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배를 떠올려 보자. 배의 어느 한편에 놓여 있을 식물은 짠 바닷물을 견뎌야 한다. 조류의 변화가 심하고 강풍이라도 부는 날에는 식물의 잎이 온전히 남아있기도 힘들다. 바다 위에서 긴 항해가 시작되면 가장 귀한 것은 신선한 물이다. 사람 역시 아껴 써야할 물을 매번 식물에게 양보하기도 힘들다. 직접적인 관리가 힘들어서 배의 안쪽 구석에 식물을 그대로 놓아둔다면 광합성을 하지 못하고 죽어간다. 이렇게 식물은 여러모로 운송하기 까다로운 존재였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한 웨디언 케이스는 식물의 운반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밀폐된 상자를 활용하니 바람과 바닷물로부터 식물을 보호할 수 있었다. 유리 뚜껑을 씌워 햇빛을 충분히 공급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식물의 잎을 통해서 증발하는 수분이 외부로 빠져 나가지 않고 유리 벽에 맺혀서 오랜 시간 물을 주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했다. 식물이 보호받고 자랄 수 있는 작은 온실 환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렇게 다른 시대의 생활상과 문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 색다른 시대의 분위기와 삶을 엿보는 것은 안개로 덮혀 있던 미지의 영역을 밝히는 작업이다. 우리 시대를 벗어나는 지적인 항해가 매력적인 책이다.

유럽에서는 계몽주의 이후로 식물의 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자연 철학의 사조가 대두되어 새로운 대상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를 자극했다. 바다 건너에 살고 있는 식물들 역시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식물의 이동은 여러가지 의도와 목적에 의해서 일어났다. 순수한 실험과 채집의 용도, 심미적인 만족을 위한 관상용, 의료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부를 축적하려는 목적으로 식민지에서 대규모로 재배하기 위해서 등등, 발없은 식물은 그렇게 인간에 의해 국경과 바다를 건너고 정착했다. 워디언 케이스에 담겨서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시대적인 변화와 흐름 속에서 식물의 이동을 고찰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식물에 대한 관심으로 책을 펼쳤을지 몰라도 점점 세계사의 흐름과 인간사에 덩쿨처럼 얽혀 있는 식물의 모습을 연결시켜 발견할 수 있다. 상당히 매력적인 작업이다.

혹자는 '식물의 이동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식물이 미치는 영향은 분명하고 거대하다. 인간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들을 논할 때 식물을 뺄 수 있을까? 우리가 가까이두고 즐기는 관상용 외에도, 섬유 산업, 의료, 식품 등에 걸쳐서 식물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식물의 이동으로 인한 특정 지역의 식물 분포도 변화, 지역 특산품의 수요와 공급량 변화, 그것을 재배하기 위한 대량의 인구 이동, 의학, 박물학,식물학 연구의 발전 등등 이루 논할 수 없을만큼 많은 변화들이 식물의 운반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리고 우리는 난초를 감상하고, 캐번디시 바나나를 먹으며, 차와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 누적된 변화 혜택도 함께 맛보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 19로 인해서 닫혔던 국경의 문이 다시 열리고 있다. 팬데믹 현상을 경험하는 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막히고 차단되는 경험을 통해서 사람의 이동의 변화가 일으키는 전 지구적인 현상을 우리는 알게 된다. 식물의 운반 역시 그랬다. 워디언 케이스의 발명과 개량으로 식물이 보다 안전하게 운반되는 동안 인간의 삶은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의사이자 아마추어 박물학자였던 너새니얼 백쇼 워드가 만든 유리 상자가 가져온 다양한 변화와 역사적인 현상들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놓치지 말자. 식물의 운반과 전파에 얽힌 저자의 박식한 큐레이션을 받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펴야 한다. 더불어 멋진 그림들과 사진 그리고 지도가 책의 배경이 되는 시대의 분위기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이끈다. 이 책을 통해서 유럽에서 정원문화가 부흥하고 이색적인 식물들을 키우며 종묘원이 설립되던 시대로 함께 들어가 보자.


- 컬처블룸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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