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단순한 제주도 여행기나 제주도 한 달 살기에 대한 기록이 아닙니다. 방송사의 PD로서 활동했던 송일준 작가와 이민 화백과의 콜로보로 탄생한 한 편의 예술입니다. 누군가는 인기있는 국내 여행지인 제주도에 대한 이색적인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 책을 펼쳤더라도, 유려한 글솜씨와 더불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제주도 풍경이 담긴 아름다운 그림들에 마음이 녹아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읽어가게 되는 작품입니다.
여행지를 그냥 한 번 가본 것과 그곳에서 살아 본 경험은 정말 다릅니다. 잠깐의 여행이 머뭄이 되고 머뭄이 쌓여서 일상의 생활이 될 때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사물들이 다시 말을 걸어오는 경험을 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놓쳤던 풍경들이 다시 보이고, 무관심하게 지나쳐야했던 기억과 사실들이 떠올라 대상과 얽히며 새롭운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런 '새롭게 떠오르기'를 맞이할 수 있는 순간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감동적인 체험입니다.
송일준 작가는 바로 그런 순간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포착하고 제주도 여행의 수기 속에서 잘 녹여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깐의 여행 속에서 제주도의 4.3 사건을 굳이 떠올리며 기억해 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육지 사람들에게 다소 폐쇄적인 제주도 문화를 보면서 제주도 도민들의 무의식에 뿌리 내린 역사적 아픔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글에 담긴 작가의 마음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렇다고 제주도 여행기를 마냥 진지하고 무겁게 써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어떤 음식점의 특색, 판매하는 메뉴들의 가격, 맛집에 얽힌 스토리, 탐방시 예약의 필요 유무, 관광객들이 좋아할만한 코스 같은 시시콜콜한 정보들도 담겨 있으니까요. 신나는 마음으로 제주도 이곳 저곳을 탐방하는 여행객의 마음과 체험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더해서 발길이 닿는 장소에, 작가가 가진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이 더해져서 미쳐 몰랐던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버무려져 나옵니다. '뱀조심' 푯말이 많은 제주도, 뱀이 살기에 좋은 제주도의 고온 다습한 환경, 뱀신에 관한 민간 신앙과 천주교 세력과의 갈등 그리고 그로 인한 역사적 스토리까지 이런 내용들을 한 줄에 엮어서 넉넉한 이야기 마당이 펼쳐집니다.
덕분에 제주도에 얽힌 많은 내용들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국내의 유명 여행지로서도 매력적이지만, 제주도에 얽힌 이야기들이 이렇게나 다양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 도시 재생과 제주도에서의 예술가들의 활동, 제주도에 머물렀던 화가 이중섭의 이야기, 객과 주민 사이에서의 시선, 삶의 여유와 감성을 어루만지는 아름다운 제주도 풍경화까지 만나다보면 제주도에 대한 향수병이 돋아납니다. 이러다가 제주도 앓이에 빠지겠습니다.
제주도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 혹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기획하는 분들을 위한 알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는 책입니다. 동시에 제주도의 이곳 저곳을 주제로 한 아름다운 그림들과 제주도에 얽혀 있는 신화적, 지리적, 역사적 인문학이 생생하게 담긴 책입니다. 바다 건너 육지에서 찾아오는 여행객들 뿐만 아니라 제주도 도민들도 자신의 지역을 생각하며 좋아할 글과 그림이 담긴 작품입니다. 제주도 앓이에 빠지길 원하는 분들이라면 "제주도 랩소디"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독자로 하여금 마음을 이렇게 설레게 만드는 걸 보니, 제주도에서 작가들에게 공식적으로 판촉비라도 줘야할 듯하네요. 제주도 여행에 대한 한 편의 아름다운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