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를 생각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 헬레니즘, 고대 그리스 철학, 신화와 같은 주제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고대 그리스는 서양 문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동안 제가 알고 있었던 고대 그리스는 그 당시의 전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세계사에 등장하는 지식의 일부, 고대 그리스 문학에 대한 지식 조금 그리고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같은 철학자들과 그들의 지식 조금이 마주잡이로 섞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보자마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제가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부류의 책이었으니까요. 저자는 지루하게 고대 그리스에 대한 역사나 사건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다만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사를 1년이라는 시간동안 보여주는 것에 집중합니다. 왕과 같은 유명 인물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사건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살았던 일반적인 사람들의 풍습과 생활사를 알 수 있어서 기존의 책들과는 색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은 기원전 248년입니다. 그러니까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이 끝나고 2세대 정도가 이미 흘렀습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인들의 중요한 관심사이자 행사였던 올림피아 제전을 1년 앞둔 시점이기도 합니다. 저자가 등장시키는 사람들은 여러 고고학적 증거들을 토대로 세세하게 그려진 8명의 인물입니다. 농부, 외교관, 노예, 달리기 선수, 어린 신부, 건축가, 상인, 리라 악기 연주자가 그 주인공인데요, 실제로 그들이 겪었을 삶의 풍경을 소설화하여 재미있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노예 소녀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긴장감 넘치는 단편 소설을 읽는 듯했고, 또 노예제를 유지하던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적나라한 측면들을 여과없이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더군요.
이 책의 장점은 이렇게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생활 모습, 역사적 사실 등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령 왜 1월이 아닌 10월부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지, 단거리 달리기 선수는 당시 어느 정도의 대우를 받았는지, 이집트 전통 신인 오시리스와 아피스가 합쳐져서 탄생한 '세라피스'는 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서 숭배되었는지, 여성이 몸에 문신을 새기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고대 그리스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배우자를 선택할 때 외모를 중요시했는지 집안 배경을 중요시했는지 등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중요한 역사적 사실까지 의미있는 생활사와 구체적 사실들을 잘 녹여서 전달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 어느 시대에서나 비슷하구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지금 제가 살아가는 모습과 상당히 다른 면들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같은 인간이기도 하고 다른 인간이기도 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인물들을 만나며 문화의 다양성과 풍부한 역사적 발견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생한 생활사를 이해하고 교양을 쌓길 원한다면 또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습니다. 각각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담은, 재미있는 소설로 읽기로도 좋습니다. 어떤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든지 간에, 고대 그리스 시대 속으로 깊숙하게 빠질 수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알지 못했던 흥미로운 고대 그리스를 새롭게 만나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