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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 : 구동 편 - 종족, 계급, 전투 ㅣ 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
티머시 힉슨 지음, 방진이 옮김 / 다른 / 2022년 6월
평점 :
"작가를 위한 세계관 구축법"은 구동편과 생성편으로 나뉘어 있는데, 이 책은 구동편을 다룬다. 작가들이 스토리를 만들고 생동감을 입히려 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내용들을 저자인 티머시 힉슨이 분석하고 정리했다. 그러니까 스토리를 구성할 때 필수적으로 필요한 '전투, 종족, 계급' 을 맛깔나게 써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용 참고서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물론이고, 잘되는 게임이나 영화을 보면 그 배경엔 항상 방대하고도 생생한 스토리가 있다. 그리고 이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작가들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책에선 총 4파트, '시련과 성장, 캐릭터와 관점, 종족과 역사, 계급과 구조'로 나누어서 스토리를 풍성하게 만드는 좋은 소스들과 아이디어들을 전달한다.
이 책, 일단 재밌다.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분석한 책들을 훑어보면, 롤링의 해리 포터 시리즈, 톨킨의 반지의 제왕 시리즈, 크라우치의 암흑 물질, 스티븐 킹의 샤이닝, 앨마 카츠의 더 헝거, 마지막 제국, 얼음과 불의 노래 등등 주옥 같은 작품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한 문장, 한 문장을 꼼꼼하게 읽고 분석한 것이 느껴진다. 이런 유명한 작품들에서 각 캐릭터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어떻게 생동감을 살리는지, 독자들을 어떻게 몰입시키는지를 다양한 예시를 통해 보여준다. 당장 글을 쓰지 않더라도, 유명한 작가들이 글을 써내려 가는 방법을 분석하고 배울 수 있어서 좋다.
저자인 힉슨은 스토리를 만들면서 스스로 던졌던 고민들을 독자와 대화하듯이 설명해간다. 이를테면 그의 경험상 전투 장면을 구성할 때 뼈대를 만드는 거시적 관점을 조언하는 책들은 많다. 그런데 세부적인 흐름, 문장 하나가 중요한 전투 장면을 설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힉슨은 미시적 관점부터 설명하는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기분이다.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언은 두리뭉실하지 않으며, 구체적이고 상세하다. 사실 이런 걸 원했다. 예를 들어, 싸움 장면에서 인과관계를 만들면 독자들은 한 동사에서 다음 동사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연결되는 느낌을 자연스럽게 받게 된다고 힉슨은 말한다. "A는 적에게 발차기를 날렸고, 그다음에는 팔을 뻗었다. 왼쪽으로 피하며 팔꿈치를 꺾어서 적의 턱에 꽂았다."는 문장에서는 인과관계를 느낄 수 없고 각 동작은 그 자체로 특별하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이것을 이렇게 바꿔보자. "A는 남자를 발로 차서 바닥에 쓰러뜨리고 주먹을 그의 가슴에 꽂았다. 남자는 주먹 아래에서 꿈틀거렸고 A는 남자가 마구 내지르는 공격을 피한 뒤 팔꿈치로 남자의 턱을 부쉈다. 남자는 줄이 끊긴 꼭두가시처럼 축 늘어졌다." 바꾸고 나니 훨씬 더 연결이 자연스러워 지는 걸 느낄 수 있고 뒤에 연결된 내용이 나올 것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더하여 힉슨은 다음과 같은 조언으로 마무리한다. '만약 동작 비트의 순서를 바꿨을 때 싸움 장면의 흐름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인과관계가 부족한 것이다.' 마지막까지 포인트까지 신경 쓴 생생한 조언이 마음에 든다.
스토리를 쓰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우리의 편견이나 습관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세계관을 구축하는 작가들은 사실주의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가상 세계의 세부사항들 간 논리적인 일관성에 대한 집착이 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힉슨은 그것이 최종 목표라거나 유일한 덕목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사실주의의 기능은 이야기 속의 덜 사실적인 부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최종 목표는 독자들을 몰입시키는 것에 있다고 충고한다. 우리에게 영화 "컨텍트"로도 알려진 테드 창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헵타포드라는 외계 종족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인간이 그들의 언어를 배우자 헵타포드와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Sapir-Whorf'가설에 근거한 설정엔데, 간단히 얘기하면 언어가 그 언어 사용자의 경험을 화학, 감각적 차원에서 바꿀 수 있다는 가설이다. 사실 이 가설은 과학적으로 논란거리다. 그럼에도 테드 창은 사실적인 언어학과 생물학 논의에 잘 섞어서 스토리가 끝날 쯤엔 사실과 허구 간 경계가 흐릿해지게 한다. 다시 말해 독자는 결말로 향할수록 작가의 다소 황당한 이론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스토리에 몰입하게 된다. 황당한 가설이라도 사실적 이론들 사이에 매끄럽게 엮었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 자체의 완벽한 사실주의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사실주의에 대한 집착적 부담은 좀 내려놓자.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은 작품들을 분석해보면 사실, 정답은 없다. 힉슨 역시 정답을 제시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유사성이나 공통점은 발견된다. "스파이더맨", "헐크"의 원작자이자 마블의 아버지인 스탠리는 이런 류의 말을 남겼다. '믿어 달라, 나는 의식적으로 신화적인 주제들을 삽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런 주제들이 내가 만든 내용들 속에 얽혀 있는 것더라.' 사실 이것은 주제 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뛰게 하고 사로잡는 주제, 이야기의 형식, 전개 방식 심지어 묘사 장면들은 먼 과거나 지금이나 유사성을 가진다. 과거에는 신화와 전설 속에서 반복되었고, 지금은 소설, 스크린 게임 시나리오, 만화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
글을 쓰다가 이 부분은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든다면 책을 펴보자. 막혀있던 생각의 통로를 열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대개 글을 쓰는 작업은 혼자서, 몰입하여, 파고드는 노동이기에, 일정한 생각의 한계에 갇히기도 쉽다. 그럴 때 나의 생각을 쉬게 하면서,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례들로부터 아이디어를 발견해보자. 각 장이 끝나는 시점에 '바쁜 작가들을 위한 n줄 요약'을 따로 마련하고 있으니 배운 내용을 다시 요약하고 점검하기도 좋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지망생이나 작가에게도 좋은 책이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소설이 어떤 방식으로 내 마음을 사로 잡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서, 일반 독자에게도 흥미로운 책임에 틀림없다.
-컬처블룸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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