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기억들의 방 - 우리 내면을 완성하는 기억과 뇌과학의 세계
베로니카 오킨 지음, 김병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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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일까요? 영혼은 현대 뇌과학의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기억은 '나'의 정체성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과거에 신경정신과를 돌던 친구와 철학과 신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성경을 비롯한 많은 종교 문헌에는 영적인 세계와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잖아. 그런데 만약 신을 본다거나, 영적인 현상과 존재에게 시달린다고 호소하는 환자들이 병원으로 찾아오면 의학적으로는 어떤 관점으로 그들을 대하냐?'고 말이죠. 친구의 대답은 복합적이었지만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약물 치료를 하면 영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라고 여겨졌던 증상들이 빠르게 사라지더라. 네가 즐겨 말하던 프로이트나 융은 구시대의 유물로 취급받는 분위기고, 이제는 약물이 많이 연구되어서 대부분 약물로 접근해. 음... 그래서 나는 영적인 존재가 일으키기에 영적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고, 물질적인 방법으로도 인식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역시 있다고 생각해.'

이 친구는 독실한 신앙을 바탕으로 의료선교를 준비하던 친구였는데요, 영혼과 자아를 연결시키던 신앙적 세계관과, 병원에서 환자들을 대하며 직접 경험한 사실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찾아보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개인의 신념이나 신앙은 어떤 형태로든 존중받아야 하지만, 오늘날의 자연과학은 뇌과학을 통해서 우리에게 점점 더 기존의 가치관이 만들어 온 장벽을 허무는 증거들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현대 뇌과학과 신경학의 관점에서, 기억과 우리의 자아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은 1, 2부로 나누어서 기억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이 어떻게 자아와 연결되는 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은 비물질적인 영혼 혹은 마음과 육체를 구분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지식은 감각 경험 이전의, 신이 비물질적으로 주신 선천적인 지식으로 얻어진다고 믿었죠.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영혼 혹은 마음을 정신적인 것과 연결시키려던 관점에서 점점 물리적인 두뇌 혹은 신체와 연결시키려는 경향이 생겨납니다. 마치 영적인 천사들이 하늘의 천체들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지구가 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듯이 마음의 문제도 더이상 피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인간은 세계를 감각을 통해서 지각합니다. 우리 혹은 나라는 존재도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인식하게 되죠. 오감에 도달한 외부의 정보들은 신경세포를 통해서 전기신호로 바뀌어 뇌로 전달됩니다. 만약 외부 대상이 없어서 감각 자극이 주어지지 않아도 인위적으로 두뇌 부위에 전기자극을 일으키면 우리는 환상을 보거나 환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펜필드라는 외과의는 이런 사실을 통해서 두뇌 속 신체 지도를 그리기도 했죠. 저자는 실제 환자 사례를 통해서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으니 놓치지 마시고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세계에 대한 내면화는 기억 네트워크에 영향을 주는 오감을 통해 형성되는데요, 들어오는 정보들은 단순한 감정에서 복잡한 느낌에 이르는 감각을 생성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기억의 본질을, 두뇌로 들어온 감각 정보들의 복잡한 신경적 표상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책을 재미있게 즐기시려면 편도체와 감정, 해마와 기억, 코르티솔 분비와 관련된 스트레스 시스템인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축 등 뇌의 각 부위와 영역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에 푹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 혹은 '자아'란 과연 무엇인지 의문을 던지면서 읽어보신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설명을 넘어서 실제 임상 사례나 역사적인 흐름과 엮어서 풀어내는 저자의 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 것입니다. 책을 읽어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뇌가 매우 다채롭고 복합적인 활동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우리는 감각 - 인식 과정과 기억, 뇌의 매커니즘 등을 의식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기에, 최신 뇌과학의 연구 사례와 축적된 지식들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이 책과 함께 보기 좋은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넷플릭스에서 다큐로 만들어진 "마음을 바꾸는 방법" 입니다. 유명 작가 마이클 폴란이 사이키델릭(환각제)을 다룬 책을 다큐로 다시 만든 것입니다. 이 다큐가 마음에 든다면 올더스 헉슬리의 "지각의 문"도 권해드리고 싶네요. 우리 의식의 다양성을 발견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이 책의 2부에서도 ASC(의식의 비정상적 상태)와 환각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저자는 의식의 고양 상태를 메타 의식과 연결해서 이야기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세계와 하나가 된다'는 관념은 평소 생활에서도 경험될 수 있고, 자신은 바다 수영을 하며 이런 초월경을 경험한다고 하네요. 저도 만물과의 일체 의식과 초월의 경험이 있어서 재미있게 두 작품 모두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를 풍성하게 이해하는 건 필히 타인과 세상에 대한 풍성한 이해로 이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평소 뇌과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께 이 책을 꼭 추천드리고 싶고, 의식, 자아에 대해서 현대 과학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궁금하신 분들께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컬처블룸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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