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여신 인안나 - INANNA, THE FIRST GODDESS
김산해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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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옥한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에서 일어난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 그리고 신화의 원형을 우리에게 전달해주었습니다. 사실 B.C. 4000년 전의 아주 먼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하기에, 제대로 된 발굴 작업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인류의 많은 원형들을 알지 못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그들이 남긴 쐐기문자와 점토판을 통해서 인류 원형의 양식들과 신화를 엿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인안나라는 최초의 여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최초의 여신은 여러가지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사랑의 신이자, 거룩함과 하늘의 신이며 또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한 신이기도 합니다. 이 죽음과 부활의 모티브는 이후 그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히브리 신화에도 영향을 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로 자리 잡고 서구 세계를 지배하는 동안, 최초의 여신에 얽힌 이야기는 우상이라는 이름으로 부정되고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습니다. 진지하고 편견없는 마음으로 신화를 읽어간다면 꽤 재미있고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안나 여신에 대한 이야기를 보다 재미있게 읽으려면 서구 문명의 큰 흐름중 하나인 헤브라이즘과 히브리 신앙을 이해하면 도움됩니다. 본래 히브리인들의 종교는 유일신교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성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다신교 사회에서 발견되는 만신전의 흔적이 남아있는데요, 그 흔적 중 하나로 전쟁의 신인 야붸 신은 히브리어 복수 형태로 표현됩니다. 중앙집권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다윗 왕조에 이르면 야붸 신은 민족의 신으로 모셔지다가 훗날 택일신교 형태를 거쳐서, 로마 제국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유일신교로 발전하게 됩니다. 바로 이 히브리 신앙의 여러 이야기들에 모티브를 제공하는 신화중 하나가 수메르 인들의 신화이며, 여신 인안나와 얽힌 여러 이야기들과 속성은 히브리 신과 고대 그리스 신화에도 투영되었습니다. 일찍이 분석 심리학자 칼 융은 많은 신화를 연구하면서 남성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구약의 야붸에 의해 은폐된 여성성을 찾으려고도 했죠. 성모에게 투영되는 신성은 그러한 심리적 현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여신 인안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길가메쉬와도 관련있는데요, 그녀는 구약 성서에도 나오는 담무스의 아내이자, 영웅 길가메쉬를 쓰러트리기 위해 하늘의 황소를 보낸 여신이기도 합니다. 결국은 그 사건과 간접적으로 엮이게 되고, 저승으로 내려가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는 이야기를 탄생시킵니다. 이렇게 "길가메쉬 서사시"로 대표되는 수메르 인들의 신화는, 그전까진 최조인줄만 알았던 성서의 전승이나 기록 연대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스토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노아와 홍수 이야기, 아담의 탄생, 지혜, 뱀, 생명의 주님 등과 같은 성경에서 친숙하게 접할 수 있었던 스토리 양식이 이미 수메르인들의 신화에 담겨 있었습니다. 동시에 히브리인들은 신화적 모티브를 수메르 인들에게서 받았음이 드러났지만, 히브리 민족만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감수성을 그들의 신앙에 담아 내었습니다. 이렇게 신화를 알아가는 건 인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정신의 흐름을 정직하게 짚어가는 것이기도 하기에 인류 문명과 인간을 이해하는데 큰 자양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초의 여신 인안나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신에 투영되었을 그들의 삶이 얼마나 개방적이었는지 알게됩니다. 또한 그들은 현실지향적이면서도 모험을 감수하고 인간적인 감정들을 발산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화학자 캠벨은 '고통을 피할 수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인간은 환상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신화적 원형은 바로 그런 환상을 반영해내고, 인간이 가진 삶의 무게와 정서를 담아내며 우리 안의 모험과 스토리를 찾아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두껍지 않고 얇으면서도 수메르어와 인류학에 대한 전문성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신화를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어갈 수 있습니다. "최초의 신화 길가메쉬 서사시"와 "신화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라는 책과도 연결되는 내용이니 신화를 좋아하거나 인류 최초의 신화에 관심있는 분이라면, 읽어보시길 강추합니다. 성경을 더 풍부하게 읽어내고 싶고, 질문할 수 있는 정직한 신앙을 찾아가려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네요.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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