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악어"라는 낯선 제목의 책을 받았습니다. 어른들을 위한 그림 책이라고 하는데, 처음엔 "어린왕자"와 같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일까?' 생각해보았지요. 글라인은"부부의 세계"를 비롯해 여러 드라마를 스토리를 집필한 작가들이 모인 팀입니다. 이화진 작가 역시 방송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분입니다. 그림은 루리라는 "긴긴밤"으로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을 수상하신 분이 그렸고요.
책은 가로로 길게 펼쳐가며 읽을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그 덕분에 길게 표현되어야 할 장면들이 끊김이 적게 담길 수 있어서 의도적인 배치라고 느껴졌습니다. 책을 감상하는데 역시 만족스럽네요.
이 책은 도시에 살게 된 악어에 대한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악어는 스스로 원해서 도시에 살게 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작가는 도시에서 살기엔 이질적인 생김새, 도시에 적응하기 힘든 존재를 악어로 표현한 것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현대문명의 집약체인 도시에서 악어가 어울릴만한 곳은 '동물원' 혹은 자연사 박물관에서 박제된 채로 놓여진 어느 구석의 작은 공간이 아닐까요? 그것도 아니면 장식품이나 고급 가방의 재료가 되어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겠죠. 도시에 던져진 악어를 보며 실존주의 철학에서 논하는 '피투된 존재'인 인간의 실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더군요. 원해서 이렇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영문을 모른 채 여기에 어느 순간 존재하고 있는 존재, 그래서 늘 고독과 불안을 껴안고 살아야하는 상태, 저의 모습이 겹칠 수 밖에 없더군요.
악어는 세상으로부터 두려운 존재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배척당하죠. 때문에 악어는 악어로서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습이 되고자 고민하고 노력합니다. 괴로움을 안고서 말이죠. 근본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실존적인 인간의 모습이자 도시에 살아가며 부딪히는 우리의 모습인 것같아요. 나다운 것을 상실하고 타인이 보기에 어울릴만한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압박감, 언제부터 도시라는 배경은 그런 시공간이 되어버린 것같습니다.
그런 악어가 우연히 물에 빠집니다. 물을 무서워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막다른 곳에서 진정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몸소 경험합니다.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죠. 그래서 자신이 잘라버리려고 하던 꼬리가 왜 있었는지, 물 속에서 얼마나 유용한지는 결국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자신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각성이 일어난 것이죠.
"나는 내 꼬리가 부끄럽지 않아"
저도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악어입니다. 저의 내면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복하고 풍족했는데, 세상이 추구하는 기준에 저를 맞추다보니 이제는 가난하고 결핍된 가면 하나가 거울 앞에 떠다니더군요. 마치 백인들의 침략으로 그들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지금껏 자족하고 풍부했던 생활과 내면 세계를 잃어버리고 마약과 약물 중독 속으로 떨어져 버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모습같았습니다. 물과 함께 춤출 수 있고 바람과 이야기하며 들소와 교통할 수 있는 풍족함을 상실해버린 원주민.
스스로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도시와 어떻게 조화할지도 고민해야겠지요. 아니면 떠날지도요. 이 책이 메세지는 부드럽고도 공감을 일으킵니다. 강렬한 도시 색감과 초록색 악어의 대비가 인상적인 그림을 만들어 냅니다. 그래서 몇번이나 계속 펼쳐보게 되네요. 부록으로 주신 미니 아트 포스터와 컬러링북도 참 매력적인 아이템입니다. 소장욕구를 일으킵니다. 도시에 살아가는 다른 악어분들, 함께 이 책을 통해서 마음을 나누시죠.
이 책을 더 음미하게 만드는 루리 작가님, 인터뷰 링크에요.
http://ch.yes24.com/Article/View/468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