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 '무진기행' 김승옥 작가 추천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신동운 옮김 / 스타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난 일본문학을 좋아한다. 어순이 같아서 번역본을 읽어도 부담이 없이 매끄럽다. 그래서 의미전달이 서구권 문학보다 잘 된다. 그리고 일본인 특유의 사상과 생각하지 못한 참신한 소재들은 나의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명성은 이미 알고 있었다. 정작 읽어본 그의 책이 없었을 뿐이다. 그의 문학 세계를 이야기할 때 항상 따라오는 수식어가 '퇴폐주의 문학'이다. 보들레르, 천재 시인 랭보와 같은 인물이 남긴, 기존의 도덕을 부정하는 탐미적인 경향의 문학. 삶의 총체적인 면을 긍정하지 못하는 예술 주체의 산물...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소설은 머리말과 후기, 3부의 수기로 나뉜다. 머리말의 시작은 독특하다. 3장의 사진을 보는 소설 속의 '나'는 시종 일관 부자연스러움, 기이함과 비판적인 느낌을 토로한다. 이는 다름아닌 작가의 독백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소설속 주인공을 닮은 자화상에 대한 자전적 고백으로 들린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수기에서는 '요조'라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요조는 심각한 대인공포증을 어려서부터 겪은 인물로 독특한 퇴폐미와 매력을 풍긴다. 그는 인간을 대하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기에 여러 가지의 관계 속에서 긴장과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그 관계가 설령 혈육관계라도 말이다. 그리고 각 수기에는 그에게 큰 영향을 주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요조의 운명이 뒤틀리며 퇴폐미를 완성시켜간다.

"즉 나는, 인간이 삶을 영위한다는 것에 관하여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가 되는 듯 했다. 내가 지니고 있는 행복의 관념과, 세상 사람들 모두가 지니고 있는 행복의 관념이 전혀 다른 것에서 생기는 불안, 나는 그 불안 때문에 밤마다 전전긍긍 신음하며 발작을 일으킬 뻔한 적도 있었다. 나는 도대체 행복한 것일까?"

요조는 다른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한가지 방법을 선택하는데 그는 일부러 '익살'스러워지기로 선택했다. 그는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고 거짓의 단면을 보면서도 익살꾼으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자신의 꾸며낸 익살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들, 나약함, 병약함, 두려움, 소심함 그리고 단절된 소외감은 이 소설이 끝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퍼져 나간다.

이 소설의 매력은 단연 톡특한 주인공에서 나온다. 이렇게 독특한 인물이 있을까? 흡입력이 강해서 한번 잡은 책을 놓기가 힘들었다. 그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퇴폐미의 강도만 조절한다면 그는 나의 내면 세계와도 닳았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지는 못하지만 선천적으로 나와 다른 인간들과의 만남은 항상 어렵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면을 써야 하며, 남들의 행동거지를 살피는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때로는 그 부담이 커서 구토를 하며 쓰러질 것같은 때가 있으니 말이다. 작가는 요조를 통해 세상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세상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 세계를 잘 묘사한 작가의 필력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흡수당하고 만다.

요조를 보면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글귀가 떠올랐다.

"모든 의미가 사라진 벌거벗은 세계와 구역질나고 부조리한 존재에 대한 분노, 이로부터 유발되는 뒤죽박죽의 고통

"구토", 사르트르

요조는 매순간 선택을 한다. 결국 마주하는 실존적 선택은 고통을 수반한다. 요조가 고통스러웠던 것은 자신의 본 모습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며 방황하다가 마침내 인간 실격자가 되는 요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반복하지만 계속 눈길이 가게 만들고, 가까이하기 싫으면서도 야릇한 감정을 일으키는 매력적인 인물이 바로 요조다. 그리고 아름답진 않지만 요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단면과 내면을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작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를 잘 표현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 서평단 참여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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