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는 다른 사람들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한가지 방법을 선택하는데 그는 일부러 '익살'스러워지기로 선택했다. 그는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고 사람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을 살핀다.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저항하기보다는 순응하고 거짓의 단면을 보면서도 익살꾼으로 사는 것에 만족한다. 자신의 꾸며낸 익살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들, 나약함, 병약함, 두려움, 소심함 그리고 단절된 소외감은 이 소설이 끝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해서 퍼져 나간다.
이 소설의 매력은 단연 톡특한 주인공에서 나온다. 이렇게 독특한 인물이 있을까? 흡입력이 강해서 한번 잡은 책을 놓기가 힘들었다. 그에게 끌리는 이유는 뭘까? 퇴폐미의 강도만 조절한다면 그는 나의 내면 세계와도 닳았다. 사회적 동물이기에 다른 인간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지는 못하지만 선천적으로 나와 다른 인간들과의 만남은 항상 어렵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가면을 써야 하며, 남들의 행동거지를 살피는데 많은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때로는 그 부담이 커서 구토를 하며 쓰러질 것같은 때가 있으니 말이다. 작가는 요조를 통해 세상의 단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세상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 세계를 잘 묘사한 작가의 필력에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흡수당하고 만다.
요조를 보면서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의 글귀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