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주도로 퇴근한다
신재현 지음 / 처음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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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바닷가 근처다. 파도 소리를 듣고 바닷게를 잡고 갈매기들이 날아오르는 바닷가 근처에서 자랐다. 낫에는 물결에 반사된 여울이 밤에는 먼 바다의 고기잡이 배가 보내는 아련한 불빛이 마음 시리도록 아련하게 만드는 그 바다, 나는 좋았다.



시간이 흘러 서울에서 사는 동안 지방에서는 보고 듣고 누릴 수 없는 것들이 가까이 있어서 좋았다. 없는 게 없는 세상, 특히나 조금만 움직이면 도달할 수 있는 예술의 전당은 내가 좋아하는 공연과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정기적으로 열렸다. 찾기만 한다면 지방에서든, 서울에서든 나름의 묘미와 삶의 맛이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사람이 모이는 곳엔, 사람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이 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도시가 만들어 내는 문제들, 인간관계, 경쟁심, 그것은 내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삶의 피로를 느낀다.



"나는 서울에 살 때 지하철 타는 것을 싫어했다. 지하철 안 사람들의 무표정과 경계심을 볼 때면 숨이 턱하고 막혔다."




책 속의 위 문장이 내 마음을 대변하는 것같았다. 영혼없이 겨우 버티는 것 같은 삶의 순간을 이처럼 솔직하게 잘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악의는 없겠지만, 내가 마주친 그들도 그렇게 살아가느라 지쳐서 그랬던 것이겠지만,, 피하고 싶고 잠시라도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경쟁이 싫고, 시기와 질투가 만연한 생활이 싫어서 결국 제주로 내려온 저자의 좌충우돌 제주살이 이야기, 그의 솔직 담백하고 부러운 이야기들이 나의 대리만족 심리를 채워 준다.



나는 조건의 변화가 행복의 필요조건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충분조건으로서 분명히 기능한다고 생각한다. 제주살이라는 환경의 변화를 맞이하며 저자가 써 놓은 글 곳곳에는 행복이 묻어 나온다. 분명 직장을 옮기면서까지 제주도로 이사하는데에는 큰 결심이 필요했고, 아내의 동의와 아이들의 협조가 필요했겠지만 연세살이를 통해서 제주도에 정착하고 삶의 활력을 찾아가는 저자의 이야기들은 기억 속에서 잠자던 나의 어린 시절을 계속 불러 일으킨다.

이 책엔 제주살이에 대한 내용들이 일기 모음집처럼 잘 담겨 있다. 예전에 본 '효리네 민박집' 처럼 하나의 예능 프로로 만들어도 될 것같은 소소한 삶의 모습들이 잘 소개되어 있다. 집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위치는 어디가 좋은지, 토박이들의 텃세는 어떤지, 사람들은 뭘하면서 먹고 사는지, 아이들의 교육 여건은 어떤지, 그리고 실제로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만 아는 명소는 어딘지, 제주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욕심을 내야하는 책이다. 무턱대로 제주도를 찾기 전에 이 책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얻는 게 정말 많을 것이다.



저자는 제주도를 정말로 사랑하나보다. 때로는 높은 습도와 상상하기 힘든 태풍의 체감상 강도와 같은, 제주도에서 맞이하는 독특한 상황에 지칠만도 한데, 그의 글엔 온통 즐거움이 담겨 있다. 맞다. 관점의 차이다. 좋아하면 결국 힘든 일도 즐기는 일로 변한다. 저자가 만났던 용한 할머니의 말처럼 그의 삶은 결국 제주도에 정착할 운명이었나보다. 서울에서 겪던 자녀들의 아토피까지 좋아졌다니 정말 운명인가보다.



예전에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도 제주도 같은 곳에 가서 욕심없이 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고 말이다. 지인이 말했다. "제주도 같은 곳?...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욕심 아닐까?" 나는 별 말을 할 수 없었다.



인생의 선택은 항상 기회비용을 동반한다. 어떤 선택은 너무나도 댓가가 커서 되돌리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내 선택엔 내가 책임을 지자. 이 책을 읽고 하나의 결심이 섰다. 기회가 온다면 생각만 하다가 놓치지 말자. 어릴 때 가졌던 추억과 그리움을 다시 경험할 수 있는 곳, 바닷가 근처, 눈이 시릴 정도로 예쁜 설경과 산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살다가 자연 가까이에서 죽자.



고맙다. 어디서 죽을지, 그때까지 어떻게 살지를 생각하게 만들어줘서. 일상에 지친 분들께 권한다. 반드시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삶의 재미를 찾아가는 저자의 이야기에 자극을 받을 수 있다.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 서평단 참여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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