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였다. 내 친구는 키고 컸고 건강하고 운동도 잘했다. 미술에도 소질이 있어서 장차 미대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에서 그 친구가 아프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친구는 암으로 입원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친구의 빈 자리를 바라보는 내 눈 앞에 혼란스러움 만이 내려앉아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나는 병원으로 찾아갔다. 친구의 훤칠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암치료를 받느라 고생했던 흔적이 온 몸에 가득 쌓여 있었다. 혼자서는 걷기도 힘들 정도로 야위여서 친구가 움직여야할 땐 옆에도 도와줘야 했다. 의식은 있어서 사람을 알아보긴 하지만 점점 눈에서 힘이 풀려갔다. 내가 알던 친구는 아니었다. 친구의 마음을 더 아프게 만들까봐 애써 심각한 표정을 감추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나를 더 놀라게 만든 건 친구를 보살피는 가족들의 모습이었다. 친구의 변한 모습에 당황했던 내 모습과는 달리 친구의 가족들은 더이상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된 환자는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이라는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생각건대 친구와 친구의 가족은 이미 수용의 단계에 있었다. 그들은 죽음을 받아들이고 걱정과 슬픔으로 날을 지새우기보다 병문안을 와주는 내게 미소를 보내고 감사하고 있었다. 일상을 살고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호스피스 병동의 모습은 우리들 대부분에게 낯설다. 현대인은 대부분 죽음과 여러가지 의미에서 단절되어 있다. 과거 농촌에서 이웃 사촌들이 모여 살던 시절에는 누군가의 죽음은 마을 공동의 일거리였다. 마을의 어른들은 모두 함께 모여 상여를 매고 나가고, 아이들은 일손을 거드는 부모들을 따라 산 중턱의 무덤과 묘지를 오가며 죽음이 공동체 순환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죽음은 뉴스나 격리되어 있는 장례식장에서나 마주할, 갑작스러운 사고 정도의 부정적 뉘앙스에 묻혀 있다.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우리 삶에서 단절해내고 떨쳐내야 하는 것으로 만들고 있다.
호스피스 의사는 같은 의료인과 심지어 그의 가족들에게도 오해를 산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에서) 죽이는 의사, 피했으면 하는 의료 분과. 편견은 그렇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의료인에게도 날아가 꽂힌다. 심지어 환자의 보호자들도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고 말썽을 일으키기도 한다. 의사의 처방을 믿기보다 대체요법을 신뢰하고, 전문적인 판단에 의해 처방을 내린 모르핀이 마약성 중독을 일으킨다는 자신 만의 고집으로 복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고통받고 있는 환자를 더욱 극한의 고통으로 몰아간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이 환자에겐 매우 가치로운 시간임에도 그 황금같은 시간을 고통 속에서 허비하게 만든다.
더욱 난감한 일들은 많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고통, 그리고 분노를 타인에게 풀어내는 사람들, 그것을 받아줘야하는 주변인들과 의료인들, 살아갈 날이 얼마남지 않는 사람 앞에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가족들....저자는 이 모든 광경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삶을 배운다. 저마다의 사정과 삶의 모습들을 간직한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죽음은 우리의 일부다.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도 물리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양태들을 경험하면 혼란스럽고 인간의 존엄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호스피스는 중요하다. 인간다운 삶을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 모습은 타인의 모습이 아니라 결국 자신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죽음을 통해 삶,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야 한다.
저자의 아들은 호스피스에서 봉사를 한다. 그리고 저자는 사람들에게 호스피스에 꼭 와보라고 권한다.직업으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왜 호스피스에서의 경험이 소중하다고 그녀는 말하고 있는 것일까? 고되고 난감하고 피하고 싶지 않을까는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분명 있을텐데 말이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스탠포드 졸업사를 남기고 췌장암으로 떠나간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 연설에서 3가지 이야기를 전했는데, 그중 마지막의 주제가 '죽음'이다. 스티브 잡스의 연설 일부를 발췌하는 것으로 이 책에게 느낀 감동을 전하고 싶다. 죽음을 기억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현실과 지금을 가치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