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물방울 모양
데라치 하루나 지음, 김지연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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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오래된 인연은 시간이 지나면 정말 사라지는 걸까. 『기억은 물방울 모양』은 형태가 달라졌을 뿐, 한때 소중했던 마음은 어딘가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마치 보석처럼, 물방울처럼.

중학교 시절 졸업 작품을 함께 만들었던 나가세, 다카미네, 모리, 시즈쿠. 절친도 연인도 아닌 묘한 거리를 두고 살아온 이 네 사람이 30년 만에 다시 만난다. 이야기는 마흔다섯 살의 현재에서 시작해 5년씩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들의 관계와 삶을 하나씩 보여준다. 회사의 폐업, 사업의 실패와 이혼, 새로운 사랑과 선택까지, 저마다의 시간을 지나온 네 사람의 삶이 인상 깊다.

개인적으로 다카미네가 “장롱 속에 잠들어 있는 보석을 꺼내 새롭게 재탄생시키고 싶다”고 말하는 부분이 참 좋았다. 모양은 달라져도 보석은 계속 이어지고, 누군가의 손에서 다시 빛을 낸다. 사람의 인연도 사실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모양은 달라져도 계속 이어질 수 있고, 언젠가는 원래와 다른 빛이 새롭게 나기도 한다.

“빗방울이 모여 강을 이루고, 강물은 바다로 흘러갔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지.” 선생님이 들려준 ‘영원’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 전체를 감싸듯이 관통한다고 느꼈다. 영원이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모양을 바꾸면서도 계속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네 사람의 관계는 아주 심오하지는 않으면서도 또 참 보기 좋다. 서로의 삶을 대신 살아주지도, 언제나 곁에 있지도 않지만 그저 필요할 때 기대고,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관계다. 그런 느슨하고 조용한 연대가 오히려 더 진짜 같아서 따뜻하게 느껴졌다.

지나간 인연과 오래된 기억 하나쯤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사라진 줄 알았던 우리의 마음도 어쩌면 물방울처럼 다른 모습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형태는 달라져도 빛은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감히 그 이유를 말해보고 싶다.

#기억은물방울모양 #데라치하루나 #문예춘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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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문명 - 원자에서 양자컴퓨터까지, 세계를 움직이는 양자의 힘
한정훈 지음 / 김영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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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솔직히 처음에는 ‘양자역학’이라는 네 글자만으로 책을 펼치기도 전에 겁을 먹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뭔가 어려운 수식이 잔뜩 나올 것 같고, 읽다가 몇 페이지 만에 책을 덮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서평을 써야하는데!)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이 책은 양자역학 자체를 외우게 하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명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양자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하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증기 문명에서 전기 문명으로, 그리고 이제 양자 문명으로. 우리 문명에서 이제는 익숙하게 사용하는 반도체와 레이저가 사실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꽤 놀라웠다. 특히 트랜지스터가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양자역학을 도구 삼아 설계하고 만들어낸 물질이라는 부분에서는,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던 스마트폰과 컴퓨터가 전혀 다르게 보이기도 했다.

물론 읽는 내내 술술 이해하고 넘어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첩과 얽힘, 큐비트, 양자 상태의 붕괴 같은 이야기가 나오면 내 멘탈이 붕괴되고 ‘세상에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싶어 마치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하듯 몇 번씩 다시 읽게 된다. 하나의 입자가 여러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부터 일상의 직관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특히 양자컴퓨터가 확률적인 계산을 한다는 설명은 우리가 아는 익숙한 컴퓨터의 개념과 너무 달라서 한참을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과학의 역사를 사람과 사건의 이야기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맥스웰에서 헬름홀츠, 헤르츠, 아인슈타인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나 벨 연구소에서 트랜지스터가 탄생하는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과학이란건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된 답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질문과 발견이 서로 이어지며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양자 문명’이라는 관점도 상당히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우리 문명을 이룩해 온 증기와 전기가 자연의 힘을 길들이는 과정이었다면, 앞으로의 양자 문명은 중첩과 얽힘, 그리고 ‘확률’을 다루는 문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금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두려움도 생긴다.

《양자 문명》은 읽고 나서 모든 양자역학을 이해하게 되는 책은 아니다. 사실 그런 책이 세상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나 역시 반의 반이나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양자역학을 나와 전혀 상관없는 어려운 물리학이라고만 생각했던 시선은 조금 달라지게 해주는 책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술의 밑바닥에 이런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잠시 내려놓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학의 중요한 순간들을 하나씩 목격한다는 마음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우리 세상의 모습까지도 조금 다르게 보이게 된다. 낯설면서도 설렌다.

#한정훈 #양자문명 #물질의물리학 #서평단 #양자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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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쿠 - 망자의 터
기타자와 도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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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그 사람을 다시 불러내고 싶을까?

『온고쿠 : 망자의 터』는 간토 대지진으로 아내 시즈코를 잃은 화가 후루세 소이치로가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강령 의식을 치르면서 시작된다. (오마이갓! 😱) 하지만 그날 밤 이후 집 안에는 알 수 없는 백분 향이 감돌고, 늦은 밤 죽은 아내가 찾아오고, 하녀는 “저건 아씨가 아니에요… 저건 귀신이에요.”라고 말한다. 보고 싶은 마음 하나로 문을 열었는데, 그 너머에 서 있는 것이 정말 내가 그리워하던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격자문 밖에 모여든 존재들을 바라보며 무녀가 “불러주는 사람이 있으니까”라고 말하는 장면처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척들을 통해 이 책의 공포는 현실화된다. 그림과 부채, 오래된 노래처럼 평범했던 것들은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 매개가 되고, 얼굴 없는 자의 “나는 네 아내를 먹고 싶다.”라는 말에 기이한 불쾌감은 온 몸에 퍼진다.

특히 에리마키라는 존재는 처음부터 정체를 짐작하기 어려운 인물이라, 후루세와 함께 사건을 좇는 동안에도 이 사람은 대체 무엇일까 싶은 궁금증이 계속 따라온다.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괴이한 사건들이 하나둘 이어지고, 그 뒤에서 백 년 넘게 숨겨져 있던 가문의 탐욕과 망자들의 사연이 드러나는 과정도 흥미로운 줄거리다.

하지만 사랑해서 보고 싶고, 미안해서 보내지 못하고, 그리운 마음에 결국 죽은 사람을 이승에 붙잡아두는 마음이 어쩌면 귀신보다 무서워 보이기도 한다. 죽은 이를 놓지 못하는 산 사람의 미련이 불러일으키는 참사다.

무섭지만 또 기이하고, 기이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한없이 쓸쓸해지는 이야기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경계에서 결국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건 망자의 저주가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을 놓아주는 일의 어려움이다. 그래서 『온고쿠』는 서늘한 괴이 미스터리면서, 또 아주 오래된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하겠다.

#온고쿠 #망자의터 #기타자와도 #오팬하우스 #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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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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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라는 말을 우리는 너무 쉽게 쓰곤 한다.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물건을 버리듯, 나와 다르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도 쉽게 이름을 붙이고 밀어내기도 한다. 『우리가 주워진 세계』는 바로 그 버려진 것들의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청소회사에서 일하는 아사히는 세상의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워내며 살아간다. 반대로 옆집 도모에는 버리지 못한 물건들로 집을 가득 채운 채 살아간다. 한 사람은 버리는 것으로, 다른 한 사람은 쌓아두는 것으로 자신을 지켜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다른 두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 행동의 이유를 알아갈수록 두 사람 모두 버려지는 것이 두려웠던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찡하다.

도모에는 쓰레기들을 두고 “오랫동안 나를 지켜준 성”이라고 말한다. 남들에게는 그저 버려야 할 물건들이지만 그녀에게는 자신을 보호해준 기억이고 삶의 흔적이었다. 집 안을 가득 채운 물건들은 그저 버리지 못하는 집착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안에는 버려진 뒤에도 어떻게든 자신과 딸을 지켜내고 싶었던 시간이 쌓여 있다.

반대로 모든 것을 깨끗하게 비워내려 했던 아사히 역시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사람이 된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면서 상대가 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아가는 과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두 사람의 상처가 쉽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몇 번이고 재활용되는 자원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어도, 그 과정에서 마음은 조금씩 닳아간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만다.

두 사람에게 거창한 구원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냥 그 사람이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점차 조금씩 받아들여진다. 버려진 페트병처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발견되고, 다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도 참 좋았다. 아사히와 도모에의 이야기는 서로를 고치려 하지 않고 조금씩 상대의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더 의미가 깊다.

이 소설에서 ‘주워진다’는 건 결국 한때 버려졌다고 생각했던 사람의 마음을 다시 발견하는 일이다. 버려진 것들 사이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서툰 동행이 생각보다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우리가주워진세계 #아사쿠라히로카게 #해피북스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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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무늬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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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기억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얼굴이지만, 가끔은 얼굴보다 다른 것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때도 존재한다. 어떤 사람이 입었던 옷의 촉감이나 냄새, 그 사람이 사용하던 컵처럼 일상적인 물건까지 기억의 한 자락이 된다. 『기억의 무늬』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카미는 안면인식장애가 있어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인물이다. 대신 그는 옷의 질감과 닳은 소매, 손때 묻은 물건 같은 아주 작은 흔적을 통해 사람을 기억한다. 세 살 때 부모를 잃은 뒤 19년 동안 그를 붙잡고 있던 것도 얼굴이 아닌 ‘검은 실루엣의 옷에서 느껴졌던 촉감’이다. 그 기억 하나를 따라 부모의 죽음에 얽힌 미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과정이 이 책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특히 오래된 아기 침대처럼 평범해 보이는 가구에 남은 흠집과 문양, 쉽게 눈에 띄지 않는 흔적들이 바로 과거를 향한 단서가 된다. “옷은 어쩌면 우리의 육체를 가장 정직하게 기억하는 유일한 목격자일지도 모른다” 사실 물건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지만,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하지만 상처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일부가 되기도 한다. 카미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아픔도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결국 과거를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순간 상처의 모양은 이전과는 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 일부가 되기도 한다. 카미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아픔도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른 의미를 갖게 되면서 카미의 여정을 더 의미깊게 만들어 주는 것만 같았다. 상처받은 기억을 단순히 잊어버리거나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품은 채 앞으로 나아가는 것. 기억의 무늬가 우리에게 남기는 삶의 잔상이다.

#기억의무늬 #백희성 #북로망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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