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흔
데라오 데쓰야 지음, 김소희 옮김 / 드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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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불쾌하고 소름 끼치지만 홀린 듯이 읽게 된다는 소개가 과장이 아닌 책이다. 데라오 데쓰야의 『탄흔』에서의 인물들의 욕망은 적나라하고, 때로는 어디까지가 인간의 본성인지 생각하기 싫어질 만큼 불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아홉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타이완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제헝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학창 시절부터 마음에 품어온 우이샹을 향한 갈망, 엘리트들의 경쟁 속에서 쌓이는 좌절,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혼란한 모습들이 그 곳에 있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인물들도 사실 내면에서는 욕망과 자기혐오, 허무와 싸우고 있다. 특히 돈을 많이 벌어 무엇을 할지 모르겠지만 그저 복수하고 싶다는 말처럼,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조차 잃어버린 채, 그저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씁쓸하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던 아홉 편이 점차 연결되고, 인물마다 달라지는 시선 속에서 제헝이라는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구성이다. 한 사람의 행동도 누구의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와 후회를 남긴 존재가 되고,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인물들을 표면으로만 쉽게 판단할 수는 없게 된다.

그래도 역시 읽으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욕망과 성적 감정을 감추지 않는 노골적인 묘사였다. 작가는 인물들을 깔끔하게 이해하거나 쉽게 용서할 수 있는 사람들로 그리지 않으며, 그들의 보기 싫은 모습까지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 안에 그득히 쌓인 결핍과 고통을 들여다보게 한다. 제목인 ‘탄흔’처럼 어떤 경험은 시간이 지나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상처가 아문 것처럼 보여도, 그 흔적은 이후의 선택과 관계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까.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아도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고, 뛰어난 능력이 내면의 공허까지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화려한 이력 뒤에 감춰진 허무를 들춰내면서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는 않는 책이라 마냥 읽기 쉬운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처럼) 인간의 불편한 면까지 정면으로 마주하는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아홉 편의 이야기가 남기는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마치 탄흔처럼, 오래 곱씹게 되는 책이다.

#탄흔 #데라오데쓰야 #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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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1~2 세트 - 전2권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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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머리 아프게 고민하지 않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을 만났다! 『신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는 무려 9년여 만에 (!!) 돌아온 시리즈의 신작으로, 다섯 가지 살인 사건과 개성 넘치는 네 인물의 티키타카가 어우러진 유머 미스터리다. 잔혹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지 않고, 몇 페이지 읽지 않아도 피식 웃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재벌가 영애라는 신분을 숨긴 형사 호쇼 레이코와 까칠한 독설 집사 가게야마의 조합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레이코에게 가게야마가 “아가씨, 자신의 직업을 잊으셨습니까?”라고 받아치는 장면부터 이미 재밌다. 정중한 말투로 빈정거리는 가게야마와 욱하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레이코의 대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엉뚱한 재미를 준다. 여기에 자신이 셀럽임을 자랑하는 가자마쓰리 경부와 엉뚱한 신참 형사 와카미야 아이리까지 합류하니, 수사 현장보다 이들의 대화가 더 기다려질 때도 있을 정도다.

물론 유머만 있는 건 아니다. 후계자의 죽음을 둘러싼 사건부터 피로 남겨진 다잉 메시지, 자명종 다섯 개가 등장하는 간호사의 살인 사건까지. 트릭도 제법 다채롭다. 가자마쓰리 경부가 자신만만하게 추리를 내놓을 때마다 빗나가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웃음을 주면서도,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고 사건의 실마리가 모이면 가게야마가 날카로운 논리로 허점을 짚어내며 미스터리의 재미를 제대로 살려준다.

피곤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특히 이런 책이 반갑게 느껴진다. 웃다가도 단서를 따라가고, 어느새 범인을 추리하게 되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유쾌한 캐릭터와 정교한 트릭, 두 가지 재미를 함께 누리고 싶은 날 가볍게 읽기 좋다. 시리즈가 오랜 공백을 깨고 자신만만하게 돌아온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신수수께끼풀이는저녁식사후에 #히가시가와도쿠야 #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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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소기 - 듣지 말았어야 했다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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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만으로도 이렇게 섬뜩한 공포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미쓰다 신조의 『미미소기』는 눈에 보이는 귀신보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가 더 무섭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는 호러 미스터리다. 이 책의 진짜 무서움은 괴이한 존재를 직접 마주하는 순간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게 되는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기묘한 전승이 담긴 노트에서 시작된다. 괴담 모임인 백물어에서 마지막 이야기를 앞두고 누군가 불길한 말을 꺼내고, 산속에서는 있을 리 없는 장송행렬이 강물을 거슬러 다가온다. 또 노트를 읽던 인물은 텅 빈 계단 아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발소리를 듣는다. 구두도 운동화도 아닌,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소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가까워지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 독자들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머릿속에서 온갖 장면을 만들어내게 된다.

짧은 괴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구성이 정말 독특하면서도 좋았다. 한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가 또 다른 인물의 경험담으로 이어지고, 어느새 처음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다가도 이야기가 쌓일수록 기묘한 연결고리가 눈에 들어오고, 단순한 괴담 모음이 아니라는 생각에 앞부분을 다시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다. 작가와 편집자가 노트의 기록을 두고 나누는 대화에서는 이전 작품과 연결되는 흔적도 발견할 수 있어, 미쓰다 신조의 세계를 아는 독자라면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책이 워낙 무서우니 읽고 나서도 조용한 방에서 작은 소리가 들리면 괜히 화들짝 놀라 움츠러들게 된다. (겁쟁이라 어쩔수 없다) 읽는 행위 자체가 위험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도 자꾸만 생각난다. 그런데 오감을 다룬 시리즈의 첫 작품인 『노조키메』도 문득 궁금해진다. 그래서 두려움을 극복하고 만나보려고 구매했다. 원래 공포영화는 눈 가리고 보는게 제일 재밌으니까.

#미미소기 #미쓰다신조 #북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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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콜릿 BITTER ㅣ 러브콜릿
지언.장은영.오동궁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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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감정이 이렇게까지 기괴하고 섬뜩해질 수 있을까 싶다. 『러브콜릿 BITTER』는 지언, 장은영, 오동궁 세 명의 작가가 각기 다른 색깔로 써 내려간 로맨스릴러 단편집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출발하지만, 그 감정이 집착과 광기로 번지는 순간,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달콤한 사랑 이야기보다 어딘가 뒤틀린 관계에 끌리는 독자라면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지언 작가의 「인형가」는 섬뜩하면서도 꽤나 기괴하다. 에도 시대, 인형가로 성장한 사쿠라와 렌은 서로 사랑하지만 두 사람이 인형을 만드는 방식은 사뭇 다르다. 아이들의 복을 비는 히나 인형을 만드는 렌과 달리 사쿠라는 죽은 사람과 똑같은 인형을 만든다. 떠나보내야 할 사람을 놓지 못하는 마음이 담긴 인형이다. 사랑하는 이를 잃고 싶지 않은 욕망은 기근과 스승님의 죽음이라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 점점 뒤틀리며, 사쿠라의 삶에 대한 집착은 광기로 치닫고야 만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희생은 어디까지 숭고할 수 있을까? 상대를 위한다는 마음이 결국 자신과 타인을 파괴한다면, 그것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토성의 바다」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소녀 바다와 외로운 소년 토성의 관계를 통해 쓸쓸한 감정을 전하는 단편이다. 서로에게 의지하는 두 아이의 모습이 애틋하면서도, 그들을 둘러싼 잔인한 현실이 정말 아프게 느껴졌다.

세 작품 모두 사랑의 모습을 한 가지로만 정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는 구원인 감정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BITTER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씁쓸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들이다. 세 작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펼쳐 보인 사랑의 어두운 얼굴도 흥미로웠다. 이쯤 되니 로맨스의 설렘에 조금 더 무게를 둔다는 『러브콜릿 SWEET』에서는 어떤 관계와 감정을 만나게 될지 기대된다.

#러브콜릿BITTER #지언 #장은영 #오동궁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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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형 나쁜 인형 ㅣ YA! 30
서하나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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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인형 나쁜 인형』은 읽으며 마음이 계속 불편했던 소설이다. 복제인간 ‘인형’은 인간에게 사랑받고 복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언제나 미소 지어야 하고, 혼자 외출할 수도 없고, 글을 배워서도 안 된다. 특히 “원하는 때에 외출할 수 있는 자유, 편하게 전화할 수 있는 자유, 글자를 배울 수 있는 자유, 하얀색을 거부할 자유”를 갖고 싶다는 젠의 모습에 마음이 아파온다. 복제인간이라는 설정 자체는 SF지만, 자유를 누리기 위해 허락을 받아야 하고 부당한 일을 알아도 모른 척해야 하는 복제인간들의 모습은 복제인간에게 가해지는 통제와 차별이 현실의 억압과 닮아 있기에 더 불편하게 느껴지는 지점이라 그렇지 않을까.

젠은 다행히 좋은 실버(인형을 키우고 보호하는 인간)인 루비를 만나 비교적 편안하게 살아가지만, 친구 칼은 학대를 당하면서도 인형이라는 이유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다 젠이 끔찍한 현실을 직접 목격하면서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 순간 젠은 자신도 늑대이고 싶었다.”는 문장에서 착한 인형으로 살아가던 젠이 더 이상 웃으며 참는 것을 포기하고 ‘나쁜 인형’이 되기로 결심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읽으면서 드라마 <더 글로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그대로 되갚는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오랫동안 힘없이 참아왔던 사람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해자들에게 반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는 긴장감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젠의 복수가 단순히 통쾌하기만 하지 않으며, ‘나쁜 인형’이 된다는 것은 마치 <더 글로리>에서 흑화해버린 문동은처럼, 젠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순수함과 착함까지 내려놓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가 한 걸음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자면 통쾌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밀려 온다.

처음에는 ‘인형’과 ‘실버’라는 독특한 SF 세계관이 흥미롭다고만 생각했는데, 불편한 감정 속에서 점차 현실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부당한 일을 겪어도 참고 넘어가며,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기대에 맞춰 살아가는 모습들. “지금 나는 어떤 수칙 속에 갇혀 있는가.”라는 질문처럼 마음이 묵직해진다.

『착한 인형 나쁜 인형』은 복수극의 짜릿함도 있지만, 결국 누군가의 소유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스스로 선택하게 된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젠이 끝까지 착한 인형으로 남지 않아서 더 인상적이었다. 복제인간을 주제로 다룬 SF이지만서도, 또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도 남겨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착한인형나쁜인형 #서하나 #자음과모음 #네오픽션 #ya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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