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물건의 역사 - 돌칼에서 AI까지, 물건들이 만들어온 330만 년 인류의 대장정
칩 콜웰 지음, 김병화 옮김 / 부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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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칩 콜웰의 《모든 물건의 역사》는 단순히 도구와 발명의 연대기를 정리한 책이 아니다. 내가 매일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사실은 인류의 진화 과정과 깊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물건을 만든 만큼 물건도 우리를 변화시켜왔다는 사실을 흥미롭게 다룬다.

339만 년 전 누군가 깨진 돌을 집어 들고 처음으로 고기를 자르기 시작했던 순간부터, 오늘날 자동차를 몸의 일부처럼 느끼며 운전하는 인간까지. 이 책은 아주 오래된 석기에서 현대의 기술 문명까지 긴 시간을 따라가며 인간과 물건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읽다 보면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라는 익숙한 표현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우리가 도구를 이용해 살아남은 것만이 아니라, 그 도구들이 우리의 생각과 몸, 사회를 함께 만들어왔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인류가 세 번의 큰 도약을 거쳤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도구를 만들면서 생존의 가능성을 넓혔고, 이후에는 물건에 상징과 의미를 담으며 예술과 종교,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대량생산과 소비 사회를 통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풍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마주한 과잉 소비와 환경 문제를 보았을때, 앞으로 인간과 물건의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재미있었던 부분은 거대한 인류사를 우리에게 친숙하게, 더욱 흥미롭게 풀어냈다는 점이다. 수백만 년 전의 돌도구와 지금 내 책상 위 물건이 결국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인간이 물건을 만들었다’는 익숙한 생각에서 벗어나 ‘물건이 인간을 만들었다’는 새로운 관점을 만나게 해준다.

《모든 물건의 역사》는 이처럼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물건 하나에도 인류가 살아온 시간과 고민, 변화의 흔적이 담겨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만들어왔는지뿐 아니라, 그 많은 물건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역사, 인문지식을 확장하기 좋아하는 똑똑이 독자라면 필독서라고 하겠다.

#거의모든물건의역사 #고고학 #사피엔스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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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여인의 선물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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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죽음을 앞둔 작가가 남긴 마지막 소설집’이라는 소개 때문에 조금 무겁고 슬픈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데니스 존슨의 《바다 여인의 선물》은 그저 죽음만을 바라보는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엉망이 되어버린 삶, 방향을 잃은 사람들, 어쩌다 그렇게까지 흘러가 버린 인생의 순간들을 아주 이상하고도 솔직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평범한 삶에서 조금씩 밀려난 사람들이다. 알코올중독으로 재활 시설에 있는 사람, 지나간 기억과 현재를 구분하기 힘든 사람, 죽음을 가까이에서 느끼는 노작가, 그리고 기묘한 믿음에 사로잡혀 무너져가는 사람도 있다. 읽다 보면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어느 순간 그들의 모습이 마냥 낯설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순간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인물들의 불안정한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보통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을 다룬 이야기는 결국 극복이나 희망으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데니스 존슨은 꼭 그래야만 하나 되묻는다. 그의 소설들은 삶이 꼭 아름다운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며,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들을 그냥 지나오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진정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표제작인 ‘바다 여인의 선물’을 비롯해 책 속 이야기들은 이상하고 낯선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그 기묘함 속에서 묘하게 웃음이 나고, 동시에 쓸쓸한 감정도 든다. 죽음과 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이야기들이 완전히 어둡지만은 않은 이유는, 작가가 삶 안에 숨어 있는 우연한 순간들과 설명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데니스 존슨이 간암 투병 중 마지막 힘을 다해 완성했다는 점을 알고 읽으니 문장 하나하나가 다르게 다가왔다. “그 무엇도 건드리지 말고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라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억지로 꾸민 위로나 정답을 주기보다 한 사람이 평생 바라본 삶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바다 여인의 선물》은 이처럼 삶이 언제나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마주치는 이상하고 찬란한 순간들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다.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이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신비롭다.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가 받는 가장 이상한 선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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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수용소 이후 - 빅터 프랭클이 남긴 인생 강의
빅터 프랭클 지음, 유영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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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책에는 놀라운 점이 있다. 그 자신이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절망적인 환경을 통과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단지 희망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죽음의 수용소 이후》 에서도 그는 삶은 의미가 있다고 단정짓지도 않고, 그저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단언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지를 되묻는다.

이 책은 프랭클이 생전에 남긴 미출간 강의들을 엮은 유고작으로, 자유와 책임, 사랑, 고통, 죽음 같은 주제를 다룬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아우슈비츠가 있다". 물론 누군가의 고통을 함부로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에게는 각자가 견뎌야 할 상실과 절망이 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프랭클의 이야기는 머리를 울리는 깨달음을 준다.

책에는 하반신 마비를 겪은 청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부모, 죽음을 앞둔 노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특별한 성공담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무척 현실적이다. 고통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발견했기에 다시 살아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천천히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히 앞으로도 살아가며 불안하거나 방향을 잃었다고 느끼는 순간에는 꼭 한번 다시 펼쳐보고 싶어지는 책이다. 삶의 의미를 거창한 목표에서 찾기보다 지금 내가 감당하고 있는 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견뎌낸 시간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 가장 깊게 남는다.

이번 책은 이미 알려진 프랭클의 대표작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 발굴된 미출간 강의들을 통해 그의 생각을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아무도 없는 빈 방에서 나, 그리고 빅터 프랭클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쇼파에 마주앉아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 나누고, 이로써 다시 깨닫고, 앞으로의 삶에서 나아갈 길에 또다른 마음의 불을 하나 밝힌 느낌이다.

“이미 두 번째 생을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당신이 지금 막 저지르려 하는 그 잘못들을 첫 번째 생에서 다 저질렀던 것처럼 살아라.”

“그러므로 인간이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냈을 때, 경우에 따라서는 죽음의 의미까지도 찾아냈을 때, 그는 행복할 뿐 아니라 고통을 감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볼 수 없고, 개인적으로 와닿는, 자원해서 선택한 삶의 과제도 눈앞에 그려지지 않을 때, 사람은 고통을 견딜 수 없을 뿐 아니라, 삶을 살아갈 수도 없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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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레시피 ㅣ 빈페이지 YA
소피아 리(이세리) 지음, 고수현 옮김 / 빈페이지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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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레시피』는 완벽하게 짜둔 계획이 수강신청 오류 하나로 틀어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인데, 생각보다 훨씬 따뜻한 책이었다. 처음에는 요리 수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우등생의 성장물일까 예측해 보았지만, 정작 책을 읽다 보니 음식이 사람을 이어주는 방식에 더 눈길이 갔다.

엘리자가 할머니의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배우는 과정은 단순히 한 소녀가 요리 실력이 무럭무럭 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동안 제대로 알지 못했던 엄마의 시간과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김치볶음밥, 만두, 된장찌개 같은 익숙한 음식들이 등장할 때마다 가족의 기억과 감정도 함께 따라와서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말로는 쉽게 전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음식을 통해 전해지는 장면들도 인상적이었다.

웨슬리와의 관계도 하나의 읽는 포인트가 되어서 좋았다. 처음엔 경쟁 상대라 서로 신경 쓰고 견제하지만, 점점 함께 성장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맨스가 이야기의 중심을 차지하지는 않고, 줄거리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둘이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독자들을 가볍게 웃게 만들고, 서로를 이해해가는 과정은 독자들을 꽤 설레게 한다.

또 한국계 미국인인 엘리자가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재미있었다. 완벽한 성적과 성공만 바라보던 아이가 예상치 못한 경험을 통해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발견해가는 과정이 담백하게 그려진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으면서도, 가족, 꿈, 성장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어 따뜻한 작품이었다. 막 차려 나와 김이 뜨끈한 한식 밥상 한 끼를 먹은 것처럼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빈페이지 출판사의 YA 시리즈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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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 - 도스토옙스키 단편 백야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윌마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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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보다 읽고 난 뒤 남는 감정을 따라가는 편이 더 잘 어울리는 책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책 《백야: 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는 결국 단 나흘 동안의 이야기인데도 이상할 만큼 오래 마음에 남는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보다 끝나가는 순간이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람이라면 특히 더 그럴 것 같다.

주인공은 현실보다 공상 속에서 살아가는 데 익숙한 외로운 몽상가다. 그러다 우연히 나스텐카를 만나고, 백야가 이어지는 페테르부르크의 밤을 함께 보낸다.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며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인생 전체를 바꿔놓을 만큼 특별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찰나의 순간을 붙잡아 놓는다. 나스텐카와 나누는 대화, 혼자였던 사람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끝에 찾아오는 이별까지. 큰 사건은 없는데도 감정의 파도는 생각보다 깊다.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마음보다도,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더 크게 다가왔다. 그래서 주인공의 설렘이 마냥 달콤하게만 보이지 않고 조금은 안쓰럽고 애틋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스토옙스키의 후기 작품들에서 만날 수 있는 묵직한 인간 탐구와는 또 다른 결을 지녔는데, 오히려 젊은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순수함과 서투름이 그대로 담겨 있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번 윌마 판본은 기존에 익숙했던 《백야》라는 제목 대신 《우리는 가장 밝은 밤에 헤어졌다》라는 제목을 전면에 내세운 점이 인상적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왜 이런 제목을 선택했는지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러시아어 원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고, 김희숙 소설가의 번역도 지나치게 고전적이거나 딱딱하지 않아서 감정선이 훨씬 부드럽게 읽힌다. 여기에 이옥토 작가의 감성적인 사진이 더해지면서 책 전체가 하나의 분위기를 가진 어떤 오브제처럼 느껴진다.

짧은 분량이라 가볍게 생각하고 펼쳤는데, 예상보다 훨씬 오래 붙잡고 있었다. 영원한 사랑보다도 한때 진심으로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오히려 더 현실적이고, 더 아프게 다가오는 듯 하다. 고전은 오래간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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