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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열어주다 - 멋진 스승들
성우제 지음 / 강 / 2016년 8월
평점 :
“자네는 참 행복하네, 나이 들어도 모르는 게 있으면 ‘여쭤볼 선생님’이 계실 터이니. 난 말야, 나이 50이 되니 모르는 게 있어도 이젠 여쭤볼 은사님이 안 계셔, 지금 모르는 것은 평생 모르는 것일 수 있어, 제자들이 가르쳐주면 모를까.”
1991년 8월, 갓 마흔이 넘어 대학에 전임이 되어 춘천으로 떠나기 전, 찾아뵌 평생 ‘젊은 스승’께서 내게 하신 말씀이다. ‘젊은 스승’은 성우제 후배가 책의 맨 처음에 소개한 김화영 선생님이고, 선생님께서 염두에 둔 ‘여쭤볼 선생님’은 아마 이 책의 두 번째, 세 번째 장을 차지하는 내 ‘평생의 스승’ 강성욱 선생님과 ‘스승 같은 선배’ 황현산 선생이겠다.
1980년대 후반 앙드레 지드에 대한 좋은 논문으로 석사를 마쳐, 박사과정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던 성우제 후배(나는 69학번, 우제는 82학번)는 슬그머니 사라지더니 홀연, 창간한 주간지 〈시사저널〉 기자로 나타났는데, 그 후, 나는 우제 후배가 2천 년대 초 아이 교육문제로 카나다로 이민 갔다는 말을 들었고, 2006년 겨울에는 《느리게 가는 버스》(강)라는 산문집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구입해 읽었다. 김화영 선생님과의 아름답고 소중한 사제관계를 빼면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글 솜씨가 빼어나다, 역시 소설가 성석제의 동생답군 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선생과 학생만 있고(요즘은 그 관계만 해도 어디냐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승과 제자는 없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곰곰이 따지면, 스승 한 분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우제 후배 말대로 대개는 스승을 잊고 있거나 누가 스승인지 모르고 사는 게 아닐까? 이 책을 읽다보면 세상에 스승이 안 계신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우제 후배처럼, 자기 삶의 스승을 알아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제 후배에게는 삶의 국면들 마다 스승이 계시다. 고등학교 시절(전신재), 대학시절(김화영, 강성욱, 황현산), 언론계 시절(안병찬, 김훈), 취미생활(박이추), 카나다 이민생활(김종성), 이렇게 생활환경이 바뀔 때마다.
우제 후배가 소개하는 스승들의 면모를 읽으면서 나는, 그분들에게서 공통점을 본다. 스승들은 모두가, 당신들의 분야에서, 말이나 지침이나 주장이 아니라 ‘실천’으로,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몸소 보여 주는 분들이다. 참스승의 모습이겠다(앞으로 스승이 되고 싶은 독자들은 꼭 챙겨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의 미덕은 재미있고 쓸모 있다는 점이다. 어젯밤 나는 책을 편 자리에서 책을 다 읽고 새벽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만큼 재미있다. 잠자리에 든 뒤에는, 내게도 스승인 세 분 선생님은 물론, 며칠 전 강릉에 갔다 들른 사천면의 〈보헤미안 박이추 커피공장〉의 박이추 선생에 대해, 그리고 삶에서의 스승의 자리, 나는 제자의 자격은 있는가 등등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을 설쳤다, 그만큼 쓸모 있다. 우제 후배 덕분에 다시 확인한 게 있다. 나는 결정하기 어려운 일에 부닥치면 내 스승께서는 이런 경우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습관적으로 따져본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스승이 있어야 할 중요한 까닭의 하나이리라.
책은 우제 후배의 평생 스승들의 면모 뿐 아니라 그들을 통해 좋은 제자의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문득, 훌륭한 스승들의 좋은 제자, 우제 후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