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세월호 참사로 목숨을 잃은 단원고 학생 열세명의 엄마 또는 아빠들의 인터뷰 모음집입니다. 여기에 실린 열 세편의 글들에는, 하나같이 기막힌, 참 슬픈, 아주 화나는 공통점이 있는데, 한편의 예외도 없이 애도의 감정을 넘어 자식들이 죽게 된 까닭에 대한 깊은, 씻을 수 없는 분노가 꽉 차있다는 점입니다. 책을 읽고 난 후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것을 보니 애도의 감정이 감동적으로 드러난 부분이 아니라 분노의 감정을 쏟아 내는 부분들이었습니다.

 

“이웃은 아직 안 끝났냐고 해. 그러면 설명을 다 해주지.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어떻게 끝나냐고 그런데 밖에서는 그게 아닌가 봐. ‘너희들 보상 많이 받았잖냐. 너희들 10억씩 받았는데 더 받으려고 그런 거 아니냐?’ 이런 말 나오면 기가 막히지...언론 플레이가 진짜 무서운 거야. 우리도 사고 나기 전엔 언론에 나온 거 다 믿었어, 100퍼센트. 그런데 직접 당하니까 하나도 믿을 수 없는 거야. 왜 이렇게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야당도 못 믿으니 유가족 힘으로 다시 뭉쳐보자고 했어.”(책, 63면)

“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게 없어요. 다 쉬쉬해요... 움직이지 말라고 방송한 선장이나 선원도 그렇고 한 시간 넘게 구조요청을 했는데도 왜 해경이 안 구했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에요. 진도관제센터가, 정부가, 청와대가 그 시간에 뭘 하고 있었는지 유족들은 알아야죠...우리는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온통 거짓말만 한 나라하고 싸우는 건데, 사람들은 한창 유병언 얘기만 하더니 이제는 돈 얘기만 해요. 우리는 진짜 돈 받은 거 없어요. 해수부에서 긴급자금으로 준 거 말고는 없어요.. 사람들이 자식 팔아서 돈 벌려고 그런다는 말을 하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저렇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식 아니라고 돈이랑 자식이랑 어떻게 바꿀까 싶고...”(책, 82-83면)

 

“2014년 10월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빠져나갔다. 특별법 제정을 요청하며 ‘살려 달라’는 유가족의 외침이 손닿을 거리에서 들렸지만 대통령은 끝끝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창현 아버지 이남석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뒤를 이어 떠나려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애원하는 창현이 아빠를 김무성 대표도 차갑게 외면하고 차에 올랐다. 아들이 죽은 이유를 알겠다고 나선 아버지의 간절함은 팽개쳐져 바닥을 뒹굴었다. 그날 두 사람이 밟고 지나간 것은 붉은 카펫이 아니라 유가족들의 피눈물이었다. 잔혹한 풍경이었다.”(책, 137면)

 

“팽목항에 하루 있어보니 그 분노를 이해하겠더라고요. 배가 몇 척이 나가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죄다 거짓말이었고. 거기 있던 가족들이 다 보고 있었던 거잖아요. 방송이 죄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아이들이 살아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아무 것도 못한 채 보고만 있었으니...”(책, 221-22면)

 

“내가 서해 페리호 사고를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에요. 그런데 21년 후 세월호 사건을 또 겪은 거지, 내가. 그 얘기를 하는 건 지금이나 그 때나 바뀐 게 없어서야... 그때 만일 특별법이 제정됐더라면 세월호 참사가 났을까. 지금 와서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때는 특별법을 요구하지 안 했잖아요. 2003년 대구 지하철 사고의 유가족들이 와서 그랬다고 하던데 ‘우리가 특별법을 못 만들어서 이런 사고가 난 것 같다고, 죄송하다’라고요.”(책, 275-76면)

 

이 안타까운 장면들의 바탕에 깔려있는 것은 바로 〈왜〉라는 질문입니다.

 

“세월호는 전부 ‘왜’라는 물음에서 시작해서 ‘왜’라는 물음으로 끝납니다. 왜 한 아이도 살리지 못했을까, 왜 안개 낀 인천항에서 배는 떠났을까, 왜 배는 급선회했을까...왜 왜 왜. 사람들은 지겹다고 그만하라고 해요. 그런 사람들을 나는 좀 즐기고 싶어요. 나는 왜 그런 사람들을 못 만날까. 많이 만나고 싶어. 당신들 말대로 나 애새끼 팔아서 돈 벌고 싶은데 이 한 글자 왜라는 이 말에 답을 좀 줬으면 좋겠어. 그 답 들은 후에 돈을 벌게. 왜 아직도 아이들이 바닷속에 있는데 안 건지냐고 묻고 싶어.”9책, 187면)

 

마지막 대목이 들어있는 문지성 학생의 아버지 문종혁씨의 이야기 〈대통령과의 5분간의 통화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긴 고통〉을 첨부파일로 올립니다. 〈활과 리라〉식구들께 읽기를 청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아픔, 힘들지만 이를 이겨내야 살아남은 사람들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유가족들의 마음상태가 이 책에 드러난 심적 상태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보는데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참사의 유가족들은 애도기간에 접어들지도 못한 듯합니다. 틀림없이 살 수 있었을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그 까닭을 알아내지 못하는 한, 〈왜〉에 대한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하는 한 애도의 감정은 들어설 틈이 없습니다.

이 책에 나오는 유가족들은 개인의 삶 뿐 아니라 한 집안의 정상적인 삶의 리듬이 깨진 상태입니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충분히 얻지 못하는 한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기 어려울 텐데, 이는 유가족들이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우울증’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나는 이 점이 무섭습니다.

 

진상규명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하는 까닭이, 무엇보다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다시는 유사한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책을 만드는 것이지만, 또한 그를 계기로 참사의 유가족들이 애도의 감정을 받아들임으로써 집단적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2월 9일이면 세월호 참사 300일째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