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적 공간 - 왜 노인들은 그곳에 갇혔는가
오근재 지음 / 민음인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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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근재 선생은 속된 말로 잘 나가는 교수생활로 평생을 지냈고, 지금도 이런저런 디자인 관계 학회, 협회 등에 관계하며 연세대학교 ‘특별 초빙 교수’라는 직함도 가지고 계신 디자인 분야의 원로이십니다. 선생이 쓴 책의 제목이 《퇴적공간》입니다. ‘퇴적堆積’, “많이 겹쳐 쌓인 것”을 뜻합니다. 선생께서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까닭은 사계의 원로이신 선생도 어느 순간 정상적인 사람의 영역에서 떠밀려 〈노인〉, 2014년부터 호칭이 바뀌어 ‘어르신’ 영역으로 편성됨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노인은 어떤 기여도 하지 못하고 복지기금이나 축내는 잉여물, 선생의 표현으로는 퇴적물로 분류됨을 실감했기 때문입니다. ‘어르신’이 존칭이기는 하지만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역시 잉여인간입니다. “청소부를 미화원으로, 파출부나 식모를 가사도우미로, 택시 운전사를 기사님이라는 호칭으로” 바꿔 부른다고 뭐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없듯, 노인을 ‘어르신’이라 부르는 것도 호칭의 인플레이션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의 퇴적물인 노인들이 몰려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공간이 바로 서울의 탑골공원 그리고 종묘공원입니다. 저자는 이곳을 〈퇴적공간〉이라고 이름 짓고 이 공간 특유의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정리했습니다. 여기에 모이는 퇴적물로서의 노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연대감의 부재〉입니다.

 

“여기 오는 다른 사람들도 사연이 있겠죠. 몇 번 만나 얼굴은 익으니까 인사를 나누긴 하지만, 대부분 성도 이름도 모릅니다. 서로 묻지 않고 답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랄까. 만나는 사람은 많아도 그들의 속내는 몰라요. 속살을 드러내는 말은 서로 하지 않지요. 묻지도 않고......”

 

식구들로부터 점점 심하게 버림받아가는 맥락에서 보면 당연한 행태일 수 있고, 노인들을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전제하고 가족들이 노인을 돌보는 게 아니라, 가족으로부터 그들을 떼어내 하나의 노인 단위로 규정한 다음 그들을 단위별로 국가가 돌보려고 하는 복지정책의 방향에서 볼 때도 당연한 행태일 수 있습니다. 복지 혜택의 대상으로 분류된 노인들은 이제 자립능력을 키우는 교육의 장으로 초대되는 것이 아니라 나라의 눈치만 보고 시혜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로 떨어집니다. 많은 것을 상실한 노인들에게 연대감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그럼에도 혜택의 대상일 뿐인 이들이 형성하고 있는 집단에 역시 먹이사슬이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먹이 사슬이 생기는 법. 여기에도 예외 없이 노인들의 주머니를 털려는 이들이 등에처럼 붙어 있다. 바둑과 장기 같은 게임판을 대여하는 자, 시국강연자, 작은 음식점과 소주방 운영자, 커피와 박카스를 파는 아줌마들이 그들이다. 이 작은 공간 안에도 작은 사회 조직이 움직이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먹는 자’와 ‘먹히는 자’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본다면, 우리 ‘어르신’들은 젊었을 때는 자본주의자 고용주에게, 지금은 이런 등에들에게 먹잇감을 제공해 주며 석양처럼 소멸되어 간다.”

 

‘저자의 말’, ‘들어가는 말’, ‘나가는 글’을 빼고 5부 19장으로 돼있는 이 책은 ‘14. 늙은 디오니소스의 밤’, ‘15. 박카스 아줌마의 하루’ 두 장에서 ‘먹잇감’이 된 〈노인〉과 ‘등에’가 된 〈박카스 아줌마〉를 다루고 있습니다. 모든 삶의 공간이 그렇듯 퇴적공간도 낮과 밤으로 이뤄집니다. 아폴로와 박카스로. 퇴적공간은 주로 아폴로가 지배합니다. “보수와 진보의 시국강연, 바둑과 장기 게임, 법륜공 참선, 서화작품의 판매, 상호 담소 등”. 아주 작은 규모이지만 이곳에도 파토스 찬가가 은밀하게 연주되는 박카스적 공간이 있으며, 그 주관자는 ‘박카스 아줌마들’입니다.

성적 매력과 능력이 부재하는 박카스를 우리는 상상하지 않습니다. 물론 ‘박카스 아줌마들’은 성적인 까닭으로 박카스 아줌마라 불린 게 아니라 동아제약에서 제조 판매하는 피로회복/자양강장제로 분류된 음료수 ‘박카스’를 팔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박카스에게 술은 궁극의 목표가 아니라 궁극, 성적인 경지로 더 쉽고 더 빨리 가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러나 박카스 아줌마들은 대개 술에서 멈춥니다. 그들에게는 더 갈 수 있는 매력이나 능력이 없고 먹잇감들 또한 진도를 더 나갈 수 있는 생물적, 경제적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 로맨스, 가슴이 뜀, 두근거림이라니요!

 

“박카스 아줌마들의 삶은 그들이 잃어버린 성적 매력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고단하고 서글퍼 보인다. 그들은 기회가 닿는 대로 커피와 소주를 마셔야 수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기호嗜好 행위가 노동으로 탈바꿈된 현실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한 마디로 그들은 건강을 조금씩 깎아 팔지 않으면 돈이 되지 않는 척박한 현실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노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처지가 고약한 경우는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경우가 노인으로서의 삶이 더 열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있지도 않은 성적 매력을 미끼로 늙은 남자들을 유혹해야 하는 그들의 삶은 별도로 살펴봐야할 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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