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전집 나남문학선 3
권명옥 엮음 / 나남출판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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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民間人

 

1947년 봄

심야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사공은 조심 조심 노를 저어가고 있었다.

울음을 터트린 한 영아嬰兒를 삼킨 곳.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수심을 모른다.

(김종삼, 《김종삼 전집》, 권명옥 엮음 ․ 해설, 나남, 2005, 162면/ 《북치는 소년》, 민음사, 1979/1995, 63면)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의 어느 날, 경기도 개풍군의 한 국민학교 교장 관사에 마을 청년들이 모였습니다. 숙청대상으로 지목돼 내일 아침 죽창으로 찔러 처형해야 할 사람이 자기들이 다닌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입니다. 일제 시절 쭉 학교장이었으니 당연했겠지요. 청년들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스승님이고 마을의 어른이신 교장선생님을 자기들이 찔러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청년들은 교장 선생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그날 밤으로 남쪽으로 피난 가실 것을 재촉합니다. 교장 선생님은 열 살짜리 아들만 데리고 곧장 이남으로 향합니다. 교장 관사에는 교장 선생님 부인과 13살짜리 딸,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 8월에 태어난 늦둥이 아들, 셋이 남았습니다. 북조선의 ‘빨갱이들’은 달아난 교장 선생님 식구들을 대신 죽이지 않고 내버려두었습니다. 몇 달 후 남은 세 식구는 한밤중에 배로 타고 강화도로 건너와 먼저 월남한 교장 선생님을 만납니다. 세 식구가 배를 타고 강화도로 넘어오는 일이 처음에는 실패합니다. 배를 타려 하자 한 살짜리 아이가 마구 울어대는 것입니다. 아무리 달래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애가 우는 게 사모님은 오늘 배를 타지 마시라는 거 같습니다. 다음으로 미루시지요.’ 교장 선생님 네 세 식구는 남겨두고 배는 떠납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북조선 경계병들에게 발각돼 기총사격을 받아 배는 침몰하고 월남하려던 사람들은 전원 사망합니다. 우는 아이 덕분에 교장 선생 네 세 식구는 살았고 그 후 무사히 월남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글에 자주 불려나오는 김종삼 시인의 〈민간인〉, 내게는 삶과 죽음을 가르는 이 에피소드를 꼭 연상케 하는 시입니다. 북한군에게 들키지 않았더라도 바다를 건너던 중에 혹시라도 울었다면 아이의 운명은 시 속의 〈영아〉의 운명과 다르지 않게 개풍군에서 강화도로 건너는 바다에 삼켜졌을 것입니다.

제자들 덕분에 숙청을 면한 교장 선생님은 내 아버님이시고, 울어댄 아이는 바로 나입니다.”(정승옥)

 

[더 읽기]

‘嬰兒의 운명’이 내 운명과 뗄 수 없게 겹쳐있어 자주 들추던 이 시를 제대로 보기는 시를 알고 한참을 지난 후였습니다. 김 시인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이기도 해서였겠지만 처음에는 이 시를 ‘월남한 실향민이 겪어야 했던 비극’을 담고 있는 시라고 읽었는데 언제인가부터는 굳이 ‘월남한 실향민의 비극’에 국한시키지 않고 〈민간인의 비극〉으로 넓혀 읽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자꾸만 걸리는 게 제목 〈민간인〉이었습니다. 제목을 한글로만 써놓으면 그냥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한자로 병기해 놓은 ‘民間人’이 문제였습니다. ‘민간인’의 사전적 정의는 “(관리나 군인이 아닌) 보통사람”입니다. 보통 일반인이라고도 합니다. ‘민’은 “지난날,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의 백성이 그 고을의 원에게 자기를 일컫던 말”이고 ‘민간’은 “1. 일반 시민의 사회. 2. ‘관이나 군대에 속하지 않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間’자 때문이었겠지만 ‘민간인’이 복수의 개념으로 다가왔습니다.

 

‘민들 사이’ 또는 ‘사람들 사이’.

 

첫째 연 읽기,

“1947년 봄”의 한반도 정세, 남과 북의 〈민들 사이〉에서 권력을 잡을 집단의 정체는 거의 드러났지만 많은 ‘민간인’-민들 사이의 사람들은 이해득실을 따지며 어느 쪽을 택할까 고심 중이었습니다.

“深夜”, 유동적인 상황이라 역사의 앞날은 한밤중이나 다름없습니다.

“황해도 해주의 바다/ 이남과 이북의 경계선 용당포”, 지금은 북한땅이지만 당시만 해도 용당포는 이남도, 이북도 아닌 경계선에 있는 바다였습니다. 중립지대를 연상케 하는.

 

첫 연은 1947년 봄날 한밤중의 용당포, 시간이 정지된 풍경을 떠올리게 할 수 있지만 둘째 연으로 넘어가면서 이 풍경은 요동치며 비극의 바다로 돌변합니다.

 

둘째 연 읽기,

조심 조심 노를 젓는 사공의 모습은 “조심 조심”이라는 부사에도 불구하고 그 뜻과는 달리 참사를 예고합니다. 배에 탄 한 갓난아이가 울려고 합니다. 이미 남북의 왕래는 여의치 않은 상황, 이북의 경계병에게 들키면 끝장입니다.

 

“울음을 터뜨린 嬰兒를 삼킨 곳”

 

그리고 두 연짜리 짧은 이 시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스무 몇 해나 지나서도 누구나 그 水深을 모른다”

 

시인이 처음 이 시를 발표한 것은 1971년 10월 《현대시학》이고 1977년 시집 《시인학교》에 다시 실립니다. 34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물의 깊이를 모른다고 하는데 나는 水深이 아니라 愁心, 근심하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愁心 때문에 水深이 더욱 깊어지고 더욱 아득해지고 더욱 암흑의 세계가 됩니다. 아이를 산 채로 바다 속에 처박은 일을 살아있는 한 누구라고 그것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으로 그 참사가 잊히겠습니까.

 

이 시는 개인들의 비극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비극을 불러옵니다.

 

갓난아기를 물에 처박는 참사가 일어난 게 이북도 이남도 아닌 경계 지역인 용당포에서입니다. 권력투쟁과 전쟁은 그와 상관없는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마저 참혹함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이 참사-아이를 바다 속에 처박는 일을 저지른 사람은 아기의 엄마일 수도 있고 함께 배에 탄 어느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사람은 평생 마음속 참형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은 영아. 이들은 모두 ‘관’이나 ‘군’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민간’에 속한 사람입니다. 권력투쟁을 하고 종내에는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은 ‘관인’, ‘군인’인데 죽거나 참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민간인’입니다. 〈역사의 비극〉이라 일컫는 까닭입니다.

이 시는 월남하는 민간인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김종삼 시인이 말하려고 했던 민간인은 월북하는 민간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비약하면 한반도에 있는 〈민간인들이〉, 자기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행동지침에 따라 민간인의 평안함에 힘써야할, 〈민간인이 아닌 사람들 - 관인, 군인들이 벌이는 권력투쟁과 전쟁 때문에 겪는 비극〉을 김 시인은 말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진도 앞 바다 맹골수도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보며 사람들이 이 시를 떠올린 것은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럽습니다. 바다 속 암흑의 세계에 산목숨 하나를 처박는, 용당포 앞의 참사가, 벌어진 지 70년이 다 돼가는 2014년, 맹골수도 시커먼 바다에서 또다시, 그것도 수 백 명 초대형으로 저질러지는 것을 보니 세상은 나아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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