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데케루 펭귄클래식 106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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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대목]

 

파리에서 혼자 지내고, 스스로 생활비를 벌고,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여자가 되는 것이다......가족 없이 사는 것이다! 가족을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는 것이다. 혈연이 아닌 정신에 따라, 또는 육체에 따라 선택하고 아무리 드물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진정한 자신의 가족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 지방 또는 다른 지방, 소나무 또는 단풍나무, 바다 또는 평원, 그 가운데 어떤 것을 좋아한들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피와 살이 있는 존재, 살아 있는 존재 말고 그녀가 관심 가질 대상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돌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야. 강연도, 박물관도 아니야.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것은 도시 속에서 동요하고 어떤 폭풍우보다도 더 강한 열정이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숲이야. 어둠 속에서 아르즐루즈의 소나무 숲이 내는 신음 소리 역시 인간적이기에 감동적이었던 거야.’

테레즈는 술을 조금 마셨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녀는 행복한 사람처럼 혼자 웃었다. 그녀는 정성스럽게 분을 바르고 립스틱을 칠했다. 그리고는 길가로 나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프랑수아 모리아크, 《테레즈 데케루》, 조은경 옮김, 펭귄클래식 코리아, 2011, 159/189-190면)

 

 

[북 리뷰]

 

“변호사가 문을 열었다......테레즈는 축축한 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소설의 첫 대목입니다.

“[테레즈는] 길가로 나가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단입니다.

 

《테레즈 데케루》의 주인공 테레즈가 남편 독살 미수 혐의로 구속되었다가 무혐의로 풀려나는 것이 소설의 첫 대목이고 거의 연금 상태였던 아르즐루즈의 별장에서 풀려나 파리 로 가 시내를 걷는 것이 소설의 마지막입니다.

이 소설은 지방법원의 문이 열리고 감옥에서 해방돼 폐쇄된 공간 아르즐루즈의 별장으로 들어간 테레즈가 이번에는 별장 문이 열리고 아르즐루즈에서 해방돼 파리로 가 시내를 걷게 되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일어난 일들과 그보다는 훨씬 많은 지면이 할애된 회상으로 꾸며집니다. 파리로의 진출이 참된 해방을 획득한 것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파리로 간 테레즈의 후일담을 그린 《의사를 방문한 테레즈》, 《호텔에서의 테레즈》, 《밤의 종말》을 보면 파리의 삶 역시 또 다른 형태의 감옥생활이었습니다.

 

〈갇힘 1(지방법원의 감옥)-해방 1이며 동시에 갇힘 2(아르즐르즈의 별장)-해방 2이며 동시에 갇힘 3(파리)〉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 두 번 열리지만 풀려나자마자 다시 갇히는 이 독특한 서사구조는 되풀이 읽을 때마다 이 작품이 새롭게 읽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모리아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다. 왜 그는 테레즈를 구원하지 않는 것일까?

 

테레즈와 베르나르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입니다. 테레즈 네의 권력과 베르나르 네의 토지의 결합입니다. 처녀 시절 대단한 미인은 아니지만 나름의 매력을 지닌 테레즈는 젊은이들의 흠모의 대상이었고 베르나르는 성실한 지주 집안의 젊은이입니다. 언뜻 보기엔 서로가 만족할 만한 배우자감일 터인데 테레즈로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베르나르에겐 테레즈의 감수성을 건드려줄 센스가 없으며, 기성품 젊은이의 판박이일 뿐인 그는 문학소녀를 만족시킬 분위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테레즈는 《마담 보바리》의 엠마의 후예입니다. 신혼여행에서의 잠자리, 테레즈는 베르나르를 침대에서 ‘밀어내고’ 싶습니다. 저승으로 〈밀어내고〉 싶습니다.

 

“그녀의 정신이 몽롱해졌을 때 베르나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돌아누웠다. 그 순간 그녀는 커다랗고 뜨거운 몸을 느꼈고, 그를 밀쳐 냈다. 뜨거움을 피하려고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로 옮겨 갔다. 하지만 몇 분 후, 그는 다시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정신이 잠든 상태에서도 육체는 살아서 잠결에도 익숙한 먹잇감을 막연하게 찾아나선 것처럼. 거친 손길로 그렇지만 그를 깨우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다시 그를 밀었다......아! 마지막으로 영원히 그를 밀어낼 수 있다면! 침대 밖으로, 어둠 속으로 그를 떨어뜨릴 수 있다면.”

 

이 소설의 기본 틀은 이렇습니다. 테레즈는 베르나르가 복용하는 약에다 비소의 양을 늘림으로써 그를 서서히 죽여 가다가 들통이 납니다. 지역의 유지들 집안에 사달이 났습니다. 정치적 야망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의 딸인 테레즈가 남편인 토호세력의 상속자 베르나르를 죽이려 한 것입니다. 양쪽 집안 다 씻을 수 없는 망신이라서 집안의 힘을 동원, 이 남편 독살 미수 사건은 무혐의 처리됩니다. 그리고 테레즈는 아르즐루즈의 별장에 연금됩니다.

 

지방법원이 있는 군청 소재지에서 아르즐루즈로 오는 동안의 기차 안에서, 마차 안에서, 연금된 별장 안에서 테레즈는 지난날들을 회상합니다. 테레즈와 베르나르, 베르나르의 여동생이며 처녀시절부터의 친구 안느와 그녀가 순간 홀딱 빠져버린 장 아제베도(안느는 서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장은 시늉만 했습니다)의 풋사랑, 테레즈와 장의 미묘한 관계, 테레즈의 출산 등이 회상의 형식으로 전개됩니다.

 

안느와 테레즈 모두가 파리에서 온 장에게 열중합니다. 테레즈는 장이 남편과는 다른 부류의 인간, 답답한 자기의 마음을 해소시켜 줄 사람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녀들이 장에게 열중하는 데에서 드러나는 것은 장의 정체라기보다는 그녀들의 실체입니다. 불같이 타올랐다 사그라진 안느의 경우는 그렇다 쳐도 테레즈의 경우는 문제적입니다. 그녀는 장의 정체를 간파하지 못합니다. 파리로 입성하는 테레즈는 장이 자기에게 큰 도움이 되고, 멋진 파리생활을 영위하게 해 주리라 믿지만, 그것은 장이 테레즈를 유혹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테레즈가 제대로 사람 볼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마 테레즈도 엠마와 마찬가지로 꿈속을 허우적거리는 성숙하지 못한 문학소녀 아류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테레즈의 실상이 그녀를 빛나는 인물로 만들고 있을 겁니다.

 

프랑스 문학사에서 테레즈는 마농, 엠마, 칼멘의 뒤를 이어 전형적인 여성상의 하나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데 아마도 그들의 공통점으로 나름대로의 〈미성숙성〉을 들 수 있을지 모릅니다.

 

《테레즈 데케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르즐루즈’의 독특한 분위기/이미지입니다. 〈아르즐루즈〉하면 나는 꼭 히스클립과 캐서린의 비극이 벌어진 거세게 비바람 치는 언덕, 에밀리 브론테의 《분더링 하이츠Wunthering Heights》의 풍경이 떠오릅니다. 오늘은 한 대목 인용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아르즐루즈는 그야말로 세상의 끝이다. 더 나아갈 곳이 없는 그런 장소 중 한 곳이다. 사람들이 ‘그곳’이라고 부르는 아르즐루즈에는 성당도 행정관청도 묘지도 없이 호밀밭 주위로 소작농가 몇 채가 흩어져 있을 뿐이고, 생클레르 중심지로부터 1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그리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한 도로 하나가 전부였다. 마차 바큇자국과 파인 구멍으로 가득한 이 길은 아르즐루즈를 지나면서 모래가 깔린 오솔길로 바뀐다. 그곳에서부터 대서양까지는 그저 80킬로미터에 달하는 늪, 석호, 길쭉한 소나무 숲과 겨울이 지날 때쯤 잿빛이 되어버리는 양들이 사는 허허벌판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소량의 비상을 넣어 하루하루 서서히 사람을 죽여 가는 이 끔찍한 행동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 한 모리아크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입니다. 이 뿐 아니라 《사랑의 사막》,《독사뭉치》에서도 추악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어느 독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이 끔찍한 일들을 어디서 끌어오는 것이냐고. 작가는 대답합니다. 〈내 속에서입니다.〉그리고 모리아크는 덧붙입니다.

 

“이러한 인물들이 우리들의 모습을 닮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인물들은 우리들이 버리는 것, 우리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들의 찌꺼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인물들을 창조하는 소설가에게는 그들과 맞붙어 싸우는 희한한 즐거움이 있다. 이런 인물들은 대개의 경우 저항력을 가지고 있고 맹렬하게 자기 방어를 하므로, 소설가는 그들을 비틀거나 그들의 생기를 빼앗을 우려 없이 그것들을 변형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 영혼을 불어넣을 수가 있다. 아니,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그들 속에 그들의 영혼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을 깨뜨리는 일 없이 그들을 살려낼 수가 있는 것이다.”(〈소설가와 작중인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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